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의료인으로 사는 이야기
무엇을 결정할 때 (언제나 그렇듯이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위클리 메거진 제안을 수락한 나는 중반이 넘어가면서 시간적인 압박과 무언가를 내가 하고 싶지 않을 때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급격히 지치기 시작했어. 전문 연재 작가들은 대체 마감을 어떻게 견디는 거지?! 하는 생각을 매일 했지. 나는 혼자 글을 쓰면 되는 게 아니고 사람을 찾아서 시간을 맞춰 인터뷰를 하고 그걸 정리해야 되니까 생각보다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크거든. 멜버른에서 레스토랑 두 개를 운영하는 나는 사실 자유시간이 많지 않아서 언제나 시간에 쫒겨다니니까.
20화를 15화로 줄이고 마무리를 할까.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뭐가 중요해? 마무리를 꼭 해야 해?
하는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제이와 셜리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들은 생각은 20화가 너무 짧다는 생각이었어.
더하고 싶다. 이런 사람들을 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니까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잖아.
옆에서는 불치병으로 죽어가도 나는 내 손톱 밑에 가시가 더 아픈 법이고 내 사랑만큼 처절한 세기의 사랑은 없고 나보다 군생활 빡세게 한 사람은 없지. 보통사람들보다 더 지독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나는 나와 관련이 없는 직업군과 상대할 때면 언제나 나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
남들이 반대로 내 직업에 대해 그러면 게거품을 물거면서.
무슨 말이냐면, 나는 요식업에 뼈를 묻은 사람이라 이 바닥의 속속들이를 다 잘 알고 있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인과 관계나 어떤 관습이 생겨나게 된 배경 같은 거 있잖아. 그런데 그런 걸 모르는 외부인이 내 일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한다거나 하면 나는 굉장히 방어적이 되거든. 예를 들면 누군가 '파인 다이닝은 진짜 거품이고 허세고 그런 가격은 말도 안 돼!'라고 말을 하면 나는 다다다 반대의견을 피력해.
실력 있고 인건비 비싼 셰프들이 구하기도 힘든 좋은 재료들로 아주 처음부터, 빵이나 버터부터 손으로 만들고 그렇게 섬세하게 플레이팅을 하려면 사실 그 가격도 모자란 경우도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해?
해외에 있는 한국 레스토랑은 다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한 거 같다는 말을 들어도 또 가만히 못 있지.
한국에서 그 식재료들을 다 수입하는 것만으로도 가격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여기 인건비랑 월세가 얼만데! 왜 파스타는 2만 원 주고 먹을 때 아무 말 못 하면서 왜 한국 음식만 꼭 양 많고 싸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내 모습이 떠올랐어. 내가 오래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내 세상, 그 세상에 대해 잘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내 사정은 봐주지 않고 본인들의 이익만 추구하던 사람들, 그게 싫고 억울했던 나. 그런데 나도 내가 모르는 세상에는 그들보다 더 큰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제이와 셜리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알게 되었어. 인터뷰하는 내내 부끄러웠고 그 부끄러움으로 또 한 발자국 성장한 것 같아서 조금은 기뻤어.
내 보잘것없는 글에도 공감해주고 의견을 나눠주는 시드니에 사는 어떤 청년이었던 제이는 페이스북에서 내가 '이번에는 의료계 종사자분을 인터뷰하고 싶습니다'라고 올린 글을 보고 자원을 한 거야.
저 시드니에서 방사선사로 일을 하는 중이고 여자친구는 한국 간호사인데, 인터뷰는 재미있을 거 같은데 글재주가 없어서요 ㅠㅠ 앨리스 님이 도와주시면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우리 셋 - 나, 제이, 셜리 -는 각각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노트북을 붙잡고 아주 여러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평소 내가 궁금했던 한국 간호업계의 이슈들과 의료 스텝으로 한국과 호주에서 일하면서 느낀 차이점들 등등. 제이와 셜리가 말하는 의료계 시스템의 문제점과 왜곡된 사람들의 인식을 들으며 계속 뜨끔뜨끔하더라. 그럴리 없겠지만 나를 저격하고 이야기를 하는 거 같아서.
몸이 고장 날 가능성이 있는 인간인 우리 모두가 의료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 지병이 많고 면역이 약한 나는 한국에서는 병원을 자주 갔었어. 제이가 말하는 '다른 의료계 전문인력에 대한 존중이 없는 의사 만능주의'의 원칙에 따라 나는 다른 의료전문인력의 조언은 무시하고 의사 선생님에게 되묻고 나서야 안심을 했어. 일반 의사가 아니고 원장이거나 교수님이면 더 좋지. 만만치 않은 특진비용도 아깝지가 않았어. 무슨 종교에서 교주님을 영접하느누마냥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나아지는 느낌이랄까? 내가 신뢰하는 이름표가 붙은 전문가가 별일 없다고 하면 마음부터 편해지면서 증상이 완화되는 기분이 드는 거야.
호주 이민을 하기 위한 의료인들의 조건이 까다로워진 것에 대해 논란이 있을 때도 내 반응은 '오~ 잘됐네' 였어. 평생 의료인이 될 일이 없는 나는 내가 저 입장이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지. 평생 환자의 입장에서 서있을 나에게는 더 조건 좋은 사람들이 내 병을 봐주고 나를 돌봐주면 나한테는 더 좋은 거 아냐? 하는 생각뿐이었으니까. 요리사의 조건이 높아지면 아마도 거품 물고 반기를 들겠지만, 나는 요리사지 의료인이 아니잖아?
나름대로 한국의 간호사와 관련된 이슈에 관심을 보이고 열을 내고 했던 것도 결국에는 내 주변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동생이 간호사이기 때문이었고 그 친구가 고생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라는, 내 내면의 못나고 어두운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어. 잘난척하고 편견이 없는 척하고 남 입장을 고려할 줄 아는척했지만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이기적이고 편협하고 미성숙한 생명체일 뿐이구나를 깨달았지. 이번 인터뷰로.
태움 문화
임신 순번제
여성 간호사에 대한 인식
에 대해 한국 간호사인 셜리, 호주의 의료인 제이, 그쪽과 상관없지만 관심 있는 이방인 내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이었구나를 느꼈어. 호주는 의료인의 천국이고 한국이랑 비교가 안돼!라고 말하는 제이를 보며 처음에는 그가 편파적으로 결단 내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고개를 끄떡끄떡 하게 되더라.
아주 오래 고민한 본인의 직업에 대한 철학을 똑 부러지게 이야기를 하는 이 둘을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인터뷰어로서 진짜 감격스럽더라. 이런 글을 전하려고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어. 현실적이고 솔직한, 멜버른에서 어떤 직업인으로 사는 이야기.
네가 호주에서 의료계 스텝들은 어떻게 일하고 어떤 대우를 받는지, 한국과 비교해서는 어떤지 궁금하다 싶다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어.
호주에서 간호, 혹은 다른 의료직을 꿈꾸는 사람에게 반드시 추천하는 인터뷰 글이야.
너무 적나라해서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솔직한 한국의 간호사, 호주의 방사선사와의 썰전,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주기를 바래!!
-
앨리스 : 안녕, 제이 & 셜리!
커플을 이렇게 인터뷰하기는 처음이라 더 기대된다! 우리 먼저 자기소개부터 해볼까?
-
제이 : 안녕. 난 제이라고 해. 2006년에 호주에 왔어. 시드니 옆에 뉴캐슬이라는 곳에서 학교를 다니며 요양병원에서 일을 하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시드니에서 Diagnostic Radiographer (진단 방사선사)로 일하고 있어.
-
셜리 : 안녕, 나는 셜리고 85년 생, 한국의 간호사야. 7년전 간호사 생활 중 대학원 진학 과정에서 교수님이 해외 인턴쉽 프로그램을 추천하셨는데 그때 호주에 와서 1년 동안 차일드 케어를 공부를 하면서 호주와 인연을 시작했어. 지금은 영어 점수를 취득해서 한국경력으로 호주 간호사로 등록하려고 준비 중이야.
-
앨리스 : 먼저 지금 하는 일은 어떠한 일이며 어떠한 경력을 쌓았는지 이야기해줘.
