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사서 고생한 뉴욕의 집 구하기
영화, 드라마로 접했던 뉴욕에 대한 환상 중 가장 꿈에 그리던 것은
바로 뉴욕의 아파트에서 룸메이트들과 룸 셰어를 해보는 것이었다.
물론 대학 시절 기숙사 생활로 인해서 룸메이트를 가지는 것이 마냥 영화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속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리고 미국에 온 이후, 나는 마치 드라마 프렌즈처럼 뉴욕의 낡지만 어딘가 힙한 아파트에서
총 16명의 룸메이트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낯선 곳에 왔다면 가장 먼저 의식주 중 주를 해결해야 된다.
대학 시절부터 부산에서 서울로 나름의 유학? 경험이 있던 나는 집 구하는 것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장소가 뉴욕이었고 아무런 정보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해결해야만 했다.
당시 미국 이모집에서 잠시 어학연수 생활을 하며 머물고 있었으나 뉴욕으로 인턴십을 하러 가게 되면서
혼자 살 집을 구해야만 했었다.한국의 경우 직방, 다방, 피터팬 등등 온라인으로 '손품'을 팔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다양하게 잘 되어있다. 그냥 길가다 부동산에 들어가서 집을 보는 것도 쉬운 편이었다.
그러나, 처음 미국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어떤 경로를 이용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믿을만한 정보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시행착오들을 직접 마주해야만 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또한 허위매물이 존재했다.
나 또한 뉴욕에서 집을 찾다가 사기를 당할뻔한 적이 있었다.
집 구하는 것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던 당시 craiglist라는 미국에서는 그래도 잘 알려진 매물 사이트에서 집을 구한 적이 있었다.
뉴욕 집에 대한 환상이 있던 나는 craiglist에서 말도 안 되는 조건의 집을 찾게 된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해있으면서 적당한 가격에 컨디션까지 완벽한.
나는 바로 이메일을 보내 집에 대해 문의했고 답변 또한 매우 친절하고 자세하게 받았다.
그렇게 몇 번의 이메일이 오가며 집을 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이후부터 점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일단, 집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답변을 보면 꼭 피치 못할 사정이 항상 있다.
외국에 가있거나 몸이 좋지 않거나 하는 등, 해당 사이트에서 쓰는 전형적인 사기 방법이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따지면 가계약금 형식으로 디파짓을 보낼 경우 집을 볼 수 있는 키를 주겠다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물론, 나는 이미 사기수법에 대한 정보를 다른 유학생들로부터 들었던 상태였고,
혼자 집을 구한 경험 또한 있기 때문에 바로 연락을 차단할 수 있었으나 생각보다 급한 마음에 돈을 먼저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 때문에 직접 뉴욕에 가서 집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던 나는 어학연수를 끝내고 무작정 뉴욕으로 향하게 된다.
단기로 게스트하우스에 약 일주일간 머물면서 직접 뉴욕의 집들을 보러 다녔다.
craiglist 외에도 집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했는데
보통 한국인들의 경우 헤이 코리언즈라는 한인 사이트에서 한인들이 렌트하는 집을 셰어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당연히 한국인들이 렌트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할 필요 없이 한국인들과 소통하면 되고
집 컨디션 또한 꽤 좋은 편이다.
그러나, 나의 목표는 최대한 외국인들 또는 현지인들과 직접 부딪히고,
그들의 삶을 경험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힘든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마치 한국의 매물 직거래 앱인 피터팬처럼 미국 또한 직접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 집을 내놓는 방식의 페이스북 그룹을 있었는데 이를 이용하게 되었다.
바로바로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으며
부동산에서 올리는 보정 있는 사진이 아닌 직접 사는 사람이 올린 현실적 사진을 볼 수 있으며
월세, 보증금, 집의 컨디션 등을 한눈에 알기 쉽게 정리해줬을 뿐만 아니라
함께 살게 될 룸메이트 정보까지 올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뉴욕의 경우 높은 월세 때문에 하우스 전체 또는 룸 하나를 셰어 하는 경우가 흔한 일이다.
나는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정말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많은 형태의 셰어하우스들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인 또는 중국인들끼리 각 인종별로 모여 사는 하우스도 있었고, 마치 피난을 온 것 마냥 큰 주택에 문이 아닌 커튼으로 방을 구분하고 20명이 넘는 사람들과 집을 공유하는 곳도 있었다.
또한 남녀 구분 없이 혼숙 호스텔처럼 아파트 한 호수를 함께 사용하는 등 듣지도 보지도 못한 셰어하우스 형태를 짧은 시간 안에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서울처럼 뉴욕 또한 미국의 다양한 지역과 또는 다른 국가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직업을 찾기 위해 온 이들로 가득했다.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좁은 집과 방에서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그때는 마냥 신기하고 경험해보고 싶은 무언가로만 보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총 16명이 사는 한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물론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무조건 뉴욕에서 외국인들과 셰어하우스에서 영화 같은 삶을 살 거야라고 다짐하며 집을 구했지만 직접 목격한 현실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자기만의 프라이빗한 영역은 꿈에도 꿀 수 없고,
예민한 성격이라면 잠을 설칠 수밖에 없는 단체 생활을 과연 내가 말도 통하지 않는 이들과 잘해나갈 수 있을까? 심지어 같은 금액으로 퀸즈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개인 룸까지 발견한 상태에서 꼭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답은 간단했다.
"나는 사서 고생하러 왔다."
미국 뉴욕에서 편안하고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낯선 사람들과 환경 속에서 적응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이고,
내가 과연 해외에서 홀로 성장할 수 있는지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처음 미국에 오게 된 목표를 상기시키니 결정을 빠르게 이루어졌다.
직접 아파트를 관리하는 한 러시안 친구와 계약을 했고 내가 함께 생활 할 룸메이트들과 만난 후 바로 입주를 하게 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시끄러운 라틴 풍 음악에 잠이 깨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30분은 기다려야 하지만
언제나 버라이어티 한 하루의 연속을 경험할 수 있는 16명의 사랑스러운 룸메이트들과 함께 짧지만 잊을 수 없던 동거 생활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