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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버른앨리스 Jun 25. 2018

측은지심의 바른 이용방법이란


惻隱之心 [측은지심] : 남의 불행(不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 측은지심을 영어로 번역하면 이 세단어가 나와.


1. compassion   

2. pity   

3. mercy

 

 뭐가 맞는 거 같아? 나는 개인적으로 1번이 가장 가깝지 않나 싶어. 2번, pity는 무언가 쯧쯔...불쌍하다, 멀리서 혀만 차고 있는 듯한 느낌이고 3번 mercy는 더 높은 곳에서 굽어다보며 베푸는 자비의 느낌이라서 내가 생각하는 측은지심이랑은 거리가 있는 것 같아.


 내가 생각하는 '측은지심'이란 동정, 한자로 풀면 같은 마음으로 느끼는 정 - 공감이 바탕이 되어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거든. 공감이 바탕이 되지 않은 연민이 은근한 자기 우월이나, 혹은 아 그래도 내 상황이 쟤보다는 낫지로 이어지는 뜬금없는 자기긍정으로 흐르는 경우는 별로. 내가 너보다 나은 사람이니까 베풀어준다, 쯧쯧쯧 불쌍도 해라 - 하는 식의 자기만족 측은지심은 안 갖느니만 못할 때가 많은 것 같아.

 

 20대 초반 배낭여행을 다닐 때 나는 돈이 없어서 유럽 갈 돈을 늘려서 동남아를 순회했거든. 2주 다닐 돈 한 3-400만 원 정도로 비행기 포함, 5개월을 여행했으니 말 다했지. 물가 싸고 가난한 동네만 골라 다녔어. 지금은 관광산업으로 어느 정도 발전을 이뤘지만 십몇년전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지는 정말 정말 열악하고 정말 가난했어. 나의 기존 '가난과 불행'이라는 개념은 얼마나 상대적으로 풍족했는지 깨달을 때마다 현타가 왔지. 내 가난은 드라마틱하게 포장해봐야 '아무리 알바해봐도 유럽 갈 돈은 못 모으겠어서 동남아밖에 못가는 처지' 정도였던 거야.


티브이로 멀찌감치 구경하던 먼 나라, 다른 세상 이야기를 막상 눈 앞에서 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엎드려서 두 손으로 열심히 페달을 굴리며 짐이 잔뜩 든 자전거를 분주하게 끌고 가던 아저씨는 다리가 없는 거였어. 그 후에도 아주 많은, 팔다리가 없는 지뢰 피해자들을 만났어. 이동하는 미니버스가 고장 나서 멈춰야 했던 라오스의 오지에서는 우리를 구경하려고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단체사진을 찍듯 서있었는데 성인이 아닌 애들 중에는 옷을 입은 애가 없더라. 다 발가벗고 있는 거야.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초대받은 캄보디아 친구의 집에는 벽은 없이 얼기설기 야자수 잎으로 지붕만 걸쳐진 작은 정자만 하나 있었고 그곳은 그의 대가족이 비를 피해 잠이 드는 곳이었어. 뚝뚝 기사였던 그는 동생들한테 그나마도 양보하고 뚝뚝에서 잠을 잔다고.

 






 그런 이야기나 상황을 예기치 않게 맞닥트린 각각의 배낭여행자들의 반응은 다 달랐어.

대부분이 살짝 당황을 했고 그다음에는 나뉘어.

 

1. 이 또한 새로운 경험 (?) 여행의 흥미로운 부분이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관광한다.

2. 너무 불쌍해, 내가 도와줄 게 없을까? 를 찾는다.

3. 아 이런 데에 비하면 진짜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듯. 감사하며 살자.라는 식으로 의식이 흘러간다

4. 태연하게 모르는 척, 못 본 척한다.

 

 근데 이 4번이 나뉘는 게 4-1번 진짜 불편해서 외면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4-2번, 상대편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무분별한 동정을 보이지 않고 '가난한 나라 사람'이 아닌 그 자체로 대하려는 이유인 경우도 있어.  

