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해볼래?
삼 남매
나에게는 한 살 차이 여동생과 5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있다. 이 관계에서 예상해 보면 자매끼리 잘 맞을 것 같은데 우리는 다르다. 미안하지만 나는 여동생보다 남동생과 더 잘 맞는다. 나와 동생 둘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어제 쓴 글에서 이야기했던 내가 쏜 불꽃놀이에 맞은 그 여동생과 나는 연년생이다. 하지만 내가 7살에 학교에 들어가 두 학년이 차이가 난다. 그래서 친구관계 족보가 굉장히 꼬여있다.
아무튼 여동생과 나는 많이 다르다. 지금 아이를 키우며 생각해 보니 둘째, 특히 가운데 끼인 둘째는 환경 설정상 뭔가 독립적으로 자라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듯하다.
기본적으로 나는 눈치가 없고 여동생은 질투가 많다. 지금 나의 아이들을 보면 딱 우리 같다.
부모님은 당연히 첫째인 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셋 중에서 내가 가장 철이 없었다. 중학생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이키 운동화를 사달라고 조르고 졸라 다 같이 나이키매장에 가서 오직 나만 나이키 운동화를 샀다.
나는 쉬는 시간이면 늘 매점에 갔고,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먹고 싶은 걸 사 먹었다. 성인이 되어 들었지만 동생들은 나를 보며 저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착한 동생들은 지금도 돈을 아껴 쓸 줄 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친구 사귀는 것이 참 어려웠는데 여동생은 늘 친구가 많았다. 동생은 정이 아주 많고 사람을 좋아했다. 그래서 관계에 있어 상처도 많이 받았다. 나는 좁은 인간관계와 눈치 없음 옵션이 있어 좀 덜했다. 동생이 항상 집에 친구를 데려오는데 나는 그게 아주 불편했다.
학생부 비슷한 것을 하여 모범을 잘 보이고 어려운 친구도 잘 도왔다. 한 번은 남동생반 아이가 토를 했는데 그걸 다 직접 치워주기도 하고, 신체나 멘탈이 불편한 학생들을 잘 도와주곤 하였다. 적극적인 성격이라 가창대회나 장기자랑 등에도 잘 나갔다.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자기 할 일을 알아서 잘하고 독립적이었다. 엄마말에 의하면 초등학교시절에도 숙제가 마음에 안 들면 밤새도록 했다고 한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내 독후감 숙제를 다 해주었다. 아니 내가 해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그토록 글쓰기를 싫어했고, 글을 왜 쓰는지 이해가 안 갔다.
독립적인 동생과 달리 나는 거의 마마걸 파파걸이었다. 5,6학년때인가 수학여행에 가서도 밤에 엄마가 보고 싶어 울었다. 여동생은 항상 독립을 꿈꾸어 대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하며 독립했다. 나는 엄마아빠랑 떨어져 사는 건 생각만 해도 싫었다. 결혼해서도 같은 동네에 집을 얻었다.
여동생은 항상 언니인 나를 질투했다.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모든 친척들과 지인들이 첫째인 내 이름을 자주 부르고 나를 기억하는 게 당연했다. 여동생은 늘 그게 싫었다고 한다. 늘 언니가 먼저인 게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은 나보다 동생이 먼저 했다.
사실 나는 연애도 남자도 큰 관심이 없었다. 여동생은 달랐다. 신기하게 항상 남자친구가 있었고 연애상담과 코치를 해줬다. 연애다운 연애를 시작 못하는 나를 답답해했고 지금 신랑을 소개해주고 연애를 성공하게 만들어준 것이 동생의 공이다. 연애만 하라고 했는데 결혼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하하
다툼
이렇게 다른 여동생과 나는 당연히 자주 다투었다.
가까운 가족이 더 상처를 많이 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생각을 쥐어짜도 다툰 이유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크게 다투고 이제 진짜 보지 말아야지 한 적도 있지만 가족은 가족인지라 내일도 우린 얼굴을 볼 것이다.
사회에선 아주 카리스마 있고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이미지인데 부족한 언니말은 잘 따라주는 내 동생이 참 고맙다. 어릴 때부터 동생은 나의 투정과 지랄을 잘 받아주었다. 잘 맞지 않는 성격이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정말 자매가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앞으로도 좀 다툴 것 같긴 하지만 오랫동안 다투며 잘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