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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Jan 25. 2021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101일간의 여정 11주차 

10명의 사람이 모여 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합니다. 2주마다 한 명씩 질문 하나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연재도 하고 있답니다. 벌써 반환점을 돌았어요. 50개의 질문에 답하다니. 101개의 답변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마라톤을 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임해보겠습니다.


51 내 영혼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

누구나 그렇듯 내 영혼은 아주 다양한 것들을 가리키고 있다. 호크룩스 마냥 영혼이 쪼개져있나. 그 종착지가 어디가 될지 모르겠다. 너무 많은 것을 한 손에 쥐려고 하니 이렇게 방황하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삶의 방향성이 모호해지는 느낌이다. 필요한 것은 많아지고 정작 가진 것은 사라지는 것 같은. 융은 영혼을 인간의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와 생명의 원리로 작용하는 실체로 보고 정신과 다른 것이라고 하였다.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사전적 의미를 끌어와서 답을 풀어내야겠다.


지금의 영혼은 새로 시작하는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욕망을 향해 있다. 최근에는 소비를 향한 영혼은 잠시 잠들어 있는 상태다. 내 영혼은 다양한 여행지를, 책, 영화, 공연, 전시를 아우르는 문화생활을, 이름을 떨치고 싶다는 욕망과 좋은 일을 하고 살고 싶다는 소망, 여러 군데로 향해있다. 아쉽게도 영혼을 가리키는 곳으로 잘 가고 있지는 못하다.


얼마 전 영화 소울을 보고 왔다. 각 영혼들은 7개인가 6개인가, 스파크(불꽃)들을 찾아야 지구로 향할 수 있다. 소질이나 재능이 있는 것, 가슴을 뛰게 하는 것들을 찾으면 지구로 갈 준비가 되는 것인데 주인공은 '조'는 자신의 스파크가 음악, 재즈라고 믿고 사는 사람이다. 지구로 내려가기 싫어하는 소울 22번은 마지막 스파크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혹은 찾고 싶지 않아하는)  우연한 계기로 지구를 잠시간 경험하게 된다. 공활한 가을 하늘, 지하철에서의 버스킹 음악 소리, 길거리 가판대에서 파는 피자 냄새, 떨어지는 낙엽 한 장,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늘 우리 곁에 있는 사소한 것들이 22번이 지구로 내려가게 할 준비를 마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조는 학교의 재즈 밴드부 선생일을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즈 바에서 뮤지션들과 매일 연주하고 사람들에게 재즈를 통해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예술가의 길이 자신의 길이라고 믿는다. 그냥 이렇게 생을 마감할까 봐 두려워하며 말이다. 자신 속에 있는 스파크인 재즈로 성공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자 목표라고 믿는다. 누구나 꿈이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로 성공하고 싶어 한다. 그 성공의 크기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나 또한 조와 같은 두려움이 있다. 평범하다는 것이 아주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평범하게 살다 갈까 봐, 하고 싶은 일로 나를 규정하고 내 삶을 만들어 갈 수 없을까 봐. 나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일을 통해 내 이름을 알리고 싶다. 더 많은 목소리를 듣고 대신 말해줄 수도 있는 위치에 오르고 싶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과 욕망의 괴물이 되어버리려나. 영혼의 지도가 미로가 되어 그곳을 헤매며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것처럼 살까.


22번의 말처럼 나의 재능은 걷기일지도 모른다. 그저 살아가는 것이 나의 소명일지도. 영화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A Spark Isn't A Soul's Purpose." 불꽃에 얽매여 영혼이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늘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지만, 그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도 내 생의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갈 수 있기를. 다양한 곳을 가리키고 있으니 나의 영혼 마을의 지도를 그려가고 싶다. 재밌는 여정이 될 것 같다. 


52 선종을 위해 노력하는가

불교의 선종이란 이러하다. 참선수행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요시하는 불교의 한 종파. 가톨릭의 선종이란 착한 죽음 혹은 거룩한 죽음을 뜻한다. 선생 복종(善生福終),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생을 끝마치는 것. 방법은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한 일인 것 같다. 나의 내면을 돌보고, 진리를 탐구하고 깨우치고, 착하게 살아라, 그것 아닙니까? 내 이름은 할머니가 다니시던 절의 큰스님이 지어주셨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나는 심정적으로 두 종교의 선종 모두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만 같다. 


참선수행은 아니지만 명상을 하려고 마음을 늘 먹고 있다. 작년 말 마음이 혼란해 엄마가 늘 잔소리처럼 말하던 명상을 해보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눈을 감고 명상을 하다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부정적인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저 내가 바라는 모습을 떠올리고 그 모습을 빛으로 치환해 아주 멀리 진공의 상태에 도달했다는 상상을 그려보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비워내고 나니 다시 뭐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느껴졌다. 12월의 강릉에서, '채'는 나의 세계를 확장함으로써 불안을 아주 작은 먼지처럼 만들어 버리라는 조언을 해줬다. 눈을 감고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곳을 무한히 확장하는 것. 명상은 올해 내가 루틴으로 만들고 싶은 것 중 하나다. 목표를 세웠으니 작심삼일이라도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온전히 명상에 집중하는 데는 아직 좀 더 수련이 필요하지만. 


가톨릭에서 말하는 거룩한 죽음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참고로 '거룩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매우 높고 위대하다,라고 한다. 좋은 일을 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거룩한 삶을 살기에는 나는 너무나 범인이다. 그러나 기꺼이 선종을 위해 노력하며 살 테다. 


