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나라의앨 Jan 09. 2021

우리가 함께한 두 번의 가을

나 자신과 상대를 알아가는 시간




그렇게 연애가 시작되었는데... 나는 통번역대학원 생활로, 그 사람은 사업 준비로 둘 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거짓말 안 하고 정말 하루 10분 보는 날도 있었다. 잠깐 학교에 들러 간식을 전해주고 가거나 밤 11시에 내가 학교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우리 집까지 걷고 그 사람은 막차를 타고 집에 가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서로의 목표와 꿈을 존중하고 지지했기에 시간적으로 여유를 갖고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잠깐 만나는 시간이 소중하고 의미 있었다.


둘 다 이루고자 하는 게 있다 보니 하루를 꽉 채워 정말 열심히 살았다.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렸다. 그러다 보니 숨이 차고 좀 쉬어가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은 나에게 쉼표가 되어주었다. 잠깐이라도 잘 쉬고 나면 또 달릴 힘이 생겼고 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다.


바쁜 와중에 틈새 데이트를 하다 보니 평소 데이트는 단조로웠다. 저녁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그 사람의 퇴근길 또는 내 하굣길에 걷는 정도. 짧긴 했지만 양질의 시간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했고 새로운 길을 찾아 걷기도 했다. 수시로 연락을 하지는 못하니 만났을 때 몰아서 각자의 하루를 브리핑하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었다.


그래도 이 사람을 만나고 방학과 몇 번의 주말은 약간의 일탈을 했다. 일상여행을 한 것. 아무리 방학이라 해도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보니 주로 서울 근교로 갔다. 여행이라기보다는 나들이 수준이지만^^ 둘 다 자연을 정말 좋아한다. 단순한 감상도 좋지만 자연 속에 머무는 것, 자연 속에서 뭔가를 하는 것을 즐긴다. 자연 속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석양을 좋아해서 강화도에 가장 많이 갔고 이 외에도 시흥 시화호, 남양주 두물머리, 인천 영종도, 오이도, 인천대공원, 안양 백운호수 등 경기도권에 조용하면서도 걷기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같이 나란히 걷는 게 좋아서 도심 근교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걷기도 정말 많이 걸었다. 큰 맘먹고 소백산 비로봉을 함께 오른 것도 정말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서울 한복판 한강에서 해 질 녘에 카약을 타기도 했다. 이렇게 일상여행을 하고 오면 리프레쉬가 되고 다시 학교에서 열공할 힘이 생겼다.


서울둘레길. 걷기가 취미인 커플에게 강추합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어딘가에서 탔던 카약.
소백산. 해발 1430m.

그는 평범할 수 있는 일상을 멋진 여행으로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연애 초반에는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아 서운했는데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은 꼭 기념일이 아니어도 내게 내게 특별한 시간을 선사해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일상이 기념일인데 기념일을 따로 챙기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그래서 이후로 지금까지도 기념일을 유별나게 챙기진 않는다. 평소에 주고 싶은 선물 주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래도 서운하지 않을 수 있는 건 그만큼 평소에 특별한 날이 많기 때문.





사실 나는 조금 더 어리고 철없을 때, 연애에, 사랑에 매달리는 걸 혐오하던 사람이다. '넌 내 전부'라며 죽고 못 사는 것도 부담되고 내 할 일을 만사 제쳐두고 상대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도 아까워하던 사람이다. (그렇게 해봐야 결국 헤어지면 끝인데... 하고 생각하는 비관주의자였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도 늘 적정선을 지키며 거리두기를 했다. 아무리 연인이어도 매일같이 만나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데이트하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그냥 장거리 연애를 하는 게 마음 편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을 만나면서 그건 내가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건강한 남녀의 건강한 관계에서는 서로에게 매달릴 일도 없고 매달리게 하지도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연애하면서 '밀당'을 하는 게 정말 싫었는데 이 사람과는 그런 걸로 고민해본 적이 없다. 각자의 일과 공부와 서로에게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을 그때그때 솔직하게 표현했다.




그는 화려한 말로 장밋빛 인생을 함부로 약속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하고자 했던 일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나도 대학원 졸업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했고 졸업을 한다 해도 이후에 보장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 잘 될 거라고, 걱정 말라고 위로하는 대신 그는 정말 현실적인 위로를 해주어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까지도 이런 존재가 되어주고 있다.


미래가 다 아름답고 좋고
다 잘 될 거라고는 못하겠지만
힘들고 지칠 때 옆에서 손 잡아줄 수는 있어.
그러고 싶고.




하루는 밥 먹고 걷는데 나보고 눈을 감아보라고 했다. 손 잡아줄 테니 눈을 감고 걸어보라고.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일단 해보기로 했다. 강남에서 교대까지 눈을 감고 걸었다. 눈을 감으니 잡고 있는 손과 그의 음성 안내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발을 한 발짝 떼는 것도 솔직히 좀 겁이 났는데 이 사람의 안내를 신뢰하기 시작하니 점점 대담해졌다. 그리고 눈을 감으니 많은 게 들렸다. 차 소리, 지나가는 사람 소리, 바람 소리, 낙엽 굴러가는 소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바쁜 도심의 일상 속에서 쉽게 해 볼 생각 못하는 것들을 이 사람을 통해 함께 해보는 게 재미있고 또 의미 있었다.




