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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현 Apr 25. 2020

나의 작은 친구 녀석...

멋진 사랑을 주도록 노력 하마. 약속해.

요즘, 아이랑 하루 종일 있다 보니, 아이가 아들 녀석이 아닌, '친구 놈'이 된 것 같은 웃픈 상황이다. 

고작 9살과 40살이 말이다. 둘 다 심심하다 보니, 같이 보드 게임을 하기도 같이 각자의 음료를 만들어 주면서, 그냥 침대에서 멍 때리기도, 창 밖을 보며 기특하게 피어난 꽃들과 파란 입사귀들에 같이 감탄하기도 하면서 지낸다. 내가 좋아하는 '루미큐브'라는 보드게임을 상대해주기도 하고, 작은 친구 놈(아들)이 좋아하는 '로보 77'을 같이 하며 신나게 깔깔대고 신나게 에너지를 소진하기도 한다. 

요즘은 TV 프로그램 <개는 훌륭하다>를 보면서, 개를 키우고픈 꿈이 둘 다 있기에 어깨동무를 하면서 꽤나 진지하게 시청을 하기도 한다. 매력적인 개 모카와 우유가 나오는 유튜브 채널을 같이 시청하며 깔깔 대기도. 그러면서, 나의 작은 친구에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개를 키우는 것에 대해 이모저모. 예쁜 강아지에 대한 환상보다는 현명한 가족이 되어주는 미래를 바라기에.

커피 러버인 내가, 커피숍을 맘 놓고 못 가니까, 집에서 '현소우'라는 카페를 오픈했다. 부엌에서 난 프렌치 프레스기와 우유에 거품을 내고 캐러멜 시럽을 뿌려 나름 멋들어지게 커피를 만든다. 나의 작은 친구를 위해서는 유튜브 채널 '커픽처스'에서 배운 딸기 스무디를 만들어준다. 제법, 맛이 근사한다. 하루에 한 번은 커피숍 기분 좀 내고 싶어 시작했는데, 나의 최애 순간이다. 이제는 130cm의 작은 그 녀석이 꽤나 능숙하게 스무디를 만들어 주는 호사를 누려보기도 한다.  

이렇게 꽤나 낭만적이고 좋게만 지내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개학을 맞이함과 동시에 갑자기 늘어난 학업량을 버거워하는 꼬마 친구가 갖은 짜증과 반항을 하기도 하니까. 그래도 며칠 지나자 익숙해졌는지, 눈 뜨자마자 교과서와 활동지를 챙기고 EBS를 켜니까. 혼자서 푸는 학습 문제집들도 하는 것 보면 기특하다. 가끔 공부 문제로 큰 소리가 나는 것 외에도, 다투는 가장 큰 이유는 이거다. 어이없게도 산책과 운동을 하려는 엄마와 집에만 있으려는 녀석의 고집에 크게 싸운 적도 많다. 활동적이면서도 어려서부터, 외출 준비를 귀찮아하여 나가기 전에 지쳐서 취소하기 일쑤였으니까. 다른 집들은 아이가 답답해서 나가려고 하는데, 우리 집은 반대 상황이다. 쩝, 애니웨이, 하루 종일 같이 있다 보니, 어린 아들에게는 못 볼 꼴을 보이기도 한다. 신랑과 시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혼자 하소연하면서 우는 것을 보이기도. 쪽팔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마음에 꽤나 걱정스러웠을 거다.

나는 아들과 친구처럼 되어버린 것 같음이 싫지는 않다. 솔직히는 너무 좋다. 외아들 엄마로서, 10년 후 아니, 2년만 지나도 꾀나 외롭고 서운해질 것 같음이 안 봐도 뻔하므로. 다만, 나의 아들이기에 내가 엄마로서 때로는 무너지는 나의 관계들(남편과 시댁 등등)로부터 받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봄이다. 집에서 지내는 기간이 길어짐에 가끔은 지치기도 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내 모습도 가끔 보면서, 또 하나 다짐을 해본다. 혼자 나름 시간을 내서, 스스로 행복해지는 순간을 만들도록 하자고. 그래서 요즘은 얕아져 버린 긍정과 에너지를 다시 차곡차곡 쌓아보자고. 미국에서 지낼 때도 남편 없이 아들과 2년을 보냈던 그때와 요즘이 오버랩된다. 그래서 조금은 우리가 더 친구 같은 거로구나, 우리가. 그리고 어쩜, 엄마가 철없어 어린 네가 철이 빨리 들어 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


나의 (아직은) 작은 친구야~ 고맙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라고 말해주고, 늘 하트를 날리며 뽀뽀를 해주고, 달콤한 눈빛으로 엄마가 너무 예쁘다 해주고, 엄마의 눈곱도 작은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떼어주는 진실된 사랑을 보여줘서, 내 옆에 꼭 붙어 앉아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면서 같이 <구해줘, 홈즈>를 보면서 아름다울 우리의 집에 대해 같이 꿈꿔주어서. 네가 어른이 되어서도, 완벽할 순 없지만 참 따뜻한 추억이 내 엄마와 있었구나, 하고 가끔은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한다. 멋진 사랑을 주도록 노력 하마.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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