-
제이 : 방사선사는 일반적으로는 X-Ray 촬영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영상의학’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테크니션이라고 할 수 있어. X-Ray를 시작해서 경력이 쌓이면서 수술실에서 C-Arm 엑스레이, CT 스캔 MRI, 초음파 등의 검사를 진행하고 병변이 보이는 응급한 경우 의사에게 바로 리포트를 해서 조치를 취하게 해. 호주에서 2009년 영상의학 학사학위 유학을 시작하며 이 일에 연을 맺었어. 실무 경력은 한국에서 방사선 촬영병으로 2년, 호주의 요양병원에서 CARE NERSE로 4년, 그리고 졸업 후 방사선사로 1년 차로 총 7년 째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어.
-
셜리 : 나는 한국에서 간호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거쳐 간호사가 되었어. 졸업 후 H대학 병원 혈종내과와 신경과에서 3년 정도, 그리고 국제 병원 검진센터에서 2년, C 병원에서 2년 반 정도 일을 했어. 또 투잡으로 간호 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강의도 3년 정도 병행했어.
태생이 욕심도 호기심도 많은 성격이라 보육교사와 보건교사 자격증과 함께 아로마 테라피스트 전문가 과정도 수료했어. 임상에서의 간호사뿐 아니라 상담이나 교육 등을 폭넓게 경험을 할 수가 있었지.
-
앨리스 : 말만 들어도 정신없네!! 그 와중에 해외 인턴쉽도 하고 영어공부를 했구나.
간호사란 직업이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통하기 때문에 해외진출을 꿈꾸기에 비교적 용이한 거 같더라. 6.25 이후 파독 간호사들부터 2018년인 지금도 많은 간호사들이 영어를 공부하면서 미국이나 호주로 넘어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셜리 너도 호주로 나올 생각으로 준비를 한 거니?
-
셜리 : 사실 나는 한때 미국 간호사는 잠시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해외 안된다는 가족의 반대로 마음을 접었었어 하지만 영어 잘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영어 회화학원을 다닌 게 시작이었어. 사실 병동에서 3교대 근무를 하면서 학원을 다니는 거 쉽지 않아. 그래도 꾸역꾸역 한 다섯 달 정도 열심히 하다가 너무 힘드니까 이게 잘하는 것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우리 병동에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캐나다 사람이 입원을 한 거야. 아무도 소통이 안되니까 위에서 내려오고 내려오다 막내인 나까지 투입이 됐는데 학원에서 배운 걸로 나름의 활약을 한 거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데 내가 갑자기 병원에서 유명해졌었어. 영어 잘하는 막내가 있다면서! '웨얼알유프롬' 하면서 던지는 실력이었는데 말이야. 그 캐나다인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개떡 같게라도 말을 알아듣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내게 정말 너무도 감사해하는 거야. 영어를 이만큼만 해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데 잘하게 되면 진짜 더 잘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영어에 욕심이 생겼어.
그런데 다들 알듯이 삼 교대 나이트 하면서 학원 다니고 공부하는 건 진짜 불가능해. 그래서 퇴사 후 대학원을 진학하려다 교수님 추천으로 당시 정부에서 추진하던 청년 해외 진출 인턴쉽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호주에서 차일드 케어를 공부하게 되었어. 이수를 마친 후 시드니의 큰 유치원에서 실습을 했는데 원장님이 나를 너무 마음에 들어한 거야. 그래서 스폰서 비자까지 받고 눌러앉으려다가 유치원 오너가 바뀌면서 나도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거지.
오자마자 영어 공인 인증 시험과 국제 의료 관광 코디네이터 과정을 수료해서 H대 병원 국제 검진센터에 취직했어. 호주가 그리웠지만 마냥 그리워할 수 있나, 열심히 한국의 직장생활에 다시 적응했지. 그러던 중 우연히 소개로 제이를 만나게 되었고 각자 열심히 호주와 한국에서 살면서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었어. (사실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어..) 많은 간호사들이 하는 것처럼 간호로 이민을 준비하거나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어. 사실.
-
앨리스 : 그렇구나! 그러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하다가 의료일을 시작하게 된 거야?
-
제이 : 큰아버지가 의사셨어.
대가족의 장남이셨던 큰아버지는 호방하고 가족을 아끼는 성격이셔서 주말이면 4형제에 고모 가족까지 다 불러서 등산도 가고 맛있는 거도 사주시고 그랬어. 그런 모습이 나는 참 좋아 보였어. 진료실에서 흰가운을 입고 환자를 돌보는 모습의 큰아버지는 내 어릴 적 선망의 대상이었어.
고등학교 때는 나는 사실 왕따를 당했었어. 혈기 넘치고 허세 가득 찬 그 나이의 남학생들 사이에는 그 에너지를 풀어낼 희생양이 필요한 법인데 묵묵하니 바보같이 착하기만 했던 내가 이유 없는 대상이 된 거야. 그걸 고스란히 견뎌내던 시절 나는 꼭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계속 품고 살았어. 삐뚤어진 생각이지만 그때는 그랬어. 너희가 마티즈 탈 때 난 벤츠 탈고, 의사가 되서 나를 괴롭히는 너희가 아프고 힘들 때 복수하겠다 하는, 뭐 그런 거.
시작은 그랬어. 그래서 의사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의대를 갈 정도로 실력이 되지 않았고 아쉽지만 눈을 낮추고 영상의학과를 택했지. 그게 내가 의료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야.
처음의 의도는 약간 불순(?)했지만 시작한 후에는 내가 이 일을 할 때 행복하고 뿌듯해서 계속하게 되었어. 응급환자를 정신없이 처치할 때 느껴지는 그 아드레날린, 그리고 처치를 마치고 환자가 안정이 되었을 때의 안도감. 환자가 아파서 소리를 지르고 피가 막 튀고 그러면 보통 사람은 멍해지고 정신줄 놓기 마련인데 나는 정신이 오히려 또렷해지더라. 그런 게 좋았어.
솔직히 말하면 의사 꿈을 버린지는 얼마 안 되었어. 유학하는 동안 너무 지지리 궁상 고생만 해서 그런지 이제는 돈을 좀 벌고 싶어. 더워 죽겠는데 마트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목마를 때 음료수 하나도 손이 떨려서 사 먹지 못했고 한 달 내내 40센트짜리 라면만 먹고살았던 날도 허다했거든. 공부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피곤한 몸을 끌고 나가 마트 청소 펍 청소 등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하루에 3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공부를 해야 했어. 지금도 그 궁상 트라우마 때문에 쉬는 날에는 대리운전 다니고 그러는데! 의대 진학을 하면 그 짓을 6년을 더해야 해, 그걸 어떻게 하냐? 싶은 거지. 그래도, 또 몰라. 언제 갑자기 의대 갈 거야! 할 수도 있어.
-
셜리 : 나는 원래 선생님이 꿈이어서 교대를 가려고 했어. 고3 진로상담 때 차선책으로 간호대를 추천을 받았지. 내가 좀 남들 도와주고 챙기는 걸 좋아하거든. 아빠가 중학교 때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병원 의료 쪽에도 관심이 생긴 터라 취지도 너무 좋고 돈 벌면서 세상에 도움도 주고 봉사할 수 있는 이 간호사라는 직업에 마음이 동했어. 그래서 수능을 망치고 교대를 못 가게 되면서 차라리 잘됐다 하는 마음으로 간호대를 갔지.
듣던 대로 힘들고 스트레스는 많았지만 생각보다 적성에 너무 잘 맞는 거야. 하지만 나이트 근무도 너무 힘들고 교대근무와 과로에 한 해 한 해 갈수록 힘들고 동기들마저 하니 둘씩 그만두게 되더라
일은 좋은데 여러 가지 이런 한국 의료시스템으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으로 간호사를 하면서도 다른 일을 해볼까 하고 이것저것 건드려 보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중은 절로 돌아간다고 간호로 돌아가더라고. 대신 보건 교사, 보육교사, 푸드나 아로마 테라티 등의 자격증을 따고 간호학원 강사,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등의 경험을 쌓으면서 간호사라는 직업으로도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어. 간호사라고 널싱만 하는 게 아니고 강의 및 교육, 상담 혹은 행정 등 길은 많더라고. 나는 이런 모든 것이 가능하면서도 국제무대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멀티 간호사가 되고 싶었어. 그래서 이래저래 스펙을 많이 쌓았지.
힘들다고 울고 불고 해도 결국에는 이 일이 적성에 맞아서 해온 거 같아. 내 일이 남에게 도움이 되는 게 좋더라. 지금은 오히려 수능 망치고 교대 안 간 게 훨씬 좋아.