 1번과 3번은 전형적인 선진국형 자기 우월감의 표출이라고 보고 2번은 측은지심이겠지. 2번과 3번은 보통 복합형이 많아. 아 나는 진짜 행복하고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었구나, 그러니까 나누고 도와주자.

 

 2번이 제일 좋은 케이스일 수 있어. 어쨌든 행동으로 이어질 확률이 젤 높으니까. 하지만 또 관찰하다 보면 자기 시선 중심적인 동정이라는 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 무조건 적으로 그 나라는 가난하니까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라는 위치에 두고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경우에는 상대편 입장에서 '왜 저래?' 로 이어지는 경우가 꽤 많아.


잉? 나는 나름 잘 살고 있는데, 왜 저러는 거야? 나, 불쌍한가?

 

 

 


 호주에서 어학원을 다닐 때 만났던 캄보디아 친구 N이

'착한 한국인'들에 대해 말했어. 캄보디아에서 호주에 유학 올 정도면 레알 상류층이거든. 어릴 때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인터넷으로 한국 친구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친구들이 배낭여행을 오게 되고 캄보디아에서 만났나 봐. 배낭 가득 N을 줄 전투 비상식량과 다 헤져서 못 입는 옷들을 싸서 왔더라고. 기사까지 딸린 집 도련님인걸 알고 나니까 '아, 배신감이 든다, 왜 말 안했냐' 하더라는 거야.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기까지 와서 좋은 일 좀 하고 싶은데 봉사 활동할만한 빈민촌을 소개해줄 수 있냐 묻더래.

가난을 보러 왔는데 가난이 없어서 실망한 거였을까?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쉬운 것이었을까?

 

 

 


 태국에 장기체류를 할 때

머무르던 게스트 하우스의 매반 (가정부)인 D와 친하게 지냈어. 정말 좋았던 게  D가 나를 볼 때마다 한국음식들을 줬거든. 라면이랄지, 먹다 남은 고추장이랄지, 김치라던지. 대단한 건 아니야. 라면 수프는 없고 면만 있을 때도 있었고 김치는 쉬어 빠져서 나조차도 못 먹고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어, 하지만 나는 가난한 배낭여행자였고 방콕에서 한식은 비쌌으니 안 받을 이유는 없었지.

 

그러던 어느 날은 궁금해서 물어봤어.

 

아, 그나저나 이런 한국음식들은 다 어디서 나는 거야?

 

 D가 말했어.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 도우미 하는 집에서 할머니가 맨날 이렇게 자질구레한 한국음식을 바리바리 싸준대. 딱 먹을 수 있을 정도, 버리기는 아까운 정도의 음식을 일주일 동안 D를 생각하면서 알뜰살뜰 모아놨다가 정성스럽게 싸준다는 거야. 태국 사람들은 너무 게으르다고 가난할수록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무한 잔소리와 함께. D는 마음은 고맙지만 한국음식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무엇보다는 남이 먹다 남은 거는 별로 먹고 싶지 않은데 거절하면 마음 상해할까 봐 늘 받아왔는데 어느 날 마주친 내가 오, 고추장! 하면서 좋아하길래 주다 보니 굳어진 거지. 그리고 말했어.


나 잘 사는 건 아니라도 먹을 거 못 먹을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은데,

그렇게 말을 하면 실망할 거 같아. 그치?


이상한 게 나도 그 말을 들은 후부터는 그 집에서 얻어온 봉다리에 들은 음식들 못 먹겠는 거 있지...


 

 

 


얼마 전에 멜버른 시내에서 우버를 탔는데 기사가 소말리아 출신이었어.

국적이 한국이라고 하는 나의 말에 그는 (단골 질문인) SOUTH? or NORTH?를 물어보았고 한국의 사태에 대해 관심을 보였어. 그리고, 나한테 묻더라.

 

너도 전쟁 때문에 멜버른으로 온 거니? 난민 자격으로?

 

 ???