그는 종종 아무 말 없이 나를 뚫어져라 빤히 쳐다보곤 했다. 그럼 난 좋기도 하면서 알 수 없는 어색함과 불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루는 그런 나를 보고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너 이렇게 보고 있으면
처음엔 너도 같이 보다가
시간 좀 지나면 어색함을 떨치려고 하는 것 같아.
웃던지 질문을 하던지.
아무도 널 이렇게 봐준 적이 없었던 것처럼...


너무나도 정확했다. 맞다. 나도 그 날 처음 알았다. 지금까지 날 그렇게 봐준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러면서 그는 '처음에는 네 얼굴을 구석구석 보면서 예쁘다는 생각을 하고 시간이 좀 지나면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라고 덧붙였다. 뭐야... 심쿵... (죄송합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그가 나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직도 좀 어색하긴 하지만 이제는 웃음보다는 눈물이 날 것 같을 때가 더 많다.




이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 큰 소리 내면서 싸울 일은 없었다. 서로 서운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해서 토라지기는 했지만 다투더라도 그 날 바로바로 풀었고 십중팔구는 그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나는 서운한 게 있거나 화가 나면 이야기하기가 싫어져서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편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일단 싸우는 게 두려워서다. 싸우면 이 관계가 끝나버릴 것 같아서 싸움을 피해버리는 것. 전형적인 회피형이다. 두 번째 이유는 너무 화가 나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으니 시간을 두고 마음이 좀 가라앉고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려고. 그리고 마지막은 속 좁은 이야기지만 그냥 상대에게 눈치 주고 상대를 답답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그는 내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정말 정말 엄청나게 힘들어했다.


이야기 안 해버리는 거, 그게 나한테도 제일 쉬워.
그런데 너랑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그때 그 사람도 입 다무는 편이 쉽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매 번 먼저 대화의 물꼬를 틀고 어떻게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화해의 제스처를 보낸 것도 그 사람이었기 때문에 난 이 사람은 나와 반대로 뭐가 됐든 이야기를 해야 하는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그 날 이후로 화가 났을 때 꿍해있기보다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나름 애쓰고 있다. 지금도 잘 되진 않지만...^^;




각자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면서 서로를 응원하며 두 번의 가을을 보냈다. 나는 대학원의 마지막 관문인 졸업시험을 봤고 그는 회사를 세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종일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던 나는 졸업시험 이후 한가한 백수가 되었다. 늦잠도 자고 그간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며 신나게 놀았다.


당시 음악을 좋아하는 동기 언니를 중심으로 통번역대학원 동기 몇 명과 함께 학교 근처 카페를 대관해서 미니콘서트를 준비했다. 홍보물을 만들어 우리 과는 물론, 다른 과 동기와 후배들도 초대했다. 원하면 지인도 함께 오라고 했다.


12월 말, 콘서트 당일에는 대부분 우리 과 동기들이 대부분이었고 후배님 몇 분이 자리해주었다. 나도 남자 친구를 초대했는데 일이 바빠 참석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콘서트가 시작되었고 동기 언니의 매력적인 음색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창 콘서트를 즐기고 있는데 노래 몇 곡을 마친 언니가 잠깐 어색해하며 뜸을 들이더니 누군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소개를 받고 무대로 나온 사람은 남자 친구였다. 뭐지?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못 온다고 했는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난 너무 놀랐다.


남자 친구는 마이크를 잡고 어쩔 줄 몰라라는 내 앞에서 어쩔 중 몰라하며 입을 뗐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앞에 앉아있는
ㅇㅇ의 남자 친구 되는 사람입니다.


남들 앞에서 이런 거 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특별한 사람에게 청혼을 하고자 한다며 좋은 시간 보내고 있는데 양해를 구한다는 말과 함께 노래를 시작했다. 정인의 ‘오르막길.’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 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견디겠어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우리가 산행을 하고 클라이밍을 하며, 이게 인생이고 이게 삶이 아니겠느냐며 참 좋아하던 노래였다. 아끼는 동역자의 결혼식 축가로도 불러줬던 곡. 들을 때마다 미소 짓게 되고 또 눈물 날 것 같은 그런 곡.


남자 친구는 정말 떨리는 손과 마음으로 나에게 청혼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럽고 쑥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는데 남자 친구의 고백을 들으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노래가 끝나고 남자 친구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내게 물었다. “Will you marry me?” 난 너무 좋아서 대답하는 건 잊은 채 웃고만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주 힘차게 대답했다. “Yes!”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벤트 하는 건 나도 남자 친구도 정말 좋아하지 않는데 2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통대 동기들이기 때문에 양해를 구하고 그 자리를 택했다고... 몰래 내 휴대폰에서 언니 연락처를 찾아 일면식도 없는 언니에게 소중한 콘서트에서 3분만 써도 되겠느냐고, 그리고 반주를 좀 해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후 일정이 있어서 남자 친구는 그렇게 내 마음과 콘서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놓고 남은 시간 좋은 시간 되길 바란다는 인사를 남기고 총총 사라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긋지긋하던 서울이 아름답게 느껴지던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