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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현 Aug 16. 2022

20개월 만에 토플 80 맞고 고

소원이 이루어졌던 그 순간...

캐비닛 7번에 가방부터 쑤셔 넣는다. 허기짐에 바나나를 괜스레 몰래 집어먹으며...

행운의 7! 이번엔 여기에도 행운을 걸어본다.


텍사스 하이웨이에서 길을 잘못 들어 2시간 만에 겨우 도착한 휴스턴, 한국 광주에서 각 1번씩 응시를 한 적도 있다. 내가 살던 칼리지 스테이션의 같은 시험장은 10번째다. 이곳 시험 감독관들이 날 알아볼까 자기 혼자 의식 중이다. 인도인, 중국인, 아랍인 등 다양한 나라의 수험생들이 왔다. 아이들과 남편이 함께 와서 시험장까지 배웅받는 엄마들도 있었다. 솔직히 그녀들이 부러웠지만, 그 딴대 정신을 뺏겨선 안 된다. 그 해 응시료만 대략 180불. 해마다 수험료는 오른다. 가난한 유학생 가족 멤버로서, 20만 원이나 하는 큰돈을 날리고 싶지 않았다. 대기하는 카우치에 앉아 벽면의 유리창을 바라보며 눈을 감으며 마인드 컨트롤을 해본다. 외워온 스피킹 대본들을 줄줄 읊어보기도 한다. 라이팅에서 서론, 본론과 결론 앞에 붙는 차례어들도 떠올려본다.

젠장, 줄줄 읊을수록 더 떨린다. 시험 공포증이다. 제발... 한두 번도 아닌 시험인데 왜 이러는지...


"서현 팍(소현 박: 미국 친구들은 내 이름 발음을 어려워한다.)"내 차례가 오자,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 소지품을 점검하고서 내 자리 번호에 앉는다. 앉자마자, 손을 들어 화장실을 급히 다녀오고 시험 볼 준비를 했다. 정말 제발 그만 좀 떨자. 토플만 벌써 몇 번째냐. 수능은 3번이나 봤잖아 이놈아...


그놈이다. 수능 시험장에 재수 없는 인간이 하필 감독관이다. 이럴 확률은 대체 몇 퍼센트가 될지... 중학교 수학 방정식 풀이에 매료되어 (특이하게? 수학을 좋아했다) 수업 듣는 내 얼굴 표정이 자기를 째려보는 것 같다고 기분 나쁘다고 교무실로 불러서 자신의 권위의식을 한껏 뽐내던 교무부장인가 뭔가 하던 수학 선생님이다. 게다가, 방송국 카메라가 플래시를 팡팡 터트린다. 와~저것들 소송하고 싶다. 평생 가장 중요한 수능날, 억울했던 사춘기 시절의 상처도 떠오른 데다, 방송국 카메라는 내 멘탈을 흔들어 놓았다. 시험을 개 망하게 했던 그날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뒤로 난 시험 공포증이 있다. 시험지만 받으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 그래서 꼭 시험만 보면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기도 하고, 헛것을 보기도 하고 정말 난감하다. 


이것도 내 탓이다. 마음을 다 잡지 못하는 나약함. 중요한 시험날 도망치고 싶은 겁쟁이.


그 뒤로 16년 후, 난 35세의 그냥 아기 엄마, 자존감 낮은 평범도 아닌 이하 아줌마가 되었다. 머나먼 도시 텍사스의 작은 도시, 칼리지 스테이션 토플 시험장에 앉아 있다. 정확히는 12번째의 토플(IBT) 시험이었다. 이제는 시험을 보러 가는 게 눈치가 보이고 남편에게 민망하다.


시험 보기 전 늘 나는 이런 기도를 했었다.

"이번에 꼭 붙어야 하는데(목표 80점)..."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80이 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실패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나는 또 도전할 겁니다. 될 때까지. 정말 그동안 열심히 했던 만큼 최선을 다할 겁니다.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은 진심이었고, 감사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덤덤함이 앞섰다. 신기했다. 일희일비하는 단순 무지한 평소 나의 모습과는 새삼 달랐다. 물론 시험에 대한 걱정과 떨림은 있었지만, 거기에 지배당하지 않았다. 그날의 나는 원래부터 그랬던 사람 같았다.


그렇게 평소보다는 평온함은 갖고 시험을 치르고 일주일 뒤 결과를 보았다. 70점대 초반이었다. 지난달과 같은 점수. 좌절감에 침대 붙박이로 7일을 보냈다. 온디맨드 서비스의 한국 드라마만 종일 봤다. 그러다 벌떡 일어났다. '어디서 내가 점수를 잃었는지 분석하자. 그래서 메꿔서 80맞자.' 하는 마음으로. 네 가지 영역별-리딩, 리스닝, 스피킹, 라이팅-점수를 분석을 위해 다시 성적표를 클릭했다. 그런데, 뭐지"80"이었다. 내 목표 점수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이불을 박차고 눈곱을 때고 다시 보았다.

난 영원히 내 꿈을 갖고 살 것이다.

내 이름, 시험 날짜 맞는데? 어라, 그럼 내가 저번에 점수는?

역시 박소현이다. 천하에 덜렁이(친정 엄마가 내 첫 출산 후 제발 아기만 길가에 흘리고 다니지 말라고 할 정도) 답다. 껄껄껄... 지난날 점수를 본 거다.  혼자 생쇼를 했었구나.

냉장고 앞에 서 있던 신랑을 붙잡고 난리 부르스를 치며 아들을 안고 둥실둥실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질러대면서... 누가 알면 로또 1등에 당첨된 줄 알겠다.


난 이 경험을 통해 소원이 이루어지는 비밀을 살짝 알게 되었다. 절실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평온함과 감사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하나 더 이번에 안 돼도 어쩔 수 없지만 난 될 때까지 할 거라는 아름다운 오기. 그래서 사람들이 마인드 컨트롤을 외치고 심리학 강의와 책이 인기가 있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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