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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라의앨 Dec 28. 2020

행동과 고민 그 어디쯤에서

진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하다




한국 본사로 돌아와서는 미국에서의 일과에 비하면 정말 여유로웠지만 일은 끊이지 않았다. 미국에 남아있는 팀원들을 통역과 번역으로 계속 지원했고 컨퍼런스콜도 자주 잡혔다. 시차가 있다 보니 밤늦은 시간에 회의가 잡히곤 했는데 다행히 당시 우리 회사는 자율출퇴근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부서 내 일정에 따라 하루에 정해진 근무시간 또는 일주일 간의 근무시간만 채우면 됐기 때문에 밤늦은 시간 컨콜이 잡힌 날에는 오후 4시에 출근해서 새벽 1시에 퇴근하는 식의 출퇴근이 가능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좋은 회사 참 좋은 부서였어...^^)


한국에 돌아와서 의료정보시스템 전문가이신 여자 부장님 A 수석님과 같은 회의에 참석할 일이 많았다. 미국에서 진행됐던 시범 프로젝트에 함께하진 않으셨지만 하나의 제품으로서의 우리 시스템을 책임지는 분이셨는데 간호사 출신으로 의료와 IT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으셨다. 과하게 수다스럽지도 그렇다고 심하게 무뚝뚝하지도 않고 담백하고 소탈하셨다.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으신데 겸손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면이 참 멋진 분이셨다. 사내 정치나 줄타기보다는 전문성으로 실력으로 인정받으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런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부 워크숍도 두 차례 진행하며 시범 프로젝트 이후 시스템의 범위를 확장하는 작업도 이어갔다. 워크숍 한 번 하면 보통 월화수목금 5일간 진행하고 워크숍은 곧 풀데이(종일) 통역을 의미했다. (젊은 나이였음에도)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었고 오후 쉬는 시간에 나는 5분에서 10분 정도 쪽잠을 자는 날도 있었다.


캡슐 모양의 의자라 잠깐 눈 붙이기 좋았던 공간.


네? 프로젝트 매니저요? 제가요?

두 차례의 워크숍을 마무리하고 한 숨 돌리고 있던 주간에  수석님께서 회의실에서 잠깐 보자고 하셨다. 그리고는 (내 기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요청을 하셨다.


한 미국 대학의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 학생들과 함께 여름방학 동안 진행할 10주짜리 소규모 프로젝트 PM을 맡아달라고 하신 것.


난 단칼에 거절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늘 중요하게 생각 생각했듯이 계약서에 명시된 업무 범주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수석님은 회사에서 우리 사업(프로젝트)을 전폭 지지하고 있고 고객사와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리고 홍보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며 간곡히 부탁하셨다.


난 그 어떤 의사결정도 할 역량이 안되니 주요 회의에 의사 결정할 수 있는 담당자를 반드시 붙여달라는 조건을 걸었다. 비즈니스든 IT든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됐기 때문.


그렇게 길고도 길었던 10주 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프로젝트 착수를 위해 출장길에 올라 해당 대학에서 6명의 학생과 담당 지도교수를 만났다. 나는 PM으로서 프로젝트의 취지와 목표를 설명하고 매주 컨콜을 통해 재미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했다. 이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도 힘들었고 발표하는 순간에도 얼마나 긴장됐는지 모른다. IT도 의료도 잘 모르는 내가 컴퓨터공학 석사생들과 심지어 교수님 앞에서 뭐라고 떠들어댄 건지...


질문이 굉장히 많았는데 다행히 첫 만남에서는 대부분 내가 아는 범주 내에서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프로젝트 통역하면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들 그리고 빡세게(?) 훈련한 덕분. V 수석님도 그간 내가 통역하면서 알게 된 내용으로 이 정도는 커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셨단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과 가장 편하게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으니 우리 팀에서 내가 가장 이 역할에 적합하다고 보셨던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와 매주 기술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회의에서는 미국에서 함께했던 개발팀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다행히(?) 컨콜이었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영역을 개발팀에서 커버해주셨고 난 이후 모르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나머지 공부를 자처했다.