-
앨리스 : 나는 한국의 간호사와 관련된 이슈에 관심이 많은 편이야. 인간 기본권 중 가장 기본인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본인의 기본권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상이 너무도 아이러니해서 우울하거든.
그래서 나는 오늘 한국과 호주, 다양한 각도에서 직접 보고 느낀 너희와 한국에서 이슈가 되는 간호계의 세 가지 관습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어. 먼저 간호계에 만연하다고 하는 이 태움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
셜리 : 나는 10년 전인 2007년 H대학 병원에 신규 간호사로 입사했어. 5명의 동기가 입사했는데 결국에는 나만 우리 병동에 남았기 때문에 막내 생활을 오래 했어. 내 위로 21명,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위계질서지.
태움, 물론 나도 받았지. 우선 나는 3년 병동 생활 중에 칼퇴라는 걸 단 한 번 해봤어. 막내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한두 시간 먼저 가서 주사 세팅 다하고 물품, 카운터 세팅도 다 해야 해. 그리고 윗분들 티타임 준비도 내 몫이야. 일 끝나고도 전화가 계속 와. 물론 실수하거나 빠뜨린 게 있을 때도 있으니 전화할 수도 있는데 너무 사소해서 그냥 쉽게 커버해줄 수 있는 것도 굳이 끄집어내서 남들 앞에서 공론화하고 망신 주고 인사도 안 받고. 내가 나이트 때 너무 바빠서 피검사를 아침으로 하나 인계했는데 그 병을 나한테 집어던지면서 이걸 나보고 하라는 거냐고 소리소리 지르는 선배도 봤어.
치열한 병동에서 3교대로 환자들 스트레스 감내하면서 일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거든. 그러니까 만만한 막내나 신입이 화받이가 되는 거야. 그때 나는 이 놈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정말 잘하고 싶어서 무조건 예스를 외치고 선배들 비위 맞추고 살았어. 선배들 막말에 화풀이받아내다보니까 몇 년 못 가서 불면증에 위출혈에 변비, 방광염까지 내 건강은 만신창이 되더라. 신규 간호사가 방광염 (신우신염) 잘 걸리거든? 그게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서 오줌 참느라 그래. 변비도 마찬가지지. 생리적 현상도 억누르는 과도한 업무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야.
퇴사하고는 고장 난 몸 이곳저곳 고치느라 병원비 엄청 썼다니까.
휴가도 절대 가고 싶을 때 못 가지. 윗사람들부터 기회가 오니까 막내들은 남는 날 가기나 하면 다행이야. 가장 긴 휴가는 신혼여행 한번 이기 때문에 신행에 목숨 걸지. 그리고 진짜 웃긴 거는 입사하면 입사 턱도 낸다? 신규 간호사 지 들보다 못 버는 거 뻔히 알면서 정규직 됐다고 우리끼리 몇십만 원씩 걷어서 선배들 회식시켜주고 그래.
아무튼 태움은 아마 금방 없어지기는 힘들 거야.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너무 오래 만연해진 악순환이야. 요새 세상에 이런 말 민감한 말인 거 알지만 여성 집단 특유의 시기와 질투도 한몫해. 남자들은 대부분 주먹질하고 라도 푸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들은 진짜 사람 피 말리게 하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내가 맨날 군대 집단이 간호사 집단보다 낫다고 한다니까.
-
앨리스 : 와 진짜 무섭다. 요식업계도 그런 태움 비슷한 게 있어. 막내가 뭐 오픈전에 청소하고 선배들 칼 갈아놓고 유니폼 빨아오고 하는 데도 있었고 군대 취사반처럼 후배들 굴리는 사람들도 많았지. 지금은 낡은 관습이라고 하지만 그 위계질서가 제대로 된 키친을 만든다며 그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어.
암튼 태움과 텃세 등 각종 갑질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나지만 나는 이런 문화도 괜히 생겨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간호계와 상관이 없는 아웃사이더로 생각해 봤을 때는 일단 개개인에게 업무가 너무 과중되어있고 대체인력 시스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 데다가 보수적인 의료계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가 문제인거 같아. 거기 다가가 사실 다른 직업보다는 엄격한 교육이 이루어져 하는 것도 맞잖아. 사소한 실수도 큰 의료사고로 이루어지고 그게 사람 생명과 직결되다 보니까. 엄격한 교육이 변질이 되어서 '태움'이 된 거지. 교육을 빌미 삼아 스트레스를 푸는 개개인들도 문제지만 의료인의 사명감을 무기로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업무와 스트레스를 짊어지게 만드는 환경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아.
대학병원이나 일반 병동에서도 심각하겠지만 나는 특히 제이가 근무했던 군 병원, 상명하복의 결정체인 보수적인 군문화에 이 의료계의 태움 문화까지 더해졌을 때는 어떤지 궁금하거든. 말해줄 수 있어?
제이 : 난 의무대와 군 병원 두 곳에 다 있어봤어. 2년 동안 복무하면서 내가 느낀 것을 말해볼게.
군대에는 군의관과 군무원, 간호장교 외에는 면허를 가진 전문 의료인력이 없어. 대부분 병사를 위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야. 무슨 말이냐면 제대로 자격을 갖춘 전문가가 의료 서비스를 하는 게 아니고 나처럼 의료 관련 전공을 배우는 학생이나 간호대를 다니는 학생들이 주특기로 의료병을 지원입대를 하고 군 의무학교의 교육을 받은 후 업무를 보는 거야. 군대에는 전문인력이 늘 부족하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군대 내의 의료계에는 일반 군대 이상의 태움 문화는 딱히 없는 거 같아. 오히려 밑으로 갈수록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해. 무슨 말이냐면 군대는 어차피 철저한 계급사회다 보니까 계급이라는 개념의 울타리 안에서 내가 지어야 할 책임의 무게가 줄어드는 마술이 생긴다는 거야. 내가 똥을 싸도 위의 사람 책임이야. 나는 날고 기어봐야 결국 일개 병사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지. 계급 집단의 특성상 그냥 까라는 거 잘 까고 하지 말라는 거 안 하면 문제 될 일이 없거든. 정신적으로 피 말리고 스트레스 주고 하는 건 인성이 이상한 선임을 만나는 경우가 아니면 드물어. 개개인이 아닌 전체 시스템 자체의 문제는 오히려 일반 병원의 간호 계보다 덜한 것 같아. 그런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군대에서 오히려 마음은 엄청 편했어.
태움과 관계는 없지만 군 의료 체계에 대해서 조금 더 말해보자면 일반인들은 흔히 군 의료체계가 허술하고 군대 약은 효과가 없다고 하는데 그건 편견이고 선입견이야. 영리 집단이 아니고 나라 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좋은 약, 좋은 의료기구들 쓰는데 돈을 아끼지를 않지. 정해진 예산을 다 못쓰면 외려 예산이 삭감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비싼 약 싼약 가리지 않고 다 써. 그리고 내가 있던 군 병원 영상의학과의 경우에는 진단 영상의 퀄리티가 대학병원 수준이었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군 병원이라고 다 좋지 않은 게 아니고 각 병원 혹은 각 집단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이뤄졌냐가 중요하다는 거야. 하지만 보수적 집단일수록 누가 나서서 기존의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하는 꼴을 못 보고 그리고 나보다 잘난 후배를 키워주기보다 밟아버리잖아. 그러다 보니 발전이 더디고 썩는 고인물이 될 확률이 높은 건 맞지.
왜 뉴스에서 군 의료 체계 문제로 군인이 죽었다 그런 뉴스 종종 나오잖아. 물론 그런 경우도 많지만 항상 덮어놓고 군 의료체계가 잘못됐다고 욕을 할 수는 없어. 훈련소 병원에서 근무를 할 때 억울한 경우가 많았어. 일례로 훈련소의 경우 훈련 중 아파서 입원을 해서 필수 훈련을 이수 못하게 되면 유급을 하게 되거든. 동기들이랑 같이 퇴소를 못하고 훈련소 생활만 길어지는 거야.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아파도 이를 악물고 버티고 이야기를 안 해. 군대고 사회고 간에 감기약은 치료약이 아니야. 완화제이고 염증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해주는 거거든. 감기는 원래 약이 없이 휴식을 하고 면역체계를 회복해야 낫는 건데 군대 약은 효과가 없다며 약을 줘도 안 먹고 버리는 일이 허다해. 안 그래도 약한 일반인이 안 하던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것도 힘들고 면역도 약해졌으니 감기가 오래가서 폐렴으로 발전하고 그래도 말을 안 하고 버티니까 몸의 염증 수치가 너무 높아져서 패혈증에 걸리는 거야. 패혈증에 걸리면 손을 쓸 틈도 없어 돌연사를 하게 되거든. 내가 군 생활하면서 이런 식으로 내 눈앞에서 죽은 병사가 세명이야. 패혈증은 아주 큰 대학병원에 가서 광범위 항생제를 써도 생존율이 굉장히 적어. 그래도 살려보겠다고 밤에 자다 말고 뛰쳐나와서 땀 뻘뻘 흘리면서 처치를 하지. 눈앞에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며 그것이 또 트라우마로 남을 어린 병사, 눈물 흘리며 열심히 한 간호장교, 군의관이 욕을 먹고 우울증에 걸리는 걸 보고 화가 날 때도 있었어. 이게 과연 군대 의료체계 만의 잘못일까?
