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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Jun 15. 2021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원하는가

101일간의 여정 13주차

10명의 사람이 모여 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합니다. 2주마다 한 명씩 질문 하나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연재도 하고 있답니다. 벌써 반환점을 돌았어요. 50개의 질문에 답하다니. 101개의 답변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마라톤을 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임해보겠습니다.


61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는가

 기억할 만한 장례식에 갔는가,  엄마의 엄마를 기억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할머니와의 추억을 써내려갔다. 나와 피가 섞이고 가장 가까우며 사랑했던 사람 중 떠나보낸 사람은 할머니가 유일할 것이다


 2009년 5월 23일은 내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기억되는 날일 것이다. 노 대통령의 서거일이기 때문이다. 기숙사 학교의 고3이던 때, 한달에 한번 집에 갈 수 있는 그 달의 마지막 주말이었다. 느즈막히 일어난 뒤 처음 접한 뉴스는 노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었다. 모든 뉴스가 대통령의 죽음을 보도하기 바빴다. MB에게 정중히 인사하던 문재인을, 거리를 잔뜩 물들이던 노란 물결을,  화장터 넘어로 사라진 그를 보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정치외교학과로 진학을 꿈꾸며 공직에서 일하리라 마음 먹었던 10대 소녀에게 노무현은 우상이자 다시 없을 대통령이었다. 그의 공적인, 개인적인 흠결을 떠나 그의 비전은 시대를 앞서갔고 반짝거렸고 여전히 우리가 이뤄내지 못한 것들로 가득했다. 따뜻한 말로, 가슴 뛰는 말로 사람들의 가슴에 그의 비전을 심어주는 사람이었다. 솔직함, 진정성, 대담함, 따뜻함. 그 어떤 권력자도 보여주지 않았던 인간적인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가 탄핵됐을 때,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친구 문재인이 다시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왔던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다.


 뭣도 모르는 19살의 나는 그의 죽음을 떠올리며 한동안 숨죽여 울었다. 그를 비난하는 다른 반 친구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49재 하루 전 날 친구와 함께 학교에 거짓말을 하고 몰래 봉하마을로 향했다. 당연히 여관 하나쯤은 있으리라 생각하고 도착한 봉하마을은 가로등도 몇 개 없는 말 그대로 동네 사람들만 사는 그런 시골이었다. 깜깜한 마을에 유일한 불빛은 봉화산 위 정토원으로 향하는 연등이었고 달리 방법이 없는 우리는 어둠을 헤치고 산을 올랐다. 여자애 둘이 오밤중에 사찰 마당에 우두커니 서있으니 보살님은 매우 놀랐을 것이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주지 스님이 지내는 곳 한켠에 이부자리를 마련해주셨다. 1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무슨 객기였는지 모르겠다. 스님은 내일은 49재날이니 사람들로 바글거릴테니 지금 미리 절을 올리라며 자리를 비켜주셨다. 그의 영정사진, 새소리 곤충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밤, 향 냄새. 뭐가 뭔지도 모르고 절을 올리고 나왔을 때 봉하마을에 오면 그의 죽음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나는 여전히 그의 부재를 느끼지 못했고 가슴은 답답했다. 그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 다음날은 손님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봉사단의 수장 우물지기 교수님을 따라 나름대로 손을 보탰다. 고딩 여자애 둘이 기특했는지 다른 봉사단 아줌마들 몰래 특별 제작한 손수건을 챙겨주시기도 했다. 보살님들도 돌아가는 길에 차비라도 하라며 주머니에 용돈을 넣어주시고, 간식을 싸주시고. 봉하마을 가득히 채운 추모객들을 보며, 지금은 대통령이 된 그의 친구와 국회의원이 되어 구태 정치를 하고 있는 과거의 동지들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여기 모인 사람들이 못다 이룬 그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랬던 것 같다.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더 지났다. 그를 까마득히 잊으며 지냈던 날들도, 그의 비전을 다시 가슴에 새기며 살아간 날들도 있었다. 숫자를 조합해야하는 비밀번호에 대부분 그의 서거일이 들어간다. 그렇게라도 잊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의 꿈이 다 이루어진다면, 그가 꿈꿨던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때는 그를 보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세상이 와도 영원히 가슴에 남아있을지도.


 고등학교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연설은 아이팟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트랙 중 하나다. 나는 아직도 이 연설보다 가슴 뛰는 연설을 만나지 못했다. 


"조선 건국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꾸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음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 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하는 사람은 모든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옆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며 밥값을 하면서 살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새겨 담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돌이 정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활기넘치던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두거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지금 차례에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랜만에 그의 연설을 들어본다. 그가 살아있다면 지금의 세상을 보고 어떤 비전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더이상 들을 수 없는 그의 연설이, 그의 이야기가 그립다. 


