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25살 그리고 미국
언젠가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10년마다 오는 대운(大運)이 있는데 이는 10년 단위로 변화하는 운을 말한다.
만약 21살 대운이 들어왔다면 10년 뒤인 31살이 대운이 들어오는 식이다.
나에게는 그 대운이 15살, 25살, 35살 이런 식으로 10년의 단위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특히, 이 대운의 시기에는 환경적으로 큰 변화를 겪고 새로운 사람들과 상황을 마주한다고 한다.
정말, 대운이라는 것이 존재한 것일까?
실제로 나는 15살에 캐나다 이민이라는 큰 변화가 겪었고, 10년 뒤인 25살에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의 경우 캐나다 이민 생활 당시 여행을 가거나 이모집 방문으로 간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 혼자서 큰 트렁크를 끌고 미국 워싱턴 D.C로 향하게 되었다.
13살, 처음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유학을 꿈꿨던 나의 마음은
한국 대학을 다니면서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캐나다에서의 아쉽고도 짧은 학교 생활을 마치고 갑자기 돌아왔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3년간 나는 그 누구보다도 바쁘고 열심히 대학 생활을 보냈다.
이 때문에 남들보다 한 학기 먼저 졸업을 할 수 있었는데, 한 학기를 앞두고 나는 문뜩 근데 졸업하고 뭐하려고 했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남들이 하는 것을 바쁘게 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내가 하고 싶던 것을 놓치고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25살 겨울, 나는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처음 미국 땅을 밟은 것은 16살 여름쯤이었다.
당시에는 워싱턴에 살고 있던 이모의 초대를 받고 여름 여행차 미국으로 향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의 꿈의 도시 뉴욕을 만나게 되었다.
영화와 TV에서 보던 그대로인 빌딩 숲의 화려한 뉴욕은 나에게는 매우 거대해 보였다.
당시 유행하던 디지털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누르면서 맨해튼의 거리 사이를 뛰어다니며
언젠가 여행이 아닌 꼭 나 홀로 뉴요커의 삶을 경험하러 와야 다짐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약 10년이 흐른 후 나는 미국에서 혼자 살기라는 목표를 이루게 된다.
졸업을 앞둔 당시 나는 이루지 못했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미국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미국에서 단 6개월이라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단순히, 장기간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닌 현지인처럼 살고 싶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나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대학을 재학하고 있었지만 취업에 대한 고민은 크지 않은 상태였다.
연기를 한 경험이 있고 프리랜서의 삶만 생각했었기 때문에 남들처럼 사무직 직장에 취업을 하겠다는 마음이 없던 상태였다. 특히, 영화일을 하겠다 마음을 먹고 주로 단편 영화 제작을 하거나 연기 오디션을 보러 다녔던 상태였기 때문에 대학교 3학년부터 하는 취업 준비를 나는 하지 않았었다.
그런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 처음 직장 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미국을 가기 위한 방법을 찾던 도중 나는 한국과 미국의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진행하던 사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일정 금액의 지원을 받아 미국 어학연수와 현지 기업의 인턴십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회를 찾게 된다. 특히, 어학연수 지역의 경우 이모가 있던 지역 부근의 워싱턴 D.C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금액면에 있어서도 큰 메리트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10년 만에 미국 땅을 홀로 밟게 된다.
당시에는 여행으로 엄마와 오빠와 함께 왔던 미국을 이번에는 나 홀로 오게 되었다.
2개월 간의 짧은 어학연수를 워싱턴 D.C의 어학원에서 마친 후 배정된 기업의 인턴십을 하는 일정이었는데 나는 이미 한국에서부터 미국 뉴욕의 한 영상 회사에서 잡 오퍼를 받았고 합격해서 일하는 것이 거의 결정 난 상황이었다.
뉴욕을 가기 전 이모집에서 머물면서 해외만 오면 버튼 켜지 듯 켜지는 엄청난 생존 본능과 외향인으로서의 다른 인격을 깨우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캐나다에서 그리고 대학 생활부터 다양한 국가를 여행 가면서 느낀 것이지만
내향적이고 파워 집순이 성향을 가진 나는 해외에만 오면 알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가 생기고
상당히 관계중심적인 사람이 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잘 걸고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
밖으로 밖으로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파워 외향인의 모습으로 말이다.
워싱턴 D.C에 있던 어학원을 가기 위해서 이모집이 있던 버지니아주에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해를 보며 미국 출근러들과 함께 메트로를 타며 출근 아닌 출근을 했던 기억이 있다.
미세 먼지 하나 없는 핑크빛 하늘을 보며, 현지인들과 같이 바쁘게 DC로 기차를 타면서
드디어 내가 미국에 혼자 오게 되었구나가 실감 나던 순간이었다.
특히, 어학원에 다닐 수 있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그 기간 동안 나름의 목표를 세우게 된다. 회사에서 일을 할 정도로 다시 영어에 대한 감각을 키워야 했고, 뉴욕에 가서도 연락을 할 수 있을 현지인 친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오히려 더 바쁜 스케줄로 새벽 6시에 집에서 나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스케줄을 반복했었다.
오전에는 어학원에서 비즈니스 영어 관련 수업을 들었고, 수업 이후에는 워싱턴 D.C를 돌아다니거나 어학원을 통해서 만난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며 최대한 하루 종일 영어에 노출되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나는 해외에 가면 최대한 한국인과의 접촉을 제한하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말이 통하는 친구들과 어울릴 경우 편안하게 좋은 추억들을 남길 수 있겠지만,
현지인들 또는 다른 외국인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얻을 수 있는 색다른 것들을 놓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것은 후자였고 나는 이를 이루기 위해 충실하게 노력했다.
그 결과, 나는 정말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된다.
목적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항상 마음속에 해외에서 사는 것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좌절된 꿈을 다시 실현할 수 있는지, 또는 내가 정말 그러한 삶을 원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더더욱 현지인들의 삶의 방식을 체험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 10년 넘게 살고 있는 현지 시민권자 이모의 도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현지에서 한국인으로서 정착해서 살고 있는 이모와 함께 살면서
이모의 현지 직장을 방문하기도 했고, 현지 친구들과 즐기는 크리스마스 모임, 한국 이민자들의 모임 등을
함께 참석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짧은 경험과 만남은 이후에 정말 홀로 뉴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바탕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