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앨리스쥬디 아름쌤 Aug 14. 2024

고마웠다. 908호

보고 싶네 그 시간이


2023년 1월



이사 하루 전 마지막 날 밤이었다.

‘ 아 드디어 우리도 이사를 가는구나.’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얼마 전 만났던 주영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언니, 이사 가기 전에 지금 사는 집 사진 많이 찍어놔. 처음 집이라 은근히 정들었겠다. 그리울 것 같아. 사진 찍어서 보고 싶을 때 보면 되잖아!


아 그래야겠네

라고 했지만 속으로 난

하나도 안 그리울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었다.

좁은 집에서 아이 둘과 매일 전쟁을 치르듯 살았기 때문에 많이 지쳐있었다.


똑똑한 주영이 말이 맞았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붙은 무거움과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내일이 지나면 이 집이 그리울 것 같았다. 아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니. 이 집에서 많은 일이 있었지. 우리 듬뿍이도 만났고, 쑥쑥이도 만났지. 고마웠다 908호.






1984년에 지어진
30년이 넘은 복도식 아파트.



2013년 가을, 결혼을 준비하며 집을 알아보았다. 내 집 장만하기가 요즘만큼 어렵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우리 둘에겐 당시에도 집을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 우리가 생각한 예산에 맞는 집들을 보며 난 조금 충격을 받았고, 그제야 내 집마련이라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해도 좋다고 말하곤 했는데, 막상 집을 보러 다니니 나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내가 싫어지기도 했다.


부동산 아주머니께서 예산을 조금 더 올려서 여기 한번 가보는 건 어때요?라고 하시며 24평에 깨끗한 집이 있다고 하셨다. 그동안 보았던 집들이 너무 별로어서 기대가 없었던 나는 이 아파트를 보러 가자고 했을 때에도 아 복도식 아파트는 좀 별룬데..라고 생각했다.


당시 공실이었기도 하였고, 그동안 보았던 집들에 비하면 운동장 같이 넓어 보이는 이 집을 보자 와 여기가 우리 집이면 좋겠다 는 생각을 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들의 도움과 예비신랑의 꼼꼼한 준비 덕에 그 집은 우리 집이 되었다. 별로라고 생각했던 복도식 구조를 살면서 가장 좋아하게 된 것도 나였다. 그렇게 우리 집이 생겼다.


반갑다 908호.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