62 아름다운 바닥을 보았는가

 트위터나 인스타를 둘러보다 보면 누군가가 올린 파도 속의 영상들을 마주칠 때가 있다. 대학생 시절 파나마로 봉사활동을 떠나서 주말마다 떠났던 카리브 해에서도 그런 바다를 만났다. 수많은 섬들로 이뤄진 'san isla'의 이를 모를 섬에서 끝도 없이 맑은 바닷 속을 한없이 유영했다. 수영을 하지 못해서 멀리 나가지는 못했지만. 파타야 어딘가에서 실제로 바다의 바닥을 마주했다. 아름답지는 않았다. 씨워킹이라고 우주 비행사들이 쓰는 헬멧을 쓰고 바다 밑으로 들어가는 레저였는데 뿌옇기만 해 아무런 감흥없이 뭍가로 올라왔던 기억이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심해 사진은 사실 아름답다기 보다는 공포스럽다. 카리브해에서 스노쿨링을 한 적이 있는데 물이 엄청나게 맑지만 어느 부분은 아주 깜깜했다. 아마 그 아래는 아주 깊은 해저 동굴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쪽으로는 가지 않으려 엄청나게 발버둥 쳤던 기억이 난다. 심해는 미지의 세계다. 작년 여름 심해 생물을 그려놓은 웹사이트를 발견했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깊어지는 바다에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는지, 인간이 어디까지 내려왔는지, 잠수함은 어디까지 심해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6590미터의 설명은 'Life here is sparse. the extreme conditions make survival difficult.' 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6704미터에 도달하면 이런 말이 나온다 'but still not impossible.'  


 아름다운 바닥이란 것이 존재하는가. 바닥으로 향할수록 생명체의 생존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것이 바다의 바닥이건, 현실의 바닥이건. 코로나 때문에 바닥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겪은 재난들을 보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의 바닥을 보고 나서는 그 사람과의 관계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어느정도 정상궤도에 다시 오르곤 했지만 다시는 거리나 방향은 확연히 달라졌다 . 어떤 사람은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이라 바닥마저도 아름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살면서 그럴 사람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며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바닥을 보게된다면 아름답기보다는 오만정이 떨어져 저 사람의 아주 좋은 면도 보지 않고 싶을 정도가 아니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익스큐즈가 되는 바닥을 갖고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생각보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심지어는 바닥까지 치닫은 것도 아닌데 이미 오물로 뒤덮인 모습을 거리낌없이 내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런 인간들을 떠올리면 토기가 치민다.


 그런 인간들이 더 많아서일까. 지구의 바닥은 아름답지 못하다. 뱃속에 미세플라스틱이 가득하고 몸 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서 죽어가는 동물들이 가득하다. 바다에는 쓰레기가 쌓이고 이제는 하다못해 우주까지 쓰레기를 내다버리고 있다. 이제는 아름다운 바닥을 보기 위해서는 몰디브나 하와이의 구석진 섬 같은 곳으로 떠나야한다. 아름다운 바닥을 보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화석연료를 태우며, 해로운 물질들을 흩뿌리며 가겠지. 결과적으로는 아름다운 바닥을 아름답지 못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아름다운 바닥을 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존재해주기만을 바래본다. 


63 선업을 쌓고 있는가

 선업을 쌓는 것을 업으로 삼고자 했다. 그런데 그것도 일이 되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타성에 젖게 되더라. 이 일이 좋은 일이라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을 남들에게 보여줘야 해서 찾을 때도 있었다. 여기서 좋은 일이란 누군가를 돕는 일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해주겠다는 의지가 담긴 직간접적인 모든 일을 말하는 것이다. 국회에서 발의했던 법들과 입안했던 정책들의 기저에는 좋은 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담겨있었다. 다만, 그 수많은 정책과 법들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국회를 그만두고 시작한 창업도 결국에는 선한 일을 보편적인 일이 되게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일이다. 지구와 사람에게 좋은 제품을 만들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들을 홍보하고 사람들이 많이 알 수 있도록. 그런 의미에서 '내일의 쓰임'에서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가치소비 하러 가주시죠.


 불교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낙제까지는 아니고 겨우 재수강을 면할정도가 아닌가 싶다.

