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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Sep 22. 2023

문 열고 달리는 버스

쉽지 않은 쉐프샤우엔 가는 길

여행 콘텐츠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이 모습을 봤을 거다. 문을 열고 달리는 차에 몸을 던져 탑승하는 사람들. 대개로 그런 여행지는 난이도가 극상이기에 여행을 꺼려했던 나. 내가 그런 버스에 탑승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스마트폰에 검색 조금만 해도 모든 정보가 나오는 세상이지만, 모로코는 온전히 믿기에는 정보량이 적어 그대로 따르기엔 위험성이 있었다. 게다가 캐리어를 끌고 이동하기에 열악한 환경이었던지라 우리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숙소 사장님께 떠나기 직전에 확인차 물었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쉐프샤우엔 행 버스


쉐프샤우엔 행 버스터미널을 물었더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우리에게 알려준 그. 구글맵에서 찾은 터미널과 달랐지만, 현지인이 더 정확하다 판단해 그를 믿고 따랐다. 그렇게 힘들게 택시를 잡아 터미널로 향했다.


도착한 버스터미널에서 곧장 티켓을 사러 갔는데, 우리가 알아본 시간과 달랐다. 비단 출발시각만 달랐던 것이 아니라, 버스 회사부터가. 알아본 시간에 거의 맞춰 움직인 것이기에 이미 다른 터미널을 묻고 찾아가기엔 늦은 시각. 결국 약 3시간 뒤에 있는 티켓을 구매하고 꼼짝없이 이곳에 묶여있었다.


이 탕헤르 버스터미널은 크기에 비해 할 것이 상당히 없는 곳이다. 편히 쉬는 공간도 애매하다. 자리라고는 카페 앞에만 있어서 꼭 무언가를 주문하고 있어야 하는 곳. 그렇다고 시내로 가기에는 또다시 캐리어와 함께 택시까지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라고 하겠다.


물만 구매하고 눈치 보며 앉아있던 3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버스에 올랐다. 모두 닳아버린 의자에 바퀴벌레가 기어다닌다는 후기를 봤던지라 나름 각오하고 갔는데, 걱정과 달리 괜찮은 환경이었다. 자리도 여유롭고.


문 열고 달리는 버스, 그리고 중간 정차 터미널에서 타는 사람들


편안함은 잠시. 버스에 누군가가 계속 올라탔다. 멀미가 날 만큼 조금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하다못해 문까지 열고 달리더라. 영상에서 보던 다른 국가처럼 누가 뛰어드는 일 없이 정류장마다 정차를 하지만,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어쩌면 그냥 달리는 그들의 문화를 조금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멈춰 서지 않으면 울렁거림은 덜했을 테니까. 마치 고속도로에서 브레이크를 1분에 한 번씩 잡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탑승객이 쌓여, 더 이상 1인 2석은 당연히 불가능했고, 자리를 옮겨 합석했다.


버스 안은 현지인으로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객은 우리처럼 터미널에서 타지 않으면 절대 탈 수 없을 만큼 탑승 장소가 자유롭다. 뜬금없는 장소에서 한 명씩 타고 내리는 게 대형 합승택시 같았다. 버스는 자리가 가득 차도 사람을 계속 태웠다. 문에 걸터앉고, 서서 가고. 더 이상 공간이 없을 때까지.


해가 지고서도 한참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불안함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떠한 안내가 없는 건 당연하고, 중간에 어떤 터미널에 정차할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더 멀리 가니 개인이 기사에게 가서 말을 하고 오면 얼마 뒤에 문을 열어주더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각자 자신의 목적지에서 내리던 그들 때문에 혹여나 우리가 내리는 곳을 지나치지는 않을까 계속 확인하면서 갔다.


쉐프샤우엔 행 중간에 나타난 마을과 모로코 웨하스 과자


버스 여정은 혼돈과 혼란의 연속이었지만, 중간 정차구역에서 과자, 음료 등을 파는 상인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휴게소에 내려서 직접 사는 대신, 그들이 버스에 올라타 판매하니 더 편했다. 우리도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과자를 눈치보다 따라 사봤다. 그리고 여기서 알게 된 사실 하나. 모로코는 웨하스 같은 과자가 모두 맛있다는 것.


우린 2시간 걸리는 곳을 4시간 이상 걸려 도착했다. 예상 시간보다 3시간을 더 기다리고, 이동 시간도 더 길었으니, 예정보다 상당히 늦게 도착한 셈. 이 여정에서 득이라곤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이 지루하고 피곤했던 이동이 후회되지 않는다. 이 마저도 머릿속에 그리던 모로코의 모습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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