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다가오지 않으면 먼저 다가가야 한다. 근데 어떻게?
나는 프로 전학러였다.
초등학교 3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2곳, 심지어 대학까지 2곳일 정도 여러 번 학교를 옮겨 다녔다. 물론 부모님이 해외 파견을 자주 나가거나 전근을 많이 다니시는 아이들에 비하며 국내의 많은 도시나 해외의 많은 국가를 다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잦은 이직으로 인해서 2년에 한 번은 꼭 다른 동네나 지역으로, 심지어는 국가를 변경해서 여러 번 전학을 다녀야만 했다.
전학을 한 번이라고 가본 사람은 낯선 환경에서 오는 긴장감과 불안감을 알 것이다.
아무도 나란 사람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 속으로, 이미 유대 관계를 쌓아 온 무리 사이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꽤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사실 나의 성격은 극 I일 정도로 매우 내향적이다.
물론 I의 성향이 소심하고, 말 없고 이런 성격의 개념을 설명하기보다는
외부 환경이 아닌 내부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때문에 나는 매 번 전학을 갈 때마다 낯선 외부 환경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그때는 내가 성격이 소심한 것 인지 아니면 부끄러움이 많은 것인지 고민을 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나는 생각보다 외부 환경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다는 것을.
주로 내가 먼저 말을 거는 것보다는 말을 먼저 걸어오는 무리들과 친구가 된 적이 많았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친구들은 전학생에게 관심이 많이 없는 편이었고,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할 때가 더 많아졌다.
그때부터 나는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건 나름 나만의 생존 전략이었다.
전학 첫날, 교탁 앞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을 곁눈질로 보면서 누가 나에게 관심이 있고 호기심이 있어 보이는지를 파악 후 먼저 말을 건네게 되었다.
여기서 나만의 소소한 팁은 4명, 6명처럼 이미 짝수 형태의 그룹이 아닌 3명, 5명처럼 애매한 홀수 형태의 그룹에 있는 친구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특히, 3명 정도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학생들의 경우 가끔씩 애매해지는 상황 때문에 한 명 정도 충원(?)의 필요성을 느끼는 심리를 이용했었다.
그러나, 캐나다 고등학교로 전학을 간 첫날, 나의 전략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첫 수업을 들은 후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언제 밥을 같이 먹자고 말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보통 수업이 8시쯤 시작해서 오후 2시에 끝나는 스케줄로 진행이 되었고,
점심시간을 전후로 4개의 수업을 수강했었다.
물론 한국의 50분 수업보다는 길었지만 한 수업당 대학처럼 많은 시간이 할당되어 있는 것이 아니 었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자주 없었고 수업이 끝난 후 10분의 쉬는 시간 동안은 다음 교실을 찾아가기 바빴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처럼 나를 소개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상당히 애매한 포지션에서 매 수업을 수강해야 했다.
저런 애가 있었던가? 또 전학 온 유학생이네?라고 대부분이 생각한 듯
나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다행히, 점심시간 수업 전 영어 수업을 듣던 한인 유학생 S가 친절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줬고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홀로 화장실에서 '눈물의 샌드위치'를 먹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난 여전히 외국 친구 만들기라는 나의 과제를 잊지 않았다.
물론, 나의 한국인 친구 S는 너무 좋은 아이 었고 우리는 꽤 친한 친구였다.
한국과 다르게 한 반에서 친한 친구와 계속 수업을 듣고 활동을 하는 구조도 아니었고,
나는 현지 아이들과 영어를 쓰며 언어 실력을 향상해야 했기 때문에 혼자 나름의 친해지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수업을 들을 때 대학교처럼 매 수업마다 자리가 고정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암묵적으로 선호하는 자리가 있다 보니 첫날 앉았던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S나 다른 한국 친구가 없는 수업을 들을 때면 항상 첫날, 친한 친구 없이 혼자 수업을 들으러 온 아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 수업에 한해서는 단짝처럼 항상 옆자리에 앉아서 수업 이야기를 하거나 여러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마치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처럼 하루하루 다른 주제를 들고 오거나 관심 있어할 만한 것들을 물어보며 친밀도 지수를 올리는 것이다.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매 학기마다 학교 gym에서 (한국으로 치면 강당 같은..?) 매번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전교생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또 한 명의 친구를 사귀게 된다.
내가 Z의 옆자리에 앉은 것은 우연이였다.
오리엔테이션에 학생들이 많았었기 때문에 나는 굳이 친한 친구들을 찾아서 같이 앉는 수고를 하지 않았고 그냥 보이는 자리에 앉은 것뿐이었다.
그동안 전학생으로 살아오며 얻은 촉 덕분인지 왠지 모르게 이 친구가 이 분위기에 낯설어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나는 용기 내어 처음 보는 Z에게 말을 걸었고, Z는 기다린 것처럼 반갑게 내 말에 응해주었다.
알고 보니 Z 또한 다른 동네에서 전학 와 오늘 첫날이었고 낯선 학교 분위기에 나름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
이미 한 학기의 학교 생활을 경험하고 만난 Z에게서 나의 학교 첫날 모습이 떠오르게 되었고 우리는 오티를 하는 내내 교장님의 훈화 말씀 대신 소소한 수다를 나누게 되었다.
Z 또한 나처럼 다양한 곳으로 전학을 많이 다닌 삶을 살았었고, 이 때문에 매 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고 한다.
프로 전학러였던 나는 Z의 힘듬을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아직 영어도 완벽하지 않은 캐나다 6개월 차 외국인 학생의 신분으로 캐나다 현지 전학생을 도와주게 된다. 마치, 여자 주인공이 학교에 전학 온 첫날 옆에서 물어보지도 않았던 학교의 사정을 요약해서 말해주는 여주 친구에 빙의된 것 마냥 나는 능숙하지 않은 영어 실력으로 Z에게 학교 투어를 시켜주었다.
그날부터 나는 꽤 많은 전학생들의 암묵적 가이드이자 처음 사귀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누구보다 전학생의 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새로 학교에 온 친구들을 도와주게 되었고 나만의 친구 그룹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 또는 이민자들의 경우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적응 기간 동안 내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게 된 소소한 지식들을 알려주게 된다.
전학을 많이 다니며 얻은 나름의 전략들로 그들을 도우며 나 또한 많은 것을 얻었다.
영어가 되지 않는 친구들을 위해 선생님, 학생들 사이의 통역 역할을 자처하며 영어 실력을 단 기간 내에 향상했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망설임 없이 말을 걸 수 있는 친화력과 적극적으로 일을 수행하는 실행 능력 또한 얻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처음, 첫날은 힘들 수밖에 없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곳,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 마냥 바로 적응하는 것은 어렵다.
나 또한 그랬다. 새로운 곳을 옮겨 다닐때 마다 느껴지는 그 긴장감과 낯선 곳에서 오는 불안함.
그러한 것들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치열하게 노력했었고 누가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다가가기 위해 나만의 방법들을 터득했다.
그 결과, 캐나다라는 낯선 땅에서조차 나는 꽤 잘 적응한 프로 전학러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