① 살생을 하지 않는 것 / 통과  

② 도둑질을 하지 않는 것 / 통과(사람의 마음을 훔치고 싶네요) ③ 음행을 하지 않는 것 / 통과  

④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 할 때도 있으니까 반쯤 통과(자주는 안함)

⑤ 꾸미는 말을 하지 않는 것 / 사회생활 하면서 어떻게 꾸미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죠? 그래도 적당한 선에서 하니까 0.5점은 주세요

⑥ 험담을 하지 않는 것 / 이것도 탈락이네 거짓말과 마찬가지로 잘 안하려고 합니다 

⑦ 이간질하지 않는 것 / 통과(이간질이라면 신물이 나요) 

⑧ 탐욕을 내지 않는 것 / 광탈(저는 욕망의 인간입니다)

⑨ 화를 내지 않는 것 / 탈락(화를 안내는 건 불가능해요) 

⑩ 삿된 견해를 갖지 않는 것 반쯤 통과(안 그러려고 노력합니다 근데 제 촉이 틀린 적은 몇 번 없었답니다)


자체 선업 테스트 결과, 부분점수를 허용한다면 나는 6~6.5점 정도 받는거네. 현대인에게 너무 힘든 기준들이군요. 미드 '굿플레이스'처럼 우리도 조금은 기준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혹은 재도전의 기회를 주세요. 어찌됐든 불교에서 말하는 선업의 10가지 모두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들이니 앞으로 그렇게 살면 되지 않겠는가.


 나는 카르마를 믿는 인간이다. 길을 물어보는 사람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는 것, 단체사진을 찍으려 애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찍어드릴까요?'하고 말을 건네는 것,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나 간식을 놓고 가는 것, 가치소비 제품으로 생활 패턴을 바꾸는 것 같은 일들이 내가 쌓고 있는 선업이면 선업일테다. 괜히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그럼 하루가 또 즐겁게 흘러간다.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좋은 일이니 이게 말그대로 선업 아닌가. 생각해보니 국회에서 했던 일들은 통장에 꽂히는 월급으로 돌아왔으니 순도 100%의 선업은 아닌 것 같지만, '아무렴 어때'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업의 기준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좋은 일을 하고 살면 그게 최고다. 어려운 잣대나 기준을 들이대지 말자. 1g의 좋은 일이어도 나쁜 일보다는 낫잖아요. 


 스스로는 그렇게 수도승처럼 살지 않는 사람이지만 어쩐지 내 DNA에는 공익이라는 단어가 흐르고 있는 것 같다. 돈을 벌고자 하는 일에도 결국에는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섞인다. 그 균형을 찾아가며 삶을 이어가는 것이 나의 미션이다. 많이 벌고 좋은 가치를 담고 나중에는 꼭 학교를 지어야지. 선업을 쌓아가며 살겠습니다. 


64 사랑이 필요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가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사랑을 나누는 것이 나의 특기다. 왜냐,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사랑을 주기 때문이지.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굳이 사랑을 나누지는 않는다는 말도 해당한다. 나는 사람보다는 동물에게 사랑을 쏟는 편이다. 그 편이 훨씬 유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랑을 나누기보다 혐오를 하지 않는 세상이 오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모르겠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제각각일텐데,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를 이야기 해보는 것도 재밌겠다. 나의 경우에는 생각하면 가슴이 찡해지고 눈물이 나는 감정, 보고있어도 계속 보고 싶은 마음, 나를 희생해서라도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고픈 마음, 때로는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볼 누군가를 생각하며 무언가를 열심히 해보는 순간들, 내가 좋아하는 일, 물건, 경험들을 누구보다 먼저 함께 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  꽉 껴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할 때,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꼭 이루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가진 것들을 다 주고도 모자란 것 같은 느낌들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이런 감정이 들었던 존재는 가족 그리고 우리집 고양이였다. 때로는  나열한 감정들이 선택적으로 친구들에게, 연인들에게 적용되곤 했다. 


 사랑의 정의가 다르다고 생각해서인지 내 주변 사람들이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필요할 때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뿐. 기쁠 때 그 기쁨을 함께하고, 슬플 땐 위로를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이 필요한 연인에게 때로는 심술궂게 사랑을 주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툭하면 사랑해, 라는 말을 내뱉는 사람이다. 친구 사이에서도 부탁한 것을 흔쾌히 들어주었을 때, 때로는 고마워 대신 사랑해, 라는 말을 놓고 간다. 당신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식대로 사랑을 흩뿌리고 다닐 것이다. 세상이 좀 더 나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지만 그 마음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향한 사랑으로 치환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 마음도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사랑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어쨌든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 없이도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해본다. 동물만큼이나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는 것도 말이다. 