10주에 걸친 프로젝트의 끝은 경진대회였다. 사실 우리를 포함해 이렇게 산학협력으로 여름방학 프로젝트를 진행한 팀이 총 6개였고 대회를 통해 가장 완성도 있고 추후 사업화 가능성이 있는 팀의 시스템을 뽑는 것이었다.


경진대회에 참여하고 또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위해 수석님 두 분과 함께 또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아쉽게도 우리 팀이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통역사가 아닌 역할로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또 하나의 산을 무사히 넘었다. 하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안 아니 못할 것 같다^^

 

영화 ‘섹스앤더시티’로 유명해진 뉴욕의 레스토랑 ‘사라베스’에서.


출장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날 저녁은 사라베스(Sarabeth’s)로 정했다. 그리고 이 날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V 수석님 그리고 A 수석님 두 분께 조르고 졸라 내가 밥을 샀다. 사실 그동안 두 분께 너무나도 많이 얻어먹었고 또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 내가 뭘 해드리려고 하면 절대 못하게 하셨다. 이 날도 아니라고 하셨지만 나도 고집이 있어서 이번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내가 받은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근사한 밥 한 끼 내 돈으로 사드리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이후 전해진 기쁜 소식.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파트너사와 정식 계약을 하게 된 것! 정말 계약이 성사된 것이다. 믿기지 않았다. 미국에서 고군분투할 때는 이게 정말 되긴 되는 건가 싶었는데 파트너사에서 우리 시스템을 만족스러워하고 실제로 전체 네트워크 병원에서 쓰기로 했다니! 현장에서 정말 치열하게 일했던 프로젝트 팀원으로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는가! 입사 후 1년 하고도 4개월 만에 경험한 수확의 기쁨이랄까 :)


계약이 성사되고 파트너사는 고객사가 되었다. 그리고 가을에 고객사 VIP 세 분이 한국에 오셨다. 우리 입장에서는 VVVIP이니 A to Z 모든 걸 철저하게 준비했다. V 수석님께서 공식 일정을 잡아주시면 나는 빈 공간을 식사와 문화 행사 등으로 채웠다.


VIP 분들이 와 계신 일주일 동안 나는 의전통역으로 대부분의 일정에 동행했다. 특히 미술관과 박물관, 고궁을 좋아하셨고 연세들이 있으셔서 호텔 내 마사지도 코스로 넣어드렸는데 너무 좋다며 추가로 더 받으셨다고^^


이전 글​에서 내가 한국문화 특히 음식에 관심이 많다고 했었는데 VIP 분들이 오셨을 때 한국문화 알리기를 실컷 할 수 있어서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 나도 한국문화에 대해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궁금해하시는 건 하나라도 더 찾아서 알려드렸고 나도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아직도 한국문화, 한국 음식을 알리는 일을 어떤 방식으로든 하고 싶은 일이다.)

마지막 날 내게 고맙다며 고급진 스카프를 선물해주셨는데 지금도 잘하고 다닌다. VIP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는 1주일간 한국에서 찍은 그분들의 사진을 정리하여 포토북을 만들어 보내드렸다. 값비싼 선물도 좋지만 의미 있는 소소한 선물이 좋을 것 같았다. 우리가 미국에서 파트너사로 처음 출근했던 날 머그컵과 티셔츠 등이 담긴 선물상자를 책상에 올려두셨던 것처럼^^




끊임없이 뭔가 바쁘게 돌아가고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고민할 시간도 여유도 없는 게 사실이다. 나는 일하면서도 진로를 놓고 계속 고민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우리 팀 사람들, 특히 수석님들은 알고 계셨다. 정규직 제안도 하시고 외국계 회사로 이직하는 것도 추천하셨다. 솔직히 솔깃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이분들이 추천해주시고 또 적극 밀어주시면 뭔가 될 것도 같았다. 그렇게 직장인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뭘 할 때 가장 신나고 살아있는 것 같은지 생각해보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통역할 때였다. 2년 가까이 회사 생활하면서 다양한 일들이 주어졌고 각각의 업무에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가장 나답게,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게, 그리고 더 욕심나는 게 통번역이었다. 아직은 통역하면서도 스스로 한계를 많이 느꼈지만 그래서 전문적으로 배우고 훈련받아 통역 번역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언어 좀 한다고 누구나 통번역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처절하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회사생활 2년을 채우고 난 퇴사를 했다. 사실 계약직이었기 때문에 ‘계약 만료로 인한 퇴사’가 정확하겠다.


