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 vs. 어색한 표현
모 브랜드 CEO 언론 인터뷰가 있는 날이었다. 통역 중에 화장실을 갈 수 없으니 미리 다녀와야 하는데 자료를 보다가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약속된 시간 10분 전에 빠르게 다녀오려고 했는데 하필 이 날따라 CEO와 기자님 모두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신 것.
통역사님 어디세요?
문자를 받고 깜짝 놀라서 서둘러 회의실로 돌아갔고 바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이 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적어도 10분 전에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자.
We had Korean barbecue last night.
시작 전, 기자님과 잠깐 아이스브레이킹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워밍업을 하던 중에 나온 이야기다. 딱히 앞뒤 맥락 없이 이 문장만 봤을 때 Korean barbecue를 어떻게 옮기면 좋을까?
1) 삼겹살
2) 소고기구이
3) 한국식 바비큐
필자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일 먼저 삼겹살이 떠올라서 '삼겹살'로 통역했는데 동석 중이던 홍보 담당자께서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며 첨언(이라 말하고 정정이라 읽는다)해 주셔서 급히 내용을 정정했다. 대단히 중요한 내용은 아니어서 그렇게 넘어갔지만 순간 아차 싶었다. 난 왜 삼겹살을 떠올렸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통역사는 단어를 1:1로 치환하기보다는 내용을 이해 및 분석한 후 청자가 이해하기 쉽게 옮겨야 한다는 데 중점을 두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겠거나 모호한 경우에는 소위 말하는 '직역'이 가장 안전하다. 오역보다는 어색한 표현이 낫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통역사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다시 이 현장으로 돌아가 통역을 해야 한다면 Korean barbecue는 '한국식 바비큐'로 통역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종류의 육류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고기를 식탁 위 불판에 직접 구워 먹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식 바비큐'가 가장 정확하고 무난한 표현이지 않을까. 대화 흐름에 따라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무엇을 구워 먹었는지 추가 질문이 나오면 그때 보다 구체적으로 답이 나오겠지.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째 통역이라는 걸 하고 있지만 여전히 할 때마다 새롭고 배우는 게 있다. 내용적으로는 물론이고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정말 많다. 그래서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고들 하는 것인가 보다. 통역하러 갈 때 긴장을 늦출 수 없고 매 번 겸손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