65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원하는가

 나를 세상에 던져놓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하고 살아왔다. 공적 영역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것도, 그 곳이 국회인 것도 맥을 같이 한다. 언젠가는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이름을 알리는 자리에 서겠다는 포부와 함께 말이다. 그런 사람이 될 거라는 믿음 반, 소망 반으로 나는 책 잡힐 일은 하지 말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산다. 성에 차지는 않지만 지나왔던 자리에서 나는 무명의 누군가이기 보다는 다수가 아는 사람으로 존재해왔다. 인식은 부정적이기도 긍정적이기도 했다. 활발하고 직설적인 성격, 겉으로 보이는 성과와 자리와 더불어 큰 키와 사납게 생긴 얼굴과 같은 외적인 부분이 작용했을 것이다. 가끔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가 그럴만한 사람인가 자문해보기도 한다. 세상에 나의 대부분의 것들을 까발려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국회의원들이나 장관, 청와대 고위 임명직 선배들이 여론의 뭇매를 받는 것을 보면 두려울 때도 있다. 어떠한 자리에 올라 나의 이런 점이 밝혀지면 사람들은 나를 욕할 수도 있겠지, 하며 말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잘 알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한 일과 나의 생각을 존중하고 내가 먼저 나를 알아봐주는 것. 내가 나를 잘 다독이고 응원하며 길을 만들어 가는 것. 일을 할 때도 그랬다. 정말 만들고 싶었던 정책이나 지적하고 싶었던 부분을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았을 때 내가 만족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남의 칭찬과 격려가 의미있었다.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들 말이다. 그렇게 만든 뉴스와 정책을 보고, 아이템 좋던데 하는 연락들이 카톡으로, 지나가는 말로 전해져 올 때는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019년 12월 31일, KBS 기자들과 함께 동물실험에 학대당하고 버려진 강아지들을 위한 리포트를 만든 적이 있다. 연말이라 여러 뉴스들에 묻힐 수도 있었지만 그 강아지들을 위해, 혹시 그렇게 죽어가는 동물들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세상에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안동으로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단독 뉴스긴 했지만 시청률이 잘 나오는 시간대에 배치되지는 않았는데 뉴스가 나가고 나서 연말에 미안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문제의 실상이 무엇인지, 뉴스에 나온 자료를 공유해줄 수 있을지 기자들에게 연락이 쏟아졌다. 9시 뉴스가 끝나고 제야의 종을 보기전까지 내용을 설명하고 자료를 보내주고 의원님의 코멘트를 조율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후속 보도가 이어졌고 나중엔 비윤리적 동물 실험을 하던 교수가 나중에 자녀의 입시비리까지 휘말린 사람이라는 것도 밝혀냈다.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공명심에 한 일이 아닌데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줄 때가 종종 있지만 어쨌든 나는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원하며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내 이름을 알릴지, 내 생각들이 보편의 생각으로 발전될 수 있을지, 그걸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같은 것들을 고민하며 말이다. 내가 하는 생각들이 좋은 생각들이라, 그 생각들이 널리 퍼지길 원하는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는 인간이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욕망도 당연히 함께 한다. 아이돌 동생을 둔 형제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는 농담도 하며 말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인플루언서들이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때도 드물다. 일단 유명해지면 뭘 팔아도 팔리고,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이 듣는다. 


 인정욕구는 인간의 발전에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자극을 주는 촉진제 같은 역할을 하니까. 요즘의 세상에는 꼭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관심을 끌기 위해서 점점 더 자극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들이 눈에 띄고, 남들의 인정을 위해 전시하는 일상의 단면들로 누군가는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그럼에도 나는 남이 나를 알아봐주기를 원하는데에 기본적으로는 그 방향이 선한 쪽으로 향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선한 사람이 아니고, 설령 쇼일지라도 그의 행동이 지속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결과적으로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관심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지고 그 관심이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가장 베스트일테다. 나를 알아봐주기 원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죄는 짓지 않고 살 것 같기도 하고. 


 가끔은 나를 아직 알아봐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호기롭게 기다리라고 외치기도 한다. 그래도 돌아보면 내 주변에는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얼마 전 새로 시작할 일들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함께 일했던 직장 선배, 동료, 창업을 해 잘나가는 스타트업의 대표가 된 친구들. 그들 나름대로 나를 지켜보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과 방향성에 대한 자신의 일처럼 한참이나 함께 고민해주었다. 빛이 나는 일을 하는 것이 잘 어울린다는 선배의 격려, 똑같은 말을 해도 눈에 더 뛰는 사람은 너였다는 동료들의 이야기, 너가 이뤄온 것들을 미뤄봤을 때 너는 충분한 자격이 있고 그 누구보다도 잘 해낼 것이라는 격려들은 사실 관계 여부를 떠나 근자감 머신의 연료가 되어주었다. 정치권에서 가장 ㅈ같았던 것은 사람들이었지만, 가장 소중하게 남은 자산도 사람들이다. 늘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 기민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런 사람들을 알아본 나에게도 칭찬해주고 싶을만큼 양아치로 가득한 정치권에서 나는 좋은 사람들을 가려내고 인연을 맺었다. 남이 알아봐주는 것만큼이나 내가 남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알아본 사람들에게 늘 무한한 자극과 새로움을 얻고 있으니까. 나는 그들이 만들어갈 세상이 너무나 기대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계속해서 생각을 공유하고 미래를 그려가는 일도. 그러다보면 남들이 나를 알아주는 때가 올 것 같기도 하다. 새삼스럽게 감사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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