저렇게 감기 걸렸다 했는데 죽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공수 훈련하는 특전사 중 하나는 낙하산이 안 펴져서 나무 위에 떨어졌는데 뼈 하나 부러지고 살 있어. 정신 나간 훈련병 중 하나는 군대에 있느니 자살하겠다며 건물 3층에서 뛰어내렸거든. 근데 뼈 하나 안 부러진 거야. 멀쩡해서 그날 바로 본대 복귀했어. 내가 머리부터 발가락까지 엑스레이 찍었는데 멀쩡하더라니까.
군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데 사람은 참 쉽게 죽으면서도 쉽게 안 죽어.
-
앨리스 : 의외이고 재미있다. 보수적인 의료계 + 극보수적인 군대 문화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는데 오히려 이게 상쇄가 되는 부분이 있구나.
자, 이제 다음 화두로 넘어가 볼까? 이건 특히 셜리한테 묻고 싶어. 어떤 분야이든 간에 여성 전문인력에게는 늘 궁금한 문제인 것 같아. 요리는 아무래도 대표적 남초 집단이다 보니까 여자가 그냥 요리사가 아니고 여자 요리사가 되는 경우가 많아. 남자들이 드세다고 (?) 기피하는 경향도 있고 여자가 주방 일하기는 힘들지 않아요? 애낳고는 어쪄려고 그래? 내가 여자라는 걸 잊고 동등하게 직장 생활하다가도 확 깨는 일들이 아주 자주 있어.
간호사는 대표적인 여초 집단인데 너희는 어떠니? 간호사는 여초 집단이라고 해서 성차별이 덜하고 하지는 않을 것 같아. 얼마 전에 모 대학병원 송년회에서 짧은 옷을 입고 걸그룹 댄스를 연습해서 추던 간호사들을 보면서 암담한 생각이 들었어. 분명히 아주 힘들게 대학공부를 하고 국가고시를 봐서 대학병원에 입사했을 전문직인 저들을 누가 저 자리에 세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
제이 : 셜리가 말하기 전에 내가 간단히 한마디 할게. 내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는 10개의 영상의학센터로 이루어진 사립 의료 기관인데 의사 7명이 주주로 투자해서 만든 회사야. 우리 회사는 매년 전직원 송년 파티를 성대하게 하는데 물론 나도 참여를 했어. 그 때 엄청 충격받았던 게 나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준비해 놓은 것을 먹고 떠들고 즐기기만 하면 되었고 원장들인 의사들이 퍼포먼스를 준비해서 전 직원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거야. 사회 보는 매니저가 말하기를 올해도 열심히 일한 직원들을 위해서 지분 닥터들이 준비했다고. 의사들의 장기자랑을 우리는 구경을 하고 직원들 중에서는 희망자들만 자유롭게 무대에 오르는 거지. 이게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서로 도움을 주는 상부상조하는 파트너 관계라는 인식이 밑받침되어있다는 증거지. 나 같은 의료 테트니션은 의사들이 시설을 차리고 나를 고용했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있고 밥 먹고 사니까 땡큐지만 반대로 의사들은 우리가 일을 해서 번 돈을 자기네들이 나눠먹고 있으니까 우리한테도 고마운 마음이 있는 거야. 양방향으로.
셜리 : 한국에서 간호사가 왜 인기가 있는 거 같아? 말 그대로 취직 잘되고 굶어 죽을 일 없어서 인기 있는 거야. 예전에 리써치를 봤는데 결혼상대로 여성 선호 직업 1위는 교사. 왜냐하면 안정적인 철밥통인데 방학도 있고 애들도 아무래도 잘 키울 테니까. 그리고 2위가 간호사야. 이유는 돈 잘 벌어오고 생활력 강하고 야무짐.
간호사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정말 자주 듣는 말이 의사 만나서 결혼하라는 말이야. 의사 만나면 팔자 편다고. 내가 얼마나 힘들게 간호사가 되었고 내 일에 얼마나 자부심이 있는지는 상관이 없이 의사 만나기 쉬운 직업, 시집 잘 가는 직업이라고 후려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참 많거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 자신이 심부름 꾼인지 뭔지. 마술사 옆에서 도와주는 미녀 정도밖에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아.
간호사는 의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여비서 같은 역할이 아니고 독립적으로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환자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돌보는 전문적인 의료인이라는 것이 더 많이 인식되고 후배들은 더 존중받으면서 일을 했으면 좋겠어.
-
앨리스 : 자, 이번에는 내가 궁금했던 세 번째 화두로 넘어가 볼게.
내가 가장 광분하고 충격받았던 이 문제의
'간호사 임신 순번제'
나는 생명과 건강을 돌보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어. 정작 본인과 본인의 가족의 건강, 생명을 담보로 해서 타인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의료인의 사명감'인가, 의료인의 사명감이 한 개인의 인권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타당한가. 그들을 그렇게까지 몰아간 시스템은 도대체 정상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
셜리 너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아웃사이더인 내가 매스컴의 자극적인 묘사만 듣고 너무 오버해서 생각하는 거니?
셜리 : 임신 순번제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해. 대놓고 있는 곳도 있고 암묵적으로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한다는 거야. 내가 일하는 병원은 순번제가 딱히 있지는 않았지만 내가 일하던 병동이 다산의 상징이라 정말이지 그야말로 개고생 했었어. 시니어 간호사들이 임신을 계속 돌아가면서 하니까 주니어들은 빠질 수가 없지. 내 친구는 신규 때 임신해서 눈치 보느라 임신 5개월까지 숨겼어. 누가 남 엿 먹으라고 임신을 하겠어, 애가 생기는 것을 어떡하란 말이야. 하지만 임신한 누군가를 대체할 인력이 없고 임신을 하면 나이트 근무 삼 교대를 못하니까 팀원들에게 자연스럽게 피해를 주게 돼. 내 동기는 어린 나이에 연년생으로 또 임신을 하면서 동기들이 매일 나이트를 하니까 결국에는 미안해서 둘째 때 사표 냈어. 나는 내 동기들 이기 때문에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매년 몇 명씩 임신해서 휴가 내고 하니까 진짜 죽을 거 같았어. 그래도 보면 안쓰러운 게 애를 낳고도 바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아. 눈치 보이기도 하고 안 가면 다른 사람들이 죽도록 고생하는 걸 아니까 어떻게 집에서 맘 편히 산후조리에 집중하겠어.
내 친구 중 10년 차 간호사가 있어. 지금은 연차가 돼서 교대근무 안 하고 피부과에서 근무하는 상근직이야. 그런데 임신출산을 하고 육아휴직을 쓰고 싶은데 제대로 못쓰고 거의 바로 복귀했어. 왜냐하면 자리 비운 동안 그 자리에 다른 사람 넣고 복귀하면 삼 교대로 보내버릴걸 알고 있으니까. 친정이나 시댁에서 봐주면 모를까 갓난아기 키우면서 삼 교대를 어떻게 해. 그렇다고 그만두고 경단녀 대열에 합류하고 싶지 않으니까 어쩔 수없이 회복도 안된 몸 질질 끌고 출근하는 거야.
