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알 수 없는 곳에서 평생의 꿈을 찾기도
나는 굉장히 변덕스럽다.
특히,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이 때문에 내가 대학 졸업 후에 6개월 넘게 같은 곳에서 일한 적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일을 해왔던 것 같다. 현재는 드라마 제작사의 기획 pd를 하지만 곧 또 다른 일을 찾을 계획이니 나도 이런 내가 피곤하다.
그러나, 인생의 절반 동안 바뀌지 않는 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연기에 대한 꿈이다.
사실 나의 첫 번째 전공은 연기였고 생계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을 때조차 배우를 하기 위해 연기 레슨을 받고, 오디션을 보고, 촬영을 하는 등 연기의 꿈을 놓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러한 꿈을 가지게 된 시작은 내가 캐나다에서 나의 페르소나, 부캐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친구 사귀기와 영어 실력 향상이라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한 나의 캐나다 고등학교의 적응기는 갑작스러운 '수학 선생'으로서의 정체성과 '연기 수업'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수업시간을 이용해서도 충분히 외국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고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나는 본격적으로 수업 시간을 활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1년 동안 학교에서 연기 수업을 수강하며 나의 적성까지 찾게 된다.
캐나다 고등학교에 재학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바로 다양한 종류의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는 것.
내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많은 종류의 예술 수업이 정규 과정으로 있지 않았고,
모두가 흥미가 없어도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외 고등학교의 경우 대학교처럼 졸업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강과목과 학점이 있고 이를 채우기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선택해서 수강하게 된다.
물론, 한국처럼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의 과목이 필수로 들어가 아예 듣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각자의 진로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기타 수업을 듣는 재미가 존재한다.
특히 사진, 촬영, 연기, 댄스, 음악, 체육 등의 예체능 과목 또한 학년별로 강의가 열리기 때문에 4년 동안 수업을 들으며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나는 여기서 무모한 도전을 시도하게 된다.
아직 수업을 따라가기도 버겁고 현지 친구들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미리 할 말을 생각해야 할 정도로 부족한 영어 실력을 가졌으나 연기 수업을 수강하게 된다.
내가 주목한 것은 연기 수업에는 단 한 명의 한국인도 혹은 다른 국가에서 온 유학, 이민자도 수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사를 직접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고 직접 상황극을 짜거나 즉흥 연기를 하는 등
언어 실력이 완벽하지 않으면 힘든 수업이기 때문에 캐나다인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Theatre acting class의 유일한 외국인이자 비네이티브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또 다른 페르소나인 '대배우 외국인'으로 연기 수업에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냈다.
나는 연기 수업을 하면서 생각보다 나는 뻔뻔하고 두꺼운 철판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음이 좋지도,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지도 않으면서 현지인들 앞에서 그 누구보다 당당한 척 연기를 했다.
게다가 나는 꽤나 적극적이고 리드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들었던 수업의 경우 10학년이 듣는 기초 연기 수업이었기 때문에 바로 대사를 읽거나 배역을 맡아서 하지는 않았다.
매 수업마다 조를 이루어 다양한 상황극을 만들고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는 자유로운 수업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나는 조원들에게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런 나의 적극성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사실 나는 애드리브를 잘할 수 없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영어가 잘 되지 않아 혼자 나름의 스크립트를 만드는 내가 상황극에서 즉흥적으로, 게다가 영어로 애드리브를 한다?!
때문에 나는 최대한 내가 통제할 수 있고 예상이 가능한 방향의 상황극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냥 상황만 설정하고 즉흥적으로 하자는 조원들을 설득하여 주도적으로 스토리를 만들고 캐릭터를 설정하고 대략적인 대사를 준 것은 수업에서 최대한의 애드리브를 피하기 위한 나의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나는 마치 대배우가 된 것처럼 수업임에도 진지하게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하고, 캐릭터 설정, 상황, 감정 등을 다 고려하며 '나름의' 메서드 연기를 하게 된다.
특히, 나는 부족한 영어 실력을 보안하기 위해 손짓, 발짓, 과도한 감정을 사용하게 되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할리우드 액션을 서양권 친구들보다 더 잘했던 것 같다.
점점 손짓과 발짓에서 단어 그리고 문장까지,
진짜로 말을 하는 연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을 키우게 된다.
물론 연기를 할 때마다 혹시나 영어를 틀리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 상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까 봐 긴장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 배우가 된 것처럼 오히려 더 뻔뻔하게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사용하면서 연기 수업에 참여했고 한 학기의 수업을 마무리했을 때는 1인극으로 긴 독백을 연기하면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큰 박수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