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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쥬디 아름쌤 Oct 15. 2024

소심한 복수가 틀림없다.


“1호 오늘 학교 안 가? “ 신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다. 8시 27분.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생각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지금이 뭐 해야 하는 시간이지.'

잠시 정지되었던 뇌가 살아나고 정신이 돌아왔다.


“으악!!! 어떡해!! 오늘 학교에서 산에 가는 날인데!! “

나의 비명에 온 가족이 놀랐다. 2호는 무서웠는지 엉엉 울며 안아달라고 했다. 나는 그런 2호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어떡해. 어떡해."를 외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산에 갈 준비물도 챙기지 못했는데 어쩌지. 급하게 하이클래스 어플을 열었다. 간식은 간식통에 담아 오라고 했다. 간식, 물통, 돗자리를 빠르게 챙기고 냉장고에서 방울토마토를 꺼내 세 알을 씻었다.


아직 잠이 덜 깼는데 정신을 차려야 하는 고통에 1호는 먼저 화장실에 갔다. 볼일을 보는 동안 입에 방울토마토를 넣어 주었다. 빨리 양치를 하라고 했다. 아이는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양치를 했다. 나는 그냥 그만하고 나오라고 하고 머리 묶을 준비를 하였다.


창밖을 보니 아이들이 우산을 쓰고 등교하고 있었다. 비가 오면 산에 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아침에 준비는 해오라고 알림장을 올려주셨다. 아이에게는 아마 안 갈 것 같다고 말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갔다고 한다.) 아이는 가방을 메고 매일 신었던 크록스 대신 운동화를 신고 문을 나섰다.


한바탕 전쟁이 끝이 났다. 방울토마토 3개만 먹고 간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 눈물이 났다. 배고플 텐데.

걱정하는 나와는 달리 신랑은 태연했다. 괜찮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뒤늦게 신랑에 대한 미움이 밀려왔다. 못 일어난 건 내 잘못이긴 한데, 왜 일어나 있으면서 안 깨운 건지 물었다. 대답은 학교를 몇 시에 가는지 몰랐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으악.


“아니 매일 자기 출근할 때 일어나 있잖아!”

“그래? 자고 있을 때도 있던데. “

“무슨 소리야! 학교 몇 시에 가는지 몰라?”

“몰랐어. 알려줘야 알지. 그럼 몇 시에 일어나야 해?”

“하. 7시 40분에는 일어나야지.”

“알았어. 알았어.”

진짜 이제 알게 된 건지 참.


신랑은 오늘 연차라 회사에 가지 않았다. 나는 매일 신랑이 출근 준비하는 소리에 깼는데(사실 가끔은 그것도 못 들을 때가 있긴 하다.) 오늘은 조용해서 일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일어났으면 깨워주지. 흥! 분명 일어나서 실컷 핸드폰 보다가 다들 왜 안 일어나지 했을 것이 뻔하다.


미안했는지 2호 어린이집은 자기가 데려다주고 볼일을 보러 간다고 했다. 다행이다. 비 오는 날 2호 어린이집 데려다 주기는 정말 어려운 미션이기 때문이다.


신랑과 2호가 떠나고 1호 친구 엄마들과 폭풍 카톡을 나눴다. 회사 출근을 하는 어떤 엄마도 오늘 알람을 듣지 못했다 한다. 다른 엄마도 오늘 이불 덮고 푹 자야 할 것 같은 그런 날이라고 나를 위로해 줬다. 엄마들의 위로와 학교 코앞에 살아서 1교시 전에는 도착했을 것이라는 확신에 마음에 놓였다.


다만 깨워주지 않은 신랑은 하루종일 얄미웠다. 저건 나에 대한 소심한 복수가 틀림없다. 나는 확신한다. 두고 보자. 힝. 소심한 복수 까먹으면 안 된다.(사실 나는 잘 까먹는다.) 어떤 소심한 걸 해야 할까. 그것부터가 어렵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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