임신 순번제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덧붙이자면 다른 곳들도 그렇지만 간호업계도 완전 양극화야. 몸 진짜 힘들고 돈 벌던지, 아니면 몸 편하고 돈 버는 거 포기하던지. 나 같은 경우, 치열한 대학병원 생활에 치이다가 호주 갔다 와서는 국제병원 건강검진센터에 들어갔거든. 교대근무 안 하는 상근직 조건이라 편한 대신 계약직이었는데 예전의 내 월급 거의 반타작하고 들어갔어. 같은 병원이라도 퇴사하였다 들어가니 그전 경력도 인정 안되더라. 다들 알듯이 삼교대로 밤낮 바뀌면서 죽도록 개고생 하던지 아니면 급여나 경력 인정 제대로 못 받는 박봉으로 비교적 편하게 일하던지 둘 중 하나야. 완전 딜레마지. 호주처럼 애 키우라고 시간 조절해주고 휴가 주고 쉬다 들어와도 경력 인정해주는 게 아니잖아. 삼교 대해가면서 애 키우고 돈 잘 버는데서 죽자고 버티거나 아니면 적은 돈 받고 전전긍긍 이직만 하다가 그만두거나. 그래서 한국에 멀쩡히 잘 훈련받은 전문인력이면서도 면허증이 장롱 안에 있는 간호사들이 많은 거야.
제이 : 나는 여자도 아니고 간호사는 아니야. 하지만 모든 병원과 의료인력에게 비슷한 노동법이 적용되거든. 호주 의료계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호주는 어떤지 한번 말해볼게.
Maternity leave라는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여성을 위한 휴가 제도가 호주에는 있어. 1년 52주 중 14주는 유급이고 나머지는 38주는 무급이야. 그리고 몇 번을 이어서 쓰던지의 제한은 없어. 참고로 Sick leave (병가)의 경우 10일까지 유급을 쓸 수 있지만 진단서가 필요해.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진단서 필요 없이 1번의 call sick을 할 수 있지. 콜씩은 전화해서 아프다고 안 간다고 하는 거야.
참고로 임신과 상관없이 모두에게는 일반적으로는 1년 52주 중 4주가 유급휴가가 주어지고 3교대를 1년 할 경우 거기에 2주가 더 추가돼서 1년에 총 6주를 유급으로 휴가를 쓰는 것이 가능해. 이 것은 그냥 보여주기 식 허울 좋은 제도가 아니고 실제로 거의 모든 의료인들에게 해당되어서 모두들 휴가를 조정해서 비교적 자유롭게 쓰고 있어.
-
앨리스 : 내가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한국 간호계의 세 가지 쟁점 (태움 문화, 임신 순번제, 여성 간호사에 대한 인식)을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과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 예민한 이야기들도 솔직히 공유해줘서 고마워. 그러면 이번에는 다시 호주로 넘어와서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물어볼게. 한국에서 성인기를 다 보내고 호주로 넘어온 제이와 셜리, 너희는 필드에서 일하는 동안 언어나 문화의 차이로 직접적인 의료 사고를 내거나 목격을 한 적이 있니?
-
제이 : 내가 이거에 대해 오래 생각해봤는데 아직 까지는 보지 못했어.
-
셜리 : 나는 아직 호주에서는 간호사 생활을 하지는 않았어. 한국에서 국제센터에서 일했고 호주에서는 차일드 케어에서 근무를 했지. 나도 큰 사고를 목격한 적은 없어. 10년 전쯤에는 한국에 외국인 환자들이 별로 없었어. 환자들을 돌볼 때 어떤 외국인이 입원해서는 맨날 힘들게 밖에 나가서 서브웨이만 사 먹길래 내가 그랬거든. 왜 그런 걸 먹냐고 아플 때는 밥을 먹어야 힘이 나지!
내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내 입장에서만 생각한 거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한테는 이런 병원 밥보다는 서브웨이가 더 먹고 힘이 났을 거야. 그게 주식이니까. ㅋㅋ 그런 사소한 일은 생각나는데 언어나 문화 때문에 의료사고 라고 할만 한 것이 나는 것을 본 적은 없어.
-
앨리스 : 오, 되게 인상 깊고 놀랍다. 나는 크고 작은 그런 일들이 가끔은 일어날 줄 알았어.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일하는 키친에서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니까. 간호나 의료 관련 분야는 이민을 할 때 아주 엄격한 언어 기준이 적용되잖아. 그런 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아무래도 환자 입장이니까. 제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
제이 : 의료계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정말 중요할 수밖에 없어. 긴말할 거 없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니까. 예를 들어 응급실에 심각한 외상환자가 왔을 때 그 긴박한 상황에 영어가 제 2 외국어인 사람을 고려해 천천히 이야기해줄 사람이 어딨어. 인격보다 중요한 생명의 문제야. 만약 잘못 알아들어서 약이나 주사를 잘 못주는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거야? 그리고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봐.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외국인에게 내 몸과 치료, 검사를 맡기며 안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의료계는 기본적으로 Multi-disciplinary. 서로 다른 직군이 팀이 되어 움직이게끔 되어있어. 각각 분야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환자에게 제대로 된 케어를 해줄 수 있거든. 그 소통이 결국에는 모든 것이야. 그 소통은 영어로 이루어지지. 영어가 소통이고 소통이 영어야. 이거만큼 중요한 게 없는 거지. 그래서 요구되는 영어점수가 정말 높아. 아이엘츠 7.0이라는 호주인들조차 잘 나오지 않는다는, 굉장히 높은 수준의 영어실력이 요구돼. 내가 앞서 말했듯이 영어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호주 정부에서 이런 높은 커트라인을 두는 것도 이해하거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게 쓸데없는 갑질(?)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
과연 이 점수 체제가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약간 회의적이야.
일단은 정부에서 요구하는 시험과 실전 영어는 다르기 때문에 실용적이지가 못해. 캠브리지 아이엘츠의 경우 평가기준이 까다롭고 주관적이어서 꼭 4파트 중 하나는 6.5를 나오게 해서 떨어트려서 이민을 힘들게 하고 더 많은 시간을, 즉 돈을 호주 정부에 소비하게 하는 시험이 거거든. 이민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계속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는데 대표적인 게 이 영어점수인 거야. 2007년의 경우 아이엘츠 6.0이었고 2011년까지는 6.5였으면 됐어.
의료계에서 일을 하려면 호주대학을 필수로 나와야 해. 일단 대학을 졸업하는 게 살인적이야. 그리고 호주의 보건학과들은 실습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평가항목 중 하나가 커뮤니케이션이야. 다 잘해도 커뮤니케이션 낙제하면 다음 학년을 가지 못해. 그래서 언어에 문제가 있는 친구들은 낙제를 반복하거나 본인 스스로 그만두지. 이미 대학을 성공적으로 졸업하였고 25주의 실습평가를 문제없이 끝낸 학생들이야. 의료사고를 낼 정도의 언어 수준이면 학교의 명예와 평판이 걸려있기 때문에 졸업을 애초에 안 시키거든. 입학 때도 요구되는 높은 영어 점수를 가지고 들어가서 수업과 시험을 거쳐 실습까지 통과하고 졸업을 한 학생들이라면 필드에 나가도 되는 소통 능력이 보장되어 있다는 거야, 내 말은.
오히려 언어구사와 소통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 호주 로컬 학생들에게는 요구되지도 않는 굳이 그 비싸고 효용성 떨어지는 시험에 유학생들만 시간과 돈을 무지막지하게 소비하게 할 이유가 없다는 거지.
-
앨리스 : 나는 환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했을 때 이기적 이게도 소통도, 실력도 높은 수준이면 더 좋을 거 같다고 생각만 했어. 하지만 필드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게 쓸데없는 걸림돌로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거기에 쏟는 에너지로 더 실질적인 실력을 쌓을 수 있을 테니 네 말도 맞는 거 같아.
다음으로, 네가 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이야기해줄래?
-
제이 : 내가 뉴캐슬의 널싱홈에서 일할 때였어. 한국의 요양병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이 치료를 받으며 삶을 마무리하러 오시는 곳이야. 나는 대학생활 중 실습으로 케어 널스 일을 했었지. 옷 갈아 입히고 기저귀 갈고 똥 닦아주고 샤워시키고 그런 일들. 뉴캐슬은 시드니 근처의 중소도시인데 시드니와는 비교도 안되게 동양인이 드물었어. 내가 있던 널싱홈에서 내가 최초의 한국인. 최초의 아시안이었어. 환자 중에 호주 할아버지 하나가 나를 보더니 한국인이냐고 묻는 거야. 깜짝 놀랐지. 보수적인 시골마을에서는 보통은 동양인들을 보면 중국인이냐 묻는 게 대부분이거든.