회사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 상태로 입사해서 본의 아니게 참 많은 걸 보고 듣고 경험했다. 덕분에 실무진의 아주 기술적인 이야기도 듣고 또 경영진의 큰 그림도 볼 수 있었다. 내가 했던 일을 보면 대기업보다는 초기 스타트업에서 일한 것 같다. 그래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낼 수 있었다.


퇴사하던 날 SNS 포스팅


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여성으로 사회생활하기가 여전히 참 힘든 세상임을 갈수록 체감한다. 나이 불문하고 여성으로서 사회생활하면서 불쾌한 일을 겪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주위에서도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들었다. 안타깝게도 2년 동안 내가 전해 들은 내 주위 사내 성희롱 건만 해도 네 건. 하지만 가해자에게 타격을 줄만한 직접적인 징계는 없었다. 이런 걸 두고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하는 건가 싶었다. 이런 사건은 가해자를 앞에 세워두고 아주 공개 처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만으로도 정말 불쾌하고 화가 났다.


 

나는 감사하게도 2년 동안 한 개인으로서 정말 존중받으면서 일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상사와 같은 팀에 계신 분들은 첫 회식에서 내가 술을 하지 않는다고 하자 단 한 번도 내게 술을 강요하지도 않으셨고 심지어 내가 술을 따라드리는 것도 못하게 하셨다. 사적인 이야기도 종종 주고받았지만 내 연애사나 결혼에 대해 묻거나 내가 불편해하는 이야기는 더 캐묻지 않으셨다.


사람이니 실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대가 분명하게 불쾌하다는 의사를 표하고 싫다고 이야기하면 거기서 멈춰야 한다. 장난도 선을 지켜가면서 쳐야 한다. 제발 입 조심 손 조심 하자.



회사생활을 통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기회가 주어지고 마음이 가면 일단 해보는 성격이라 큰 고민하지 않고 뛰어들었는데 정말 좋고 멋진 분들을 만나 많이 배우고 다양한 걸 경험할 수 있었다. 직접 해보지 않고 어찌 알겠는가. 해보았으니 이게 나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 판단할 수 있고 그렇게 하나씩 가지치기를 하다 보면 남아있는 몇 개의 옵션 중에서 선택하기가 한 결 쉬워진다.


시작하기에 앞서 고민과 생각이 너무 많으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렇다고 내 인생, 내 앞길에 대한 큰 고민 없이 발부터 떼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둘 사이의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었고 딱히 뭘 해야 할지도 몰랐던 스물넷의 나로서는 기회가 생겼을 때 일단 덥석 물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다. 대신 그 과정에서 내 나름대로 가지치기를 부지런히 했다.


그리고 통번역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기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통번역을 좋아하는 건 맞는데 실력은 되는 걸까?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이 길을 가도 될까?
통번역이 싫어지면 어쩌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면 정말 통번역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그럼 진짜 영어로 먹고살아야 하는데 내 영어가 그 정도 실력이 되나?


얼마나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는지 모르겠다. 이런 질문을 하고 있으면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자신이 없어졌다. 종종 주변에 이미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했거나 졸업해서 일하고 계신 분들을 만나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기도 했는데 공통적으로 이야기해주셨던 건 좋아하면 하라는 것이었다.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직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는 지금, 나도 그렇지만 주위에 계신 대부분의 동료 선후배 선생님들 대부분은 이 일이 정말 좋아서 한다. 통역과 번역 행위를 통해 느끼는 재미와 보람이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포스팅에서 다시 다루는 걸로!)


물론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해야겠지만 난 본질에 집중하면 현실은 만들어지고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실 통역과 번역 요율이 어떻게 되고 시장 구조가 어떻고 이런 건 전혀 모르는 상태로 대학원에 진학했고 현재 현실적인 조건도 만족스럽다. 사람마다 가치와 기준이 다르기에 정답은 없겠지만..^^


그렇게 내 나름 오랜 시간 묻고 고민한 끝에 나는 결단을 했고 퇴사 후 내 꿈을 위해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2년 전 낙방했던 통번역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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