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는 끝이 없다
"저기 구름이 여기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늘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만큼, 사진 찍을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구름의 유무뿐만 아니라 구름의 모양 및 상태까지 예민하게 따질 만큼 하늘 상태에 진심인 나. 하지만 포토샵으로 그 순간의 기억을 왜곡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찍는 순간의 하늘을 아쉬워할 때가 많다.
유난히도 날씨 변화가 잦은 날이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파란 하늘이었다가 뭉게구름이 몰려오기도 하고, 구름으로 가득 뒤 덮여 있다가 간격이 벌어지면서 파란 하늘이 고개 내밀기도 하고. 그런 움직임이 보일 때면 설렌다. 내가 좋아하는 하늘의 상태가 완성되지 않을까 싶어서. 여행 중이라면 사진을 많이 찍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여행 중 마음에 쏙 드는 하늘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다른 일정도 있어서 한 장소에서만 오래 머물기 쉽지 않고, 특정 피사체를 찍다보니 방향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한 장소에서 머물고 싶은 만큼 있어도 눈치 볼 사람이 없다는 것. 무엇보다도 하루가 틀어져도 괜찮을 만큼 여유로운 일정의 여행이었기에 가능했다. 여행이 거듭될수록 간 보고 자리를 뜨는 여행의 형태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맛을 확실히 느낀 곳은, 바로 이곳, 론다이지 않을까.
시작은 단순했다. 소매치기로부터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내 사진을 남기고 싶은 욕망에서부터였다. 한 순간 몰려들어와 사진을 찍고 금방 돌아서는 사람들을 보며, 공간이 비어있는 틈이 생기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날씨도 한몫했다. 다리 위의 하늘만 흐렸기 때문. 반대편 하늘은 분명 맑은데, 다리 위는 곧 비가 올 듯이 우중충했다. 조금씩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사람들이 떠나기를 기다리다보면 하늘이 바뀌지 않을까 싶어 희망을 가졌다. 이대로 찍고 떠나면, 먼 훗날 나는 이곳의 사진을 보며 날이 좋지 않은 어느 하루로 기억할 것임이 뻔하니까.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를 이곳에 아쉬움을 남기고 싶진 않았다.
남편한테 사진으로 잔소리하는 아내도 구경하고, 지나가다 대화하는 소리도 엿듣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같은 풍경을 반복적으로 둘러보고, 이곳에 들르는 사람들뿐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 기다림이 길어졌다. 1시간이 훌쩍 넘었고, 시간은 이미 2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점심도 안 먹은 채로. 고립된 사람처럼 자리를 쉽사리 뜨지 못했다.
(다시 생각하면 미련했다. 왜 두 번의 기회는 없다고 생각을 했을까. 실제로 이곳에 머무는 3일 내내 들렀을 만큼 론다 여행 일정은 지나치도록 여유로웠는데 말이다.)
이미 사진 몇 장을 찍었지만, 시침이 3을 향해 달릴 때까지 나의 기다림은 이어졌다. 하늘에 대한 작은 미련 때문이었다. 저녁식사를 늦게 하는 스페인 특성상 오후 7-8시가 되어야 다시 문을 열기 때문에, 점심때를 놓치면 안 된단 생각에 슬슬 삼각대를 접고 돌아가려 하는데, 파란 하늘이 갑자기 모습을 내비쳤다.
'아잇... 왜 이제서 또!'
타이밍은 늘 이렇다. 야속하게도, 포기하려는 순간 기회를 준다. 완벽하진 않지만, 후회를 하고 싶진 않았기에, 삼각대를 펴곤 사진을 몇 장 추가로 찍고 절벽 위에 봐두었던 식당에 갔다.
소꼬리찜에 레드와인. 거기에 절벽 뷰까지.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다. 론다에서 유명한 소꼬리찜을 찾다 절벽 아래에서 계속 관찰하고 있던 미슐랭 식당으로 왔다. 명성이 있어서인지 꽤나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바깥 하늘이 바뀌는 순간들을 관찰하며. 누에보 다리에 대한 미련이 철철 담긴 식사 한 끼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연인, 가족끼리 와 와인 한잔 기울이며 아름다운 이곳의 분위기와 나는 사뭇 달랐다. 무한 대기의 연속에 지쳐 온 고독을 씹는 사진작가 같았달까.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그들이 풍기는 로맨틱함을 눈으로 담으며 시간을 보냈다.
한창 식사를 하고나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화창해졌다. 지금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일정이었으나, 나의 발걸음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절벽 아래로 다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 생각은 모두 같다. 날이 맑아지니 너나 할 것 없이 이곳으로 내려왔다.
또 다른 기다림이 시작되었고, 결국 더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와 안부전화를 했다.
"절벽 아래 아까 왔었는데 날이 좋아서 또 왔어. 아까 하늘이 너무 별로였거든."
그러면서 하늘에 대한 투정 아닌 투정을 했다. 내가 찍고 싶은 곳만 늘 별로라면서.
"너 사진 작가한다며. 그러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
맞는 말이다. 내가 발길이 닿는 그 순간만 포착하면서 멋있는 사진만 바라는 건 양심 없는 일이다. 전문성을 갖추고 싶다면, 원하는 것을 위해 꾸며낼 줄도 알아야 한다. 한 장소에서의 기다림, 더 나아가 재방문은 어쩌면 당연했던 것이다.
취미와 전문가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고민만 깊게 하던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줬다. 여행 다니면서 사진 찍고 그걸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던 나였기에, 그 말은 크게 와닿았다.
한 장소에 종일 머물러본 건 처음이었다. 론다에서 찍은 같은 장소에서의 사진을 보면 지금도 많은 걸 느낀다. 마음에 드는 사진 속엔 단순한 풍경만 남아있는 게 아니라, 그때의 기다림, 그러면서 느낀 감정까지 모두 하나의 추억이 담겨있다는 것을.
하루를 투자해서 나에게 남은 사진은 비록 몇 장이 안될지라도, 더 마음에 들고 의미가 깊은 사진만이 곁에 남는다는 것을 배웠다.
사진을 떠나서 여행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역시 답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장기여행을 몇 차례 하면서 가끔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대체 왜 자꾸 여행을 가고 싶은 걸까? 뭐가 좋아서?'
나사 하나 빠진 채 멈출 수 없어 계속 여행을 가는 듯한 느낌이 스스로 들 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디자이너로서 도움이 될 수많은 경험 또는 일탈. 두루뭉술한 답만 나올 뿐이었다. 되짚어볼수록 시각적 경험만 있고 어떠한 감정은 없는, 알맹이가 쏙 빠진 껍질 같은 여행만 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난 답을 이곳에서 하루를 종일 보내며 찾았다. 나는 기다림이 부족했다. 자의든 타의든 그것을 배워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씩 기다림 속 여유가 주는 행복함, 즐거움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현재는 여행과 사진을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주로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을 떠나기에 기다림이 담긴 사진을 자주 찍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가슴 한 켠에 그 여행을 다시 떠날 날을 기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