그분이 질문 후 나에게 말하길 본인이 한국전쟁 참전을 했었다는 거야. 6.25 때 국군의 편에서 싸웠던 이야기를 하셨어. 그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나도 할아버지도 감회가 남달랐지. 할아버지가 청춘일 때 목숨 걸고 지켜준 나라의 후손인 내가 그의 나라에 와서 그를 케어해주고 있는 거잖아. 할아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셨을 때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
-
앨리스 : 호주와 한국의 양국의 의료계에서 근무하면서 너희가 느낀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
제이 : 나는 일단 두가지를 꼽아볼게.
첫 번째로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의사 만능주의 중심이라고 할까? 모든 것이 의사 중심이고 의사를 제외한 메디컬스탭들은 적절한 대우와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간호사, 물리치료사, 방사선사, 응급구조사 등등의 아주 중요한 의료계 인적자산이 한국에서는 나쁘게 말해 의사 따까리가 되는 거야. 독립된 하나의 의료 전문진이 아니라. 물론 의료계에서 모든 오더는 의사로부터 내려오는 건 호주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아. 간호사 혹은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등 의료진들이 각자의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의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역할을 하며 환자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거지. 전지전능한 의사 중심이 아니라.
두 번째는 일부 환자들의 경우 본인이 누리는 의료서비스에 대해 너무나 당연한 거라 생각하는 점이야.
재화와 서비스가 교환되는 물물교환의 규칙대로 자신은 병원비를 냈으니 간호사 혹은 의료계 스탭들의 케어를 샀다고 생각하며 종을 부리듯 갑질을 하려고 하는 경우들이 자주 있었어.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호주의 병원 내에서의 다양한 관계 - 의료직군 간, 의사와 다른 스텝 간, 스텝과 환자 - 는 기본적인 존중이 기초가 된다는 거야.
물론 호주라고 무례하지 않은 환자가 없는 건 아니야. 호주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인데 이상한 놈, 나쁜 놈, 착한 놈 다 다양하게 있지. 억지를 부리고 갑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 받아주지를 않는다는 게 큰 차이야. 한국에서는 내가 잘못하지 않고 의사의 잘못이라도, 환자의 잘못이라도 무조건 내가 사과하고 죄송해야 했거든. 내가 밑이니까. 하지만 내가 경험한 호주의 보건계 직장에서는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고 일방적인 폭력으로부터 스텝의 인격 보호해주었어. 인격적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거지. 이 회사가 병원이 일부 악질적인 환자, 혹은 절대적 권력을 가진 의사의 학대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거야.
-
앨리스 : 내가 얼마 전에 아는 분 소개로 아주 저렴하게 유명한 강남 모 검진센터에서 건강검진을 받았거든. 병원인지 백화점인지 모르게 으리으리하더라. 간호사분들도 정말 백화점 명품관 카탈로그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단정하고 친절하였어. 내 눈을 사로잡은 게 간호사분들 스테이션에 붙어있는 `환자는 왕이고 우리의 월급은 환자에게서 나온다'라는 슬로건이었어. 한국의 심화된 경쟁사회 속에서 의료계도 서비스 경쟁에서 피해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씁쓸한 마음이 들더라. 이런 갑질이 없어지고는 있는 추세라지만 아직도 심각한 것은 사실이야. 나부터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할 거 같아. 나의 필요에 의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도록.
셜리, 너는 어떠니?
-
셜리 : 아까 제이가 말한대로 일단은 한국은 의사, 그 밑으로 간호사, 그 밑으로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치위생사 등등이 있어. 그리고 그 안에서도 전문대 나온 사람, 유명대학교 나온 사람 등이 갈려. 직종끼리도 처우나 인식에 대한 계급이 나뉘고 같은 직종이라도 받은 교육의 질이 평준화되어 있지 않은 거야. 같이 2년제, 4년제를 졸업한 사람들끼리도 수준 차이가 많이 나. 호주처럼 등록된 간호사나 의료인력이 어느 정도 비슷한 전문성을 가지면 환자들 입장에서는 더욱 신뢰감이 들 텐데 말이야.
제이가 앞서 말했듯 호주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를 제외한 의료 인력들이 간호사 아래가 아니고 그냥 다른 분야의 전문가야. 서로 반드시 도와야 하는. 훨씬 전문성을 갖추고 있고 처우와 인식 면에서 의사 간호사와 다름없는 존중을 받고 있는 점도 놀라웠어. 예를 들면 검안사 있지? 안경점이나 안과 같은데 가면 시력이랑 안구 검사해주는 사람. 호주에서 검안사는 닥터를 달고 졸업을 하거든. 시력과 눈의 건강에서는 안과 의사만큼 전문가인 거야.
-
제이 : 그냥 무조건적으로 호주가 착한 나라라서 더 존중해주는 것은 아니야. 내가 봤을 때는 물리치료사나 방사선, 안경광학 등의 교육과정이 한국에 비해서 더 심화되어 있어서 그래. 영상의학을 예를 들면 한국의 방사선과 과정에 비교해서 훨씬 심화된 교육을 받아. 해부학도 엄청 빡세게 공부하고 영상을 찍는 것을 넘어서 다 판독할 줄 알아야 하거든. 혈관 하나하나, 근육 하나하나, 모든 인대들의 이름도 다 알아야 해. 의사 한 명이 독단적인 진단을 내리기 전 방사선사가 한번 더 판독을 함으로써 오류를 줄이고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함인 거야. 그런데 한국에서는 내가 방사선사라고 하니까 그냥 엑스레이 사진 찍는 아저씨구나, 하더라고. 방사선 공부한다고 하니까 왜 그런 거 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어서 이 일 한다고 말하기 싫을 때도 있었어. 방사능이랑 헷갈리다 보니 위험하고 험한 직업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리고 호주라는 국가의 특성 때문이기도 해. 호주는 의료인력이 늘 부족하잖아. 특히 산간 오지 지역으로 가면 영상 의학 전문의는 더 귀하고. 그런 경우에는 방사선사가 전문가적 견해를 의사에게 주는 게 큰 도움이 되거든. 사실 영상의학만을 공부하고 기술을 쌓은 방사선사가 영상을 볼 때는 일반의 들 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어.
한국 군대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정신과 전문의가 야간 당직일 때 어떤 환자의 가슴 사진을 찍어서 줬는데 그걸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보다가 그냥 보내려고 하는 거야. 내 눈에는 폐렴이 보이는데! 그래서 혹시 여기 이거 pneumonia sign 아닙니까? 하니까 어? 어.. 어! 그러네?! 입원시키자 그랬던 적도 있었어. 의사라고 해도 모든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나 같은 각 분야 전문인력의 도움이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 나라는 개인의 처우와 명예를 떠나서 환자들을 위해서. 한국은 아무래도 그런 면에서 아직은 인식이 좀 꽉 막힌 편이야.
-
셜리 : 또 하나, 내가 겪었던 가장 놀라고 달랐던 문화 차이 중 하나는 초과근무야. 병원은 바쁠 수밖에 없고 일과를 예측 불가능할 수밖에 없어. 3교대는 3개의 8시간 근무를 돌아가며 하는 건데 환자를 보다 보면 퇴근과 인수인계 시간이 칼처럼 맞춰질 수가 없어. 불가능하다고 보면 돼. 한국의 경우는 말이 8시간 근무지 짬 안 되는 간호사면 2-3시간 초과수당 없이 더 근무하는 건 아주 다들 당연하게 생각해.
호주라고 해서 환자들이 시간 정해 놓고 아픈 건 아닌데도 호주는 칼퇴근이 가능해. 인원 자체가 넉넉한 거야. 내가 한국에 있을 때 혼자 17-20명의 환자를 돌봤다면 여기서는 5명 정도를 한 간호사가 담당하니까. 집에 안 가고 일하고 있으면 뭐 하고 있냐고 빨리 가라고 한다는 말 듣고 진짜 문화충격이었어. 내가 차일드 케어 일할 때도 오버타임이 생길 시에는 미리 삼십 분만 더해줄 수 있냐고 아주 정중히 부탁을 해서 놀랐어. 더 놀란 것은 부탁을 나는 호의로 들어줬는데 거기에 대한 페이를 정확하게 추가해서 주는 거야. 한국 병원에서 그런 게 어딨냐 그냥 하라면 하는 거지. 오버타임 돈 안 주려고 빨리 가라고 말은 하면서도 퇴근 전에 일은 산더미처럼 넘겨주는 일이 허다한걸.