 

 그리고는 자국의 이야기를 하면서 전쟁으로 벌어지는 물자의 부족 - 물과 전기, 인터넷 등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어. 나의 격한 공감을 기다리는 눈빛으로. 이런 거 진짜 힘들지 않아? 그렇지? 그렇지 않아?

 잠자코 듣던 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어. 한국은 전쟁이 끝난 지 아주아주 오래되었고 핵이 터진 적이 없어. 네가 지금 타고 있는 이 차 있잖아, 싼타페, 현다이. 한국 컴퍼니야. 그리고 지금 네가 쓰고 있는 스마트 폰 있지, 그게 삼송이고 코리안이야. 내 말은, 한국은 물자의 부족 때문에 힘든 나라는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전기는 말할 거도 없고 인터넷은 있지, 한국이 세상에서 제일 빨라...

 

그가 말했어.


아, 그래? 이 핸드폰이 한국 거라고? 굉장하다! 인상적이야. 근데 그래도 발전되고 안전한 호주에서 사니까 정말 좋지 않아? 여기는 뭐든지 없는 게 없잖아! 그렇지? 근데 넌 탈출할 때 (정말 ESCAPE이라는 단어를 썼다) 가족과 함께 온 거니?

 

.....

 

 그는 동병상련을 느낀다는 듯이 따듯한 눈빛을 끝까지 유지하였고 하차할 때에는 물과 사탕도 넉넉히 챙겨주었어.

 음, 뭐 어찌 됐든 간에 따뜻한 사람이었어.

 

 

 

  


끝판왕은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워킹홀리데이 처음 왔을 때 만났던 셀리라는 할머니지.

영어를 한번 배워보자고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아서 어떤 퇴역한 군인이라는 할아버지에게 단체로 회화를 배웠거든. 어느 날은 그분의 이웃이라는 샐리 할머니가 놀러 온 거야. 그 동네 자체가 되게 조용하고 보수적이었거든.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은퇴한 분들이 모여사는 동네라 아시안이나 다른 인종 자체가 별로 없었어..

 

OH, KOREAN!?

 

샐리 할머니는 반가워하시며 우리에게 한번 집에 놀러 오라고 하셨고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은 것은 나뿐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다음 날 할머니 댁에 놀러 갔어. 사실 영어를 너무 못하니까 어떻게든 영어를 듣고 말할 기회를 잡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나는 샐리 할머니를 몇 번 만났어. 처음에는 뭐라고 하시는지 잘 알아듣지는 못하겠는데 뭐를 자꾸 챙겨주셔서 그냥 받고 감사하다고 하고, 뭐 그렇게 하루가 갔거든. 그런데 자꾸 어디서 걸레짝으로도 못쓸만한 구멍 난 옷 같은 거를 한 아름 모아서 계속 안겨주시는 거야.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사양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안아주시기만 하고.

진짜 필요 없다니까요..... 버릴 옷 저도 너무 많아요. 근데 영어는 못하고 할머니가 하는 말도 못 알아듣겠고.

단어 단어 사전을 찾고 하시는 말씀을 짜깁기해보니까

 

그래그래, 너도 입고 네 동생도 줘. 동생이 둘이나 있다고 했지?

집에 갈 때 가지고 가서 친구들이랑 나눠 입어. 좋은 거야. 비싼 거야. 사양 안 해도 돼. 더 갖다 줄 테니까.


그러면서 어느 날은 신문에 우리나라가 나서 나 보여주려고 잘라놨다고 주시는데  

세상에, 김정일 얼굴이 똭 있어.

잘은 모르겠지만 ' NORTH KOREAN'의 인권에 관한 기사 같았어. 그때 이 퍼즐들이 맞춰지더라.

 어쩐지 내가 밥 먹을 때마다 그렇게 안타깝게 보시고 등을 쓰다듬어주시고 계속


'이런 거 먹어봤니?'

 '이거 먹을 줄 알아?'

