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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라 Feb 20. 2022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시트콤처럼 살 수 있었던 사정

한 편의  <Friends> 같았던 나의 뉴욕 하우스 


영어 공부 한 번쯤 해봤으면 들어봤을 드라마 <프렌즈>,

나 또한 영어공부를 하면서 프렌즈, 가십걸, 하우 아이멧 유어 마더 등 다양한 미국의 TV 시리즈들을 봤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다 뉴욕 배경으로 한 청춘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 

막연히, 뉴욕에 가면 저렇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상상해 본 적 있었다.

그리고 그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물론 마냥 드라마 같은 현실은 아니었지만, 


나는 뉴욕에 인턴십을 하러 온 후 숙소를 고르면서 의도적으로 룸메이트가 많은 곳을 선택했다. 

그 결과, 하루 종일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갑자기 뉴욕에 친구가 16명이나 생겼다. 


내가 계약한 집의 경우 뉴욕 맨해튼에 위치해 있었는데 아주 많이 위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보통 한국인이 뉴욕에서 집을 선택하는 경우 가격과 치안 문제로 퀸즈, 뉴저지 등을 많이 고려한다고 하지만

내가 선택한 곳은 뉴욕의 할렘가 보다 더 북쪽에 있는 워싱턴 하이츠였다.

당시에 내가 이 동네에서 산다고 했을 때 너무 위험한 곳에 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그때의 나는 무슨 용기인지 전혀 정보도 없던 곳을 무작정 가보고 계약을 하게 되었다.


뉴욕에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집 앞에서

처음 퀸즈의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집을 보러 가던 날이 생각난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연락하게 된 집의 매니저에게 받은 주소 하나를 들고 혼자 메트로를 타고 

점점 스트릿 넘버가 올라가는 메트로 역의 이름을 보면서 불안함 반, 호기심 반으로 집을 찾아가던 기억.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치 드라마 <프렌즈>에 나온 것처럼 약간 오래된 듯한 벽돌 건물이 있었고 그 외벽으로 비상 철제 계단이 작은 창문 사이사이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 집이다. 

작은 아파트 구조로 된 집은 공동 현관으로 들어가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한국처럼 비밀번호로 된 도어록도 없었고 작은 열쇠 구멍이 있는 집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었다.

그러자 옅은 금발 머리에 내가 고개를 올려다봐야 할 정도의 큰 키를 가진 러시아인 친구가 나를 반겨줬다.

사실 그때 당시에는 무표정한 이 친구의 표정에 살짝 겁을 먹었던 것도 같다.

나중에야 원래 표정이 많이 없는 친구고 감정 표현을 크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리고 뒤이어 나와 연락한 매니저가 나와 집을 구경시켜주었다.

마치 게스트 하우스처럼 방마다 이층 침대가 놓여 있었고 공동생활 공간에는 

TV에서 본 것 같은 큰 소파 하나와 TV, 그리고 큰 탁자가 있었다. 

특히, 이 집이 특이했던 것은 관리하는 매니저가 따로 있어서 집에 필요한 휴지, 세재, 수건 등의 생활 용품을 한 주에 한번 교체해주는 것이었고 쓰레기 처리 및 청소 또한 집에 거주하는 매니저가 있어서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단기로 뉴욕에 거주하는 친구들이 많이 살았는데, 

내가 살던 곳의 경우 미국 LA이나 다른 지역에서 온 미국인 또는 유럽, 남미, 인도 등에서 뉴욕에서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온 친구들이었다. 

특히, 예술의 도시 뉴욕답게 나의 하우스 메이트들의 직업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


보통 한국에서는 20대 중후반의 나이의 사람을 만났을 때 취업 준비 또는 회사 다닌다는 말을 많이 듣고 왔었지만 나의 룸메이트들의 경우 단 한 명도 같은 직업이 없을 정도로 저마다 개성 있었다.


댄서, 모델, 요리사, 스타일리스트, 뮤지컬 배우, 디자이너, 그리고 나 영상 프로듀서까지 

저마다 각자의 꿈과 목표가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해도 흥미로웠고 각자 몰랐던 세상에 대해 알게 된다는 호기심으로 항상 각자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선택한 방의 경우 총 4명이 쓸 수 있던 방으로 중앙에 세로로 길게 난 창문이 있었고,

그 사이로 이층 침대가 1개씩 있었다. 

마치 대학 기숙사로 돌아간 것처럼 자기 전 각자의 침대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아침마다 다른 친구의 알람 소리 또는 침대 계단을 내려오는 삐그덕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기도 했었다.


나를 포함하고 총 4명이 한 방을 쓰게 되었는데 그중 나를 포함한 3명은 나름 그 집의 터줏대감이었다.

입주자를 막 모집하던 시기에 내가 들어갔기 때문에 아직 정원이 16명이었던 아파트에 6명이 채 안되었기 때문에 큰 아파트를 마치 드라마 프렌즈처럼 소수의 하우스메이트들끼리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소수의 하우스 메이트, 우리가 오리지널 멤버라 불렀던 인원 중 나와 2명의 룸메이트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며 빠른 시간 안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집이 사람들로 가득 차기 전 우리만의 소소한 파티를 한 적이 있었다.

밖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나른해지는 주말 오후 우리는 거실 소파에 누워 무서운 영화 한 편을 시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땅히 먹을 간식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하우스메이트들과 함께 동네 구경을 하며 장을 보러 간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파트에서 조금만 나가면 바로 허드슨 강이 있었기 때문에 겨울에는 매번 매서운 강바람을 맞으면서 걸어 다녀야 했는데 추운 것도 모르고 친구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을 보러 갔었다. 

각자 좋아하는 술과 과자를 사들고 집에 돌아와 작지만 재밌었던 팝콘 & 영화 파티를 즐겼었다. 


그리고 우리는 뻔하게 예상 가능하지만 항상 보면 놀랄 수밖에 없는 B급의 공포영화를 틀어놓고

팝콘이 바닥에 흘릴 정도로 제대로 놀라기도 하고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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