-
제이 : 덧붙여 말하면 간호사와 나를 포함한 모든 의료인력은 불가피하게 다음 근무자가 병가를 내 인원이 부족해 초과근무를 부탁받으면 주당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서 초과된 시간은 시급을 2배로 받게 돼. 예를 들어 내 시급이 35불이라면 1시간을 초과근무할 경우 시급을 70불로 받게 되는 거야.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은 덤으로 수없이 듣게 되고. 근데 지금 이게 얼마나 지극히 정상적인지 알아? 남의 귀한 시간과 기술을 집어 썼으면 응당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잖아. 셜리가 여기에 대해서 충격을 받은 게 사실 더 충격적인 거야. 정상인 것이 놀랍고 비정상처럼 느껴지는 게 비정상이라는 거지. 왜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직업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도 이렇게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이런 초과근무나 태움, 과다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간호사들의 자살 같은 사건들을 접할 때면 나는 너무나도 암담해.
-
앨리스 : 의료계 종사자로서 나은 처우와 좋은 대우를 받고 호주에 살고 있는 너는 이민이라는 선택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니?
-
제이 : 한국과 비교해서 의료계 대우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이민생활의 아주 단적인 부분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이민에 대한 만족감은 많이 느끼지는 못하고 있어. 영주권자가 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유학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영주권을 따고 직장만 다니면 되면 모든 것이 안정되고 돈도 잘 벌고 복지혜택도 쩔게 받고 할 거라는 희망으로 버텼는데 막상 그 자리에 와보니 현실은 조금 달랐어. 일단 가장 큰 것은 세금. 호주의 세금이 제법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매 급여마다 세금을 내보니 피부에 너무 와 닿아. 막 인턴을 마친 나는 30%의 세금을 내고 있어. 연봉이 1억이 넘게 되면 세금 40-45% 를 내야 하지. 그럼 실수령액은 한국돈으로 6천만 원 정도가 되겠지? 한국에서는 괜찮은 급여지만 여기 물가는 한국의 거의 2배니까 연봉 1억 도 그다지 힘이 없어. 그렇다고 복지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정해진 금액 이상의 연봉자는 받을 수 있는 혜택도 제한돼. 시드니의 집값은 세계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하지. 1위인 홍콩에 이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집값이 비싼 도시가 시 드니라고 해. 자. 그럼 돈은 열심히 벌어서 세금으로 30-45% 나가고 그 세금은 저소득층과 실업자를 위한 실업수당 등등으로 쓰이고 아이를 낳아 길러도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다면 양육비 지원도 받지 못해.
살인적인 집값도 감당하기 힘들고. 물론 시드니 이외의 지역은 훨씬 부담이 적지. 내가 시드니에 살고 있기에 시드니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고 있어. 만약 호주에 이민을 가면 한국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이민을 결정하기보다 정말 현실적으로 왜 이민을 원하고 살고 이곳 호주의 현실은 어떤지 잘 알아보길 바라. 월급쟁이 유리지갑은 호주에서도 배 땅땅 두드리고 넉넉하게 살기가 쉽지는 않아.
-
앨리스: 우리 그러면 정리하는 의미로 너희가 느낀 호주와 한국, 의료계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단점과 장점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
제이 : 내가 먼저 욕먹을 거 각오하고 솔직하게 말해볼게. 장담점 같은 거 없어. 호주는 의료인들의 천국이야. 솔직히 모든 면에서 한국이랑 비교가 안돼. 의료인은 공공을 위해 일한다는 인식이 있어 존경받는 직업이고 페이도 나쁘지 않은 편이야.
단적으로 한국에서 방사선사는 월급이 200만 원 정도야. 여기는 인턴 중에 5만 5천 - 6만 오천 불 사이의 연봉을 받고 4년 정도 경력이면 1억, 주말이나 추가 수당 등 포함하면 1억 2천 정도는 받아. 1년에 최대 6주의 유급휴가, 당당하게 쓸 수 있는 병가, 법정 공휴일에 일할 시 2.5배의 시급을 받고 나이트 근무 시 1.75배를 받아. 간호사의 경우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가 평균 5명이야. 한국의 간호사라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 거야.
단점이라고 하면 일단 이렇게 되기까지 너무 힘든 유학과정을 거치고 영어시험 등의 조건을 만들어서 영주권을 따고 취업을 해야 한다는 건데 그게 정말 쉽지가 않거든. 천문학적인 시간과 노력과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과정에서 지치고 힘들 수가 있어. 하지만 그건 한국에서도 요새는 취업이 그만큼 힘들지 않나?
아, 진짜 단점 하나 찾았다. 세금 30프로. 호주 세금 너무 비싸. 많이 버는 만큼 더 낸다. 지금 내가 30프로 내고 10만 불 넘으면 세금 45% 정도 내. 그런데 나처럼 애도 없고 신체 건강한 성인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은 없어. 지금은 이직을 해서 조금 더 받지만 인턴 중 첫 직장에서 연봉이 5만 5천 불 정도였거든. 세금 빼면 주에 750불 정도야. 연차따라 오를 거 생각하니 참을 만 하기는 하지만 너무 쥐꼬리라서 가끔은 한숨 나오기도 해.
-
셜리 : 어렵기는 한데 일단 없는 장점부터 쥐어짜서 이야기해볼게. 나는 개인적으로 말을 잘하고 상담하는 걸 좋아해서 한국에서는 카운셀링이 특기였는데 여기서는 영어가 안되니 답답하지.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어를 정복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고 영어를 쓸 필요가 없는 게 한국의 가장 큰 장점이야. 문화와 언어의 적응을 안 해도 되고 따뜻한 가족의 품에서 조국을 그리워하지 않다도 된다? ㅋㅋㅋㅋㅋ내가 말하고 있지만 너무 쥐어짜는 티 난다.
음... 한국은 태움 안 당하려고 정말 힘들게 배우기 때문에 대부분 완전히 멀티플레이어야. 호주는 주사 놓는 간호사가 따로 있고 정맥 주사 못 놓는 간호사가 허다하다는데 한국은 간호사가 카운슬링도, 주사도, 환자 케어도 뭐든지 알아서 해야 하거든. 그렇게 한국 대학병원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간호사는 어디든 못 갈 데가 없다는 거야. 호주에서는 한 간호사가 4명을 볼 때 한국에서는 거의 20명씩 본다니까!
내 주변 호주에 간호 유학 온 한국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 친구들은 유학이 너무 힘드니까 가끔은 왜 이렇게까지 개고생 해서 여기서 간호사가 돼야 하나 편하게 한국에서 간호사 할걸 하는 말을 하거든. 아마도 '영어, 영주권, 학비' 삼박자로 골고루 두드려 맞으면서 호주 생활을 하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걸 거야. 하지만 진짜로 한국에서 간호사 생활해보면 그런 말 안 나올걸.
추가 근무도 당연한 취급받고 돈도 못 받고 임신도 맘대로 못하고 있는 휴가도 원할 때 못쓰고, 일주일 이상 쓰는 건 꿈같은 이야기. 아프면 일하다 쓰러지라 하는데 돈은 일에 비해 작지 일도 많지, 의사가 잘못해도 간호사가 환자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책임져야 하지. 그러니까 모두들 유학을 오려고 하고 해외진출을 꿈꾸는 간호사가 그렇게 많은 거야. 내가 생각했을 때 직업적인 면에서의 단점이라곤 문화, 언어적응뿐이지만 그게 너무나도 태산같이 큰 단점이라는 거. 문화, 언어 그리고 20년을 넘게 살아온 모국을 등지고 가족 친구를 뒤에 두고 타국에서 혼자 살아야 한다는 점만 아니라면 정말로 많은 간호사들이 호주로 망설임 없이 올걸?
미안, 조금 더 공정하게 장점 단점을 비교해서 말해주고 싶지만 쥐어짜도 이거뿐이네.
-
앨리스: 의료인 후배들 간호 방사선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셜리 : 나는 이민이나 해외진출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해볼게.
일단 의료인이 된 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명감을 요구하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아. 부디 적성에도 안 맞는데 돈을 잘 벌고 취업이 잘될 거 같아서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윤리적인 책임이나 인간애가 없는 사람은 타인을 다루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요새는 워낙 취업이 힘드니까 취업 잘된다는 이유로 간호대가 인기가 많다고 하잖아. 간호는 일단 대학을 간호대 가고 훈련을 이수할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정말 인성과 적성이 맞지 않으면 본인도 끝까지 가기가 힘들어. 나 학교 다닐 때도 1학년 마치고 자퇴하는 애들도 많았고 졸업하고 병원 들어가자마자 그만두고 이 바닥 떠난 후배들도 있었어. 내 후배 중에는 너무 생각이 없어서 이 친구는 정말 사람 죽일 수도 있겠다 하는 애도 있었는데 애가 착해서 본인이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그만두더라. 타 직장생활처럼 돈을 위해서 버티기에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정말 힘든 직업이야.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명감이 이 간호 일을 계속하게 만든 원동력인 거 같아.