 '천천히 먹어, 더 있어 더 있어' (음식이 가득 든 바구니를 보여준다)


나이프랑 포크 쓰는 것만 봐도 그렇게 머리 쓰다듬어주시고 기특해하시고 내가 밥 조금만 남겨도 큰일 나는 줄 아시더니....

 

나중에 퇴역군인 할아버지한테 들었어.

샐리가 그러던데, 너 북한 사람 이래매? 왜 말 안 했니?

 (님들 쫌 제발.. 아니라고ㅠㅠ)

 할아버지 말로는 할머니는 동네 돌아다니면서 '불쌍한 북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며 내가 얼마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 설명하시는 데에 무료한 일과의 대부분을 소진하셨대. 이 소녀에게 줄만한 안 입는 옷 없느냐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헌 옷을 수집하고 나는 한 번도 못 먹어 봤을 기름진 선진국 음식들을 요리하는 기쁨으로 얼굴도 밝아지시고 삶의 활력을 찾으셨다고.

손사래와 노노, 노 노쓰, 아임 싸우스!ㅜㅜ 밖에 할 줄 몰랐던 나는 그 과도한 동정과 사랑의 과부하를 견디지 못해 할머니를 점점 피하게 되었고 마침 전화기의 분실하면서 그 괴이한 인연은 끊겼어.

지금도 샐리는 내가 북한 정부에 다시 잡혀 들어갔거나 아니면 샐리가 준 헌 옷들로 어딘가에서 따뜻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참고로 샐리가 준 옷들은 봉투 고대로 호주의 노숙자들을 위해 비치된 헌 옷 수거함으로 직행했어.

 

 

 

 



 나를 알기도 전에 '세상 불쌍한 아이'라는 딱지를 나한테 붙이고

본인 스스로를 우월한 위치에 두고 나의 세상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만난 것은 신선한 (?) 경험이었어. 나도 어디선가 그랬겠지. 동남아 장기체류를 여러 번 하면서 딱지 붙이기 좋아하는 한국사람들도 아주 많이 만났어. 이런 경험들은 GIVER도 참 여러 종류가 있고 어떤 GIVING은 가끔 안 하니만 못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꼭 GIVER가 되고 싶고, 기왕이면 괜찮은 GIVER가 되고 싶은 나로서는 깊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야.

 

나는 내가 이롭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가지고 있는 걸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더 우월하고 잘나고 더 많이 가져서 나보다 못한 불쌍한 사람에게 나누면서 '내가 잘나고 좋은 사람인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닌.

일시적인 동정이 아닌 좋은 영향이 되었으면 좋겠고, 꼭 필요한 것을 필요할 때에 줄 수 있는 제대로 된 나눔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


 나로부터, 내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 내 위치에서 좋은 나눔이 아닌

반대편을 같은 사람으로 존중하고, 반대편의 입장에서 좋은 나눔과 선행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나누면서 느끼는 기쁨 중 우월감을 쏙 빼버릴 수는 없을까?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나는 조금 찝찝한데 이 것도 또 괜한 예민함으로 오버하는 걸까.

도울 수 있으면 그냥 도우면 되지 어떤 감정인지는 중요하지 않은걸까.




놀러와! :-)


앨리스 (개인 인스타) :  ALICEINMELBOURNE  (앨리스 팀 첫 번째 레스토랑)

SUDA (공식 인스타) :  SUDAMELBOURNE  (앨리스 팀 첫 번째 레스토랑)

NEMO (공식 인스타): NEMOMELBOURNE (앨리스 팀 두 번째 레스토랑)





*답글은 원래 하던 대로 반말로 주고받으면 더 좋을 거 같아!! 나도 그게 편하고, 언니 거나 오빠 거나 친구 거나 동생일 너도 그게 편할 거야, 하다 보면!! 물론 존대가 편하면 그렇게 소통해도 좋아 :-)


**출처를 밝힌 공유는 언제나 환영이야!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돼 :-)




https://brunch.co.kr/magazine/movetoaustralia



https://brunch.co.kr/magazine/your-mig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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