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자
혼밥을 즐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즐기는지 아닌지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그냥
매일 혼밥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계란을 삶고 아이들 먹일 야채 과일을 준비한다. 남편은 본인의 아침식사를 스스로 챙겨서 가져간다. 너무 대견하게 생각할 것 같은데 그의 아침식사는 1~2종류의 과자와 빵, 온갖 간식들이다.
그게 주식이다. 차에서 먹으며 출근한다.
아침 준비가 되면 1호는 스스로 잘 먹고, 2호는 옆에서 먹여줘야 하는 상황이라 나는 아침을 거의 먹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다. 식사를 마치면 1호는 학교에 가고, 2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2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리며 혼자인 게 너무 좋다. 그땐 혼자 카페에 가기도 하고, 장을 보기도 하고, 집에 와서 다시 눕기도 한다.
그리고 점심이면 늘 혼자 밥을 먹는다. 차려먹기 너무 귀찮지만 대충 먹는다. 매일 라면을 먹기도 하고, 가끔 혼자 사 먹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 같이 먹기도 한다.
오늘은 김치볶음밥을 해 먹었다. 밥 두 공기정도 넣으면 3인분의 양이 나오는데, 놀랄 수 있으나 나는 대식가이다.
혼밥에 대해 찾아보니 혼밥에도 레벨이 있다는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혼밥에는 자신 있으니 나의 레벨이 어디쯤일까 읽어보았다.
1단계 : 편의점에서 혼자 밥 먹기.
2단계 : 학생식당이나 푸드코트에서 밥 먹기
3단계 : 패스트푸드점에서 혼자 세트 메뉴 먹기
4단계 : 분식집에서 혼자 밥 먹기
5단계 : 중국집, 백반집 등 일반 음식점에서 혼자 밥 먹기
6단계 : 유명한 맛집에서 혼자 밥 먹기
7단계 :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혼자 밥 먹기
8단계 : 고깃집이나 횟집에서 혼자 밥 먹기
혼밤 만렙 : 술집에서 혼자 술 마시기
나는 편의점, 푸트코트, 패스트푸드점, 분식집, 중국집, 백반집, 유명한 맛집에서 까지 혼자 먹어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6단계 레벨이구나. 참고로 나의 여동생은 혼자 곱창집에서 곱창을 먹은 적이 있는데 혼자라고 하니 직원들이 당황하였다고 한다. 나는 회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횟집에서 혼밥을 도전해 봐야겠다.
혼밥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와 힘들게 밥을 먹다 보니 혼자 편하게 먹는 것이 좋다. 그런데 혼밥의 반대말은 다 같이 먹는 것인데 다 같이 행복하게 밥을 먹은 기억이 왜 떠오르지 않는 건지 슬펐다. 그리고 그때의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남편과 나는 기본적인 입맛과 식성이 정말 아주 반대이다. 나는 회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그는 한 점도 먹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시장 횟집에서 포장해서 혼자 잘 먹곤 했는데, 그날은 왜 그렇게 화가 난 건지 결혼하고 제대로 된 횟집에 거의 못 간 게 마음속에 쌓여있었나 보다.
내가 투덜거리자 남편이 그럼 횟집에 가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신이 났고(아니 나만 신이 났고) 우리는 다 같이 횟집에 갔다.
횟집은 보통 곁들이찬이 많이 나오는 집이 있고, 오직 회만 나오는 집이 있다. 나도 상대를 좀 배려해서 갔어야 했는데 이것저것 쓸데없는(내 기준) 것이 많이 나오는 그런 곳은 회가 싱싱하지 않은 경험이 있어 싱싱한 회를 먹고자 회센터 같은 곳에 갔다.
우리가 간 곳은 일층에서 직접 회를 떠서 2층 식당에서 먹는 곳이었다. 당시 1호가 3살쯤이라 회는 상상도 못 했고, 남편은 회를 먹지 않는다.
그렇다 남의 편, 그는 회를 먹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왜 같이 먹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 처음엔 그가 먹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싱싱한 회를 나 혼자 우걱우걱 열심히 먹었다. 그와 아이는 죽이나 옥수수콘 정도밖엔 먹을 게 없었다.
남편은 원래도 표정이 없긴 하지만 표정이 없는 것과 미묘하게 표정이 안 좋은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는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듯이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표정도 좋지 않았고 대화도 없었다. 나는 또 왜 그 꼴이 그렇게 보기 싫고 화가 났을까.
내가 나 혼자 이 비싼 회를 먹겠다고 온 건가.
아니 같이 좀 맛있게 먹어주면 안 되나!
먹지 않아도 대화라도 좀 하면 안 되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평소 그는 음식을 권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내가 이것저것 좀 먹어보라고 하면 편식하는 아이들이 고통스러워하듯 엄청나게 싫은 티를 낸다. 그럼 나는 또 엄청나게 상처를 받는다.
회를 반쯤 먹었을 때다. 정말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렇게 좋아하는 회라고 할지라도 혼자 먹으니 아니 차라리 나 혼자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같이 먹는 게 너무너무 불편했다.
나는 그냥 집에 가자고 했다. 옆테이블 아주머니들이 하는 말이 크게 다 들렸다.
어머나 저걸 다 남기고 가네.
쯧쯧쯧 아이고 아까워라.
그날은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이다. 그는 나에게 화를 내며 본인이 원해서 본인이 선택한 곳을 다녀왔는데 도대체 왜 화를 내는 거냐고 물었다. 난 뭐라고 설명을 하기가 어려워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와 남편은 그날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난 웃기지 않다.
같이 사는 사람의 입맛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중이다. 평소에도 그는 집에서 내가 해주는 음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 혼자 빵을 먹거나 알아서 대충 먹는데 그 꼴이 너무 보기가 싫다.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라면이라고 하면서 라면을 먹는다. 그럼 내 음식은 라면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아이들이 아빠 이거 미역국 맛있어 한번 먹어봐라고 말하면 아니야 아빠는 이거 먹을게 라며 빵을 입에 집어넣는다.
같은 동네에 사는 남동생과도 자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나의 고충을 아는 동생이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누나 그렇게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외국인이랑 산다고 생각해.
아 그렇네.
그냥 외국인이랑 겸상한다고 생각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산 지 이제 몇 년이 지났다. 처음 신혼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 결혼 10년 차, 이제 조금 마음을 내려놓았다.
누군가 나에게 혼밥을 즐기냐고 물으신다면
Of course YES!!
횟집도 혼자 가겠습니다!!
이제 밥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