나는 사실 지금도 병원에 가면 그 냄새에 토할 거 같아. 특히 암병동에서 근무할 때 매일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 보면서 덩달아 우울해지고 죽음에 무감각해지고 기가 빠져나가는 와중에 살인적인 업무량을 소화해내면서 나도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졌거든. 그런데도 버틸 수 있고 아직도 이 직업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일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 사람과 생명에 대한 고민과 존중이 밑받침이 되었는지, 이 일이 적성에 맞는지, 혹여 단순히 취업률이 좋아서 이 길을 택하려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어.
이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간호사 동료들에게는 내가 조언을 할 입장은 아니야. 나도 우연치 않게 인턴쉽 후 호주와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면서 영주권을 따고 호주에서 간호사로 일하기 위해 공부하며 준비하는 중이거든. 같은 선상에 있는 입장에서 내가 느낀 점들을 공유해볼게. 이 해외진출이란 부분은 단순히 해외취업이 아니고 내 인생의 큰 결정이야. 난 이 큰 결심을 하기 전에 한 번쯤 외국 나갈 곳으로 그게 워홀이든 어학연수든 다녀와보면 좋겠어. 알아보지도 않고 환상만 가지고 갔다가 현실에 치여서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많거든.
지금 경력 간호사들은 내가 공부하고 있는 OET (Oupational English Test)를 권유해보고 싶어. 경력이 없는 경우는 당연히 유학부터 시작해야겠지만 정말 많은 돈과 노력을 써야 하거든. 한국의 간호사는 조건에 해당하는 경력과 간호학사학위를 영어점수와 제출하면 대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호주에서도 간호사가 되는 것이 가능해. 사실 한국에서는 아직 많이 아는 사람이 없지만 유럽이나 필리핀 같은 영어를 쓰는 국가 외국 친구들은 이걸 이용해서 IRON코스를 (브릿징 코스) 이수하고 호주 간호사가 되거든
보통 알고 있는 Ielts, PTE시험과는 달리 OET는 다른 시험과는 다르게 의료인들만 전공에 따라 볼 수 있는 의료인 전문 영어 시험이야. 사실 이 아이엘츠로 점수의 높은 장벽으로 호주 유학을 마치고도 다시 한국으로 간 간호사들이 정말 많았거든. 이젠 한국에서 작년부터 시험을 볼 수 있으니 미국 간호사 N-clex처럼 다른 나라 가서 시험 보지 않아도 되고 매달 시험이 가능하지. 물론 호주뿐 아니라 뉴질랜드 영국이나 아일랜드 등 나라에서도 이 OET로 그 나라의 간호사 등록이 가능하니 잘 알아보고 준비해도 좋을 거 같아
-
제이 : 나는 일단 조금 현실적으로 이민을 생각하는 의료직 학생들에게 조언을 한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해볼게. 이민의 관점으로 봤을 때 아주 밝지만은 않아. 조만간 부족 직업군에 빠진다는 소문도 있어. 최근 간호의 경우도 60 포인트로는 인비테이션 받기가 힘들고 70점은 돼야 안정권이라고 해. 하지만 이민을 떠나서 직업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굶어 죽을 일은 없다고 봐. 현재 의료시스템에서 진단영상은 절대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니까.
만약 호주로 유학을 올 생각이라면 호주 방사선과 입학 요구 점수인 IELTS 7.0 each를 먼저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해. 입학과 졸업, 나아가서 이민을 판가름 지을 가장 큰 관문이 될 테니 이걸 먼저 정복해야 해. 개인적으로는 이름 있고 유명한 대학의 방사선과를 가는 것보다는 학비도 싸고 덜 유명한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해. 호주는 대학 이름에 민감하지가 않거든. 학교 이름에 상관없이 평준화된 교육을 받고 전문성을 인정받기 때문에 학사과정 중 실습 점수만 잘 받으면 취직할 때 대학 네임벨류에 크게 영향 안 받아. 방사선으로 유명한 대학을 가면 졸업도 까다롭고 시험도 많이 어려워.
-
앨리스 : 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예민할 수도 있는 많은 주제들을 듣기 불편할 정도로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잘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그럼 우리 마지막으로 이민을 꿈꾸는 2030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면서 끝내자. 수고 많았어!
-
제이 : 호주에 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있어.
호주에 살면 좋아요? 정말 살기 좋아요? 호주에 살면 어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것만 이야기하겠지. 누가 자기 호주까지 와서 사는데 안 좋은 얘기를 현실적으로 해주겠어. 좋은 점만 늘어놓고 자랑하고 싶겠지.
나의 경우 한국에 살면 한국에 사는 장단점이 있듯 호주도 장단점이 있다고 해. 그리고 개개인에 따라 정말 틀리다고. 내가 종사하는 의료계가 한국에 비해서 대우가 좋다고 해서 호주가 모두에게 살기 좋은 나라라는 뜻은 아니거든.
한국에서 누리는 삶들을 호주에서 똑같이 누리려 하면 시드니와 같은 대도시에 살아야 하는데 시드니만 놓고 보면 물가는 세계에서 1, 2위를 다툴 만큼 비싸고 집값은 세계 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 세금도 너무나 비싸. 막연히 한국보다 나을 거라 생각하고 시드니로 온 다면, 헬조선 피해왔더니 헬 시드니라는 생각이 들 거야.
그렇다고 해서 한적한 호주의 도시로 간다면 경제적인 면에서는 대도시보다 낫겠지만 5시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느린 인터넷에 지루함에 미쳐버릴 수도 있고 불편한 대중교통에 치를 떨 수도 있고. 호주는 복지가 좋다고 하지. 하지만 이것에도 양면이 있으니, 일정 수준의 소득 있는 건강한 성인인 경우 그 혜택은 나의 것이 아니고 난 그저 비싼 세금내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연금에 기대서 세금만 축내는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도 있어. 호주라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니까 맹목적인 환상을 갖지 말고 냉철하게 비교해보고 적나라한 현실을 들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에 오겠다 하면 그때 결정을 했으면 좋겠어.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휴, 열심히 말하고 나니 괜시리 쑥스럽다.
-
셜리 : 맞아. 제이 말에 덧붙이자면 겉으로 보이는 천국 같은 호주를 보고 왔다가 결국엔 목적이 없어 영주권이 되고 나서도 결국은 역이 민가는 사람들이 꽤 많아. 그러니 함부로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해서 그냥 무조건적인 이민을 따라 하는 건 정말 위험해. 이민을 탈출구 혹은 한국의 어려운 현실로 도망치는 길로 생각하지 말고 차분차분 조사하고 사는 사람의 말들을 들어보고 진정한 현실을 보고 준비했으면 좋겠어. 이민은 절대 낭만적이지만은 않아. 자리 잡는 동안에는 정말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 수도 있어. 익숙했던 모든 것이 바뀌고 친구 가족과도 떨어져야 하고 새로운 환경적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수 있거든. 살아온 20, 30년의 삶이 바뀌는 아주 큰 전환점이니까 신중할수록 좋아. 스스로 알아보고, 듣고 싶고 보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부분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사람은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에 더 관심이 가는 법이잖아. 불편하더라도 나쁜 소리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들어보고 진심으로 객관적으로 이민을 생각해보길 바래.
여태까지 우리 이야기 잘 들어줘서 고마워!
간호사, 방사선사 동료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답글은 원래 하던 대로 반말로 주고받으면 더 좋을 거 같아!! 나도 그게 편하고, 언니 거나 오빠 거나 친구 거나 동생일 너도 그게 편할 거야, 하다 보면!! 물론 존대가 편하면 그렇게 소통해도 좋아 :-)
**호주 이민 생활 중이거나, 호주에서 이민 과정을 밟고 있는 동료들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이민을 생각하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조언들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부담 없이 댓글이나 인스타 디렉트 메시지를 줘! 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일 필요도 없어. 지금 이민의 과정을 밟으면서 느끼는 고충과 어려움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민에 대한 좋은 점과 후회되는 점도 가감 없이 나누고 싶은 동료들의 참여 기다릴게!
***출처를 밝힌 공유는 언제나 환영이야!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