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몬드 모카 크림 커피
크림 커피 - 아몬드 모카 크림 커피
이 거리에서 빨간 날이란 없다. 오히려 대목인 날이다.
다른 카페의 웨이팅이 내게는 고마운 소식이다.
꿩 대신 닭이라 하였던가. 그것마저도 훌륭한 기회이기도 한 날이다.
오픈 후 거의 처음으로 내 카페가 북적북적 손님들로 가득 채워진다.
아무리 바빠도 정성을 다해 커피를 내리자는 내 원칙은 깨지 않은 채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린다.
딸랑
”어서 오세요 메뉴판 가지고 자리 먼저 정하신 후 주문은 앞에서 해 주세요.“
상냥한 기계 톤으로 안내를 한 후 다시 손님을 위한 디저트와 커피를 준비한다.
점심을 약간 비켜 간 시간이라 다들 브런치로 점심을 때우려나 보다.
한 여자가 카운터로 와서 주문을 하려는 모양이다.
카운터에서 밀리면 복잡스러워 지는 걸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 미리 메뉴판을 주고 넉넉하게 결정하라는 뜻이었는데 여자는 지금 카운터 앞에서 계속 망설이고 있다.
”여기 혹시 바닐라 라떼는 없나요…?“
“…? 저희는 드립 커피만 있어서요 아니시면 티 종류는 어떠세요?“
아 바닐라 라떼… 시럽을 넣지 않는 사장의 고집 때문에 그냥 나가시면 어떡하나…
“아… 그러면 그냥 아몬드 크림 커피랑 수플레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이 주세요.”
다행히 나가지 않고 메뉴판에 맞게 주문을 해 주신다.
저 손님은 항상 바닐라 라떼만 드셨던 분인가 보다.
아메리카노도 못 드시는 분이라면 드립 커피, 쉽지 않을 텐데…
꾸덕한 크림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은 수플레가 부디 중화 시켜주길 바란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드립 커피를 잘 마시는 손님들이었는데…
다른 손님의 커피를 내리면서 한편으로는 걱정 돼 곁눈질로
그 손님을 바라보고 있으니 굉장히 어설픈 손으로 카메라를 만지고 있다.
그냥 봐도 카메라는 매우 새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 산 지 정말 얼마 안 됐나 보구나…
한참을 만지작 거리던 그녀가 이제 카페 풍경 구석구석 찍기 시작한다.
‘그렇지 그렇게 좀 찍어서 우리 카페 홍보 좀 해 줘ㅠ’
이제 그녀의 커피를 내릴 차례다.
한참 집중해서 커피를 내리는데 그녀의 카메라가 나를 향하는 게 느껴진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지금 날 찍는 건가…? 이렇게 대놓고…?‘
아직도 찰칵 찰칵 찍고 있는 그녀 앞에 주문한 크림 커피와 수플레, 그리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같이 내어 놓는다.
’우와’ 하는 작은 감탄사가 들린다.
대범하게 사진을 찍던 모습과는 반대되는 작은 모습에 또 한 번 눈길이 가게 된다.
어떤 한 손님에게 눈길이 계속 가는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는데
이상하다. 이번에는 자꾸 바라보게 된다.
손도 대지 않은 채 열심히 플레이팅 된 디저트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가져 온 인형을 같이 매치 시켜 마치 인형이 커피를 즐기는 듯 연출을 하는 모습…
카메라 한 대와 커피 한 잔으로 그녀는 되게 잘 놀고 있다.
아주 한참 뒤 그녀는 한가해진 카운터로 트레이를 내어 놓고 갔다.
수플레는 깨끗히 비운 반면 커피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
역시 드립 커피의 쓴 맛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나 보다.
아니면 맛이 없었던 걸까? 크림으로도 드립 커피를 입문하기에는 어려운 걸까?
속상함 보다는 오히려 많은 질문을 얻게 되었다.
사실 크림 커피 주문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첫 손님이었는데…
메뉴에 대해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되지…?
일단 청소하기 위해 그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그런데 놓고 간 물건이 있는 건지 무언가 같이 있다.
자리에 있던 건 다름 아닌 사진이었다. 그것도 폴라로이드 사진
조금 전 찍은 내 모습과 본인의 모습을 담은 명함 같은 사진 두 장이
폴라로이드로 인화되어 자리에 놓여 있었다. 언제 인화한 거지?
SNS 주소가 같이 적혀 있는 명함은 처음 본다.
특이한 명함에 마음이 바껴 메뉴 연구는 내일 하기로 결정했다.
오늘은 마감하고 모처럼 SNS 구경을 가 봐야겠다.
아몬드 모카 크림 커피 테이크 아웃 한 잔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