53 나는 왜 운이 좋은가

암 어 러키 걸, 인 어 러키 워어얼드~ (바비걸 차용) 중요한 시기마다 백퍼센트의 행운은 아니더라도 운이 따랐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수포자였다. 원하는 대학에 가려면 수학 점수가 어느 정도는 나와줘야 하니 고3 때 다른 공부는 제쳐두고 수학만 죽어라 팠다. 어려운 문제는 스킵하고 아는 문제는 최대한 다 풀자는 전략으로. 마침 내가 수능을 친 해의 수리 영역은 물수능이었다. 신나게 아는 문제를 열심히 풀고 헷갈린 문제는 풀다 말고 수식에다 선택지들을 넣어보기도 하고 주관식 문제는 눈치게임으로 0, 1 같은 숫자들을 마킹했다. 가채점 결과 수능에서 가장 높은 수리 영역 점수를 얻었다. 전체 성적을 보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국회에 처음으로 지원했던 의원실 인턴 자리도 운이 따랐다. 나 대신 다른 언니가 합격했는데 마침 그때 비서관이 예상에 없던 육아휴직을 쓰며 일손이 부족해진 것이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었고 나에게 입법보조원이지만 인턴에 준하는 월급을 줄 테니 일하러 오겠냐는 제안을 나는 당연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첫 발을 뗀 유인태 의원실은 나에게 많은 것을 선사했다. 유인태라는 현대사의 굴곡을 겪은 정치인을 만났고 국회에서 보기 드문 붙잡고 가르치고 혼내는 사수를 만났다. 그 후에도 운이 좋게 비서관 자리를 꿰찼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처럼 행운이 찾아온 것은 우연이 7할 그리고 그 운에 올라탈 수 있었던 노력이 3할쯤 되지 않을까. 면접 때 유인태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내뿜은 것, 혼나면서도 더 좋은 질의서를 쓰기 위해 묻고 또 깨지고 성장했던 시간들, 펑크를 내는 직원들 사이에서 그 구멍을 메꾸기 위해서 밤새서 일했던 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야 운이 좋은 사람'과 같은 한가한 소리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늘 내가 한 노력보다 늘 좋은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죽어라 노력해도 운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나는 운이 좋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산다. 운 없이 100% 노력을 다 해본 적이 있는가. 그런 경험이 별로 없는 것은 나에게 늘 불안으로 남아있다. 죽어라 노력했다가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는 방어기제가 내 속에 있는 것일지도.


나아가 사람들이 운이 없이도 잘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각자가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행운이 아니더라도 가진 것에 따라 불운이 덮치는 일은 없는 세상 말이다.


54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원하는 삶의 형태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어서 그런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뭔지? 뭣도 모르는 10대 때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면 한강이 보이는 오피스텔에 살며 차를 끄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돼있을 줄 알았다. 현실은 장롱면허에 한강은커녕 서울의 집값을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중이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니 어떤 면에서는 원하는 삶에 가까워졌다. 효로님과 장난스레 소망에 가까운 연도별 계획을 세워본 적이 있다. 노트 끄트머리에 몇 살 때는 어떤 일을 하고, 40대가 되면 어떤 자리에 가고, 거시적인 이야기들. 그 노트에 나는 30대 초반에 '관'자리를 얻겠다는 목표를 끄적였다. 국회에서 목표하던 단기적이고 1차적인 목적지였다. 예상보다 빨리 운이 좋게도 나는 29살에 비서관 자리를 얻었다.


그 후 계획을 조금 변경하게 되었기에 원하는 삶과는 다시금 멀어졌다.  30대가 되면 무언가가 안정될 것만 같았다.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그렇게 살기에 나는 생각보다 모험심이 많은 편이었고 편하고 쉬운 길보다는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왔더라. 이제 서른 하나가 된 지 일주일이 지났으니 9년 11개월 3주가 지난 뒤 나의 30대를 바라보면 그 삶에 가까워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만들고 싶고.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그에 따른 물질적인 보상이 따르는 것. 그를 통해 더 많이 베풀 수 있는 삶. 내 이름을 알리고 목소리가 커지고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삶. 과연 나는 올바르게 그 길로 가고 있는가. 방향은 맞겠지만 목적지에 잘 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삶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그 일들은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인생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원하는 삶이 멀리 달아나는 것 같지만 누가 알겠는가. 당장 내일, 다음 달에, 혹은 몇 년 뒤에 내 인생을 뒤흔들 사건이 일어날지. 


그리고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지 않더라도 그것이 온전히 내 탓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만의 노력으로 가진 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55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얼마 전 엄마 또래의 여성에게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을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굳이 낳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답했다. 낳는다면 한 명 정도. 그녀는 아이는 꼭 낳아야 한다고 말하며,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이만큼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덧붙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라 뭐라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아직 결혼할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엄마라니. 상상이 가지 않는 그림이다. 정말로 엄마가 된 나의 모습을 전혀 떠올릴 수가 없다. 


만약 내가 엄마가 된다면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아이가 원하는대로 모든 것을 해줄 수 없겠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라는 자아도 같이 성장하는 관계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관계가 아닐까 싶다. 우리 엄마는 나의 가장 가깝고도 친애하는 친구다. 엄마를 엄마로 만나서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로서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려나.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과 충만함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외로웠다고 엄마는 언젠가 말했다. 쌍방향 소통이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으앙 하는 울음소리로 배가 고픈지, 똥을 쌌는지, 잠이 오는지, 안아주기를 원하는지 짐작하고 신경을 곤두세울 자신이 내게 있는가. 밥투정을 하고 말하는 것과 반대로 구는 청개구리 시절의 아이를 보고 화를, 짜증을 내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나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찾도록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을 것인가. 좋은 엄마의 예는 아주 수없이 많겠지만 나쁜 엄마가 되지 않을 필수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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