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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Aug 08. 2020

싱잉 볼

우리는 물 위에서 춤을 추지


생일을 맞아 보고싶었던 전시에 다녀왔다. 피크닉에서 하는 명상. 

8개의 작품 중 반은 좋고 반은 무감했다. 생일이라서, 그날 입은 착장이 마음에 들어서, 간만에 머리를 풀었는데 뻗치지 않고 잘 있어줘서, 여름의 더위와 선선한 바람이 함께 하는 날씨라서,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여서, 주변이 고요해서. 그래서인지 대체적으로 좋은 전시로 기억에 남는다. 


가장 좋았던 건 slow walk. 헤드폰을 끼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맨발로 돌, 자갈, 모래 위를 빙빙 돌다 나오는  전시였는데 맨발로 땅을 밟아본게 언제인가 싶었다. (모래사장 제외) 인간은 고작 자연의 일부인 주제에 자연과 너무나 괴리된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이렇게 유해하게 살아가는 걸까 싶다. 


딸을 잃고 티벳으로 떠난 작가가 담은 순례 영상도 좋았다. 지반에 가깝게 촬영한 시점도, 형형색색 나부끼는 깃발도, 설산도. 여행 리스트에 티벳이 추가되었습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이번 여름엔 유럽으로 떠나 산티아고를 걷고 오고자 했는데. 



피크닉은 공간을 잘 활용하는 전시관이다. 사람들이 우글거리지 않게 의도적으로 만든건진 모르겠지만, 요즘 핫하다는 전시관들과는 달리 비교적 고요해서 좋았다. 현대인이 고요를 향유하려면 결국 돈이 필요하다. 인간과 기계의 소리가 차단되고 자연 그자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을 떠올리기 어렵다. 돈 많이 벌어서 강원도 산골에 별장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다음주는 기필코 로또를 사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모든 문명과 인간이 차단된 곳을 찾을 수 없다면 만들고 싶은 마음.


다시 돌아와서 명상 전시에 관심을 갖게 된건 순전히 엄마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기승전 명상러다. 화가 많고 욱하는 기질이 있는 내게 늘 명상을 권한다. 청개구리 딸은 매번 말로만 알겠다고 한다. 엄마 말고도 외시를 준비하는 대학 동기 녀석도 명상의 장점을 늘 상기시켜주며 링크들을 보내주는데 '나에게 보내기' 해놓고 여즉 한번도 보지는 않았다.


엄마와 떠난 제주도 여행을 떠올린다. 돌담길이 이어져있는 조용한 동네, 평대리. 차도, 사람도 별로 없다. 숙소 앞 마당에 앉아있으면 멀리서 바다가 들려오고 새가 지저귀는 곳. 엄마는 마당에 방석 하나 놓고 앉아서 명상을 하곤했다. 나는 그 옆 의자에 앉아 담배를 폈고. 행복이라는게 별건가 했다. 


국립외교원을 준비하는 친구는 일어나서 한 번, 자기 전 한 번 명상을 한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확신으로 바꿔준다나. 대학 때부터 우리 엄마랑 잘 통하던 친구였는데,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을 말해주었더니 아이처럼 좋아했다. 우리 엄마도, 그 친구도. 


두 사람과 통화를 하거나 카톡을 할 때마다 오늘은 꼭 명상을 해보고 자거라로 끝이 난다. 지독한 명상 러버들. 엄마와 친구는 바쁘고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삶 속에서 매일매일 고요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평생을 시끄럽게 살아왔다. 나 자체가 주의산만에 헛소리를 달고 사는 수다쟁이 인간이고, 고등학교 때는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복작거리면서 살았다. 대학에 와서는 서울의 핫하다는 클럽과 라운지를 찾아다녔다.  글과 말이 첨예하게 싸우는 곳이 일터였다. 쉴새없이 울려퍼지는 민원전화는 덤이었고. 하루종일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거린다. 혹은 좋아하는 영화를.


30년을 그렇게 살아서인지, 시끄러운 도시 속 늘 고요를 찾아 헤맨다. 사람이 별로 없는 식당, 장소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쉴새없이 울리는 카톡, 텔레그램, sns 알림과 전화들을 보고도 모른체 하고 지나가는 일들이 많아진다. 일을 쉬고 있어서 가능한 일들이다. 


아직까지는 도시의 소음이 그립지 않다. 그럼에도 아주 깊게 침전해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어렵다. 가만히 누워있는 것은 잘하지만 늘 손에 아이폰이 들려있기 마련이다. 고요히 나라는 에너지 그 자체만 존재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수행이고 수양이다. 어쩌면 내 자신을 탐구하는 것이 두려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멈추고 다음 발걸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유예하는 습관일지도. 


타인과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자 서울을 떠나 본가로 내려왔지만 한달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내 에버노트는 백지상태다. 번아웃은 어느정도 이겨낸듯하다. 아직 일할 에너지가 충분치는 않지만 목표가 생기면 돌진하는 성격이니 몸에서는 어떻게서든 동력을 만들어낼테다. 다만 행동으로 옮기기 전 서른이라는 요상한 나이에 맞은 터닝 포인트의 방향을 어찌 설정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새로운 일을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하는게 좋을까,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들을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유예한다. 


오늘로 본가에 내려온지 딱 30일이 되었다. 그동안 13편의 영화를 봤고 삼국지를 완독했고 늘어지게 잠도 잤다. 고양이를 껴안고 하루종일 뒹굴거리기도 했다. 엄마와 침대에 누워서 우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헛소리를 하다 엄마의 미래 사위에 대해 토론하고 별 것아닌 것들에 웃었다. 장마철과는 달리 그 어느때보다 부들부들하한 날들이었다. 진즉에 시작하는 싱잉 볼은 댕하고 울렸다. 소리의 울림은 꽤나 길어지고 있지만 깊지는 않다. 끝을 알리는 싱잉 볼을 치는 것도 내 몫이다. 이미 늘어져버린 울림이지만 지금이라도 나는 소리없는 춤을 춰야지. 내일을 한 달 뒤를, 1년을 10년을 상상하며 가볍게도 깊게도 상상의 춤을 춰야지. 고요한 방에 안장있는 지금도 머릿 속은 여전히 시끄럽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솔직한 울림의 춤을 출 때다. 애를 써야겠지만 그 과정도 아름답기를 바라며.


diving into the 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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