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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현 Aug 19. 2022

 후진 날 밤 다짐이 날 일으켰다

백지연 님 감사해요.

17개월 아들과 배가 고팠다. 차도 없었다. 밖은 40도가 넘어 10분도 못 걸을 정도였다. 코 앞 같던 맥도널드 간판마저도 아득하기만 하다. 외출은 포기다. 집에 있는 수돗물을 받아(나중에 알고 보니, 그 물은 요리하면 안 되는 물이었다) 냄비 한 솥에 끓이고서 미역을 들이부어, 한국에서 가져온 통조림 간장 꺳잎과 국으로 끼니를 때웠다. 철부지 귀염 녀석은 마냥 좋다고 자기 턱 밑에 붙은 미역을 깔깔대며 만지면서 잘 먹는다. 아이의 웃는 얼굴에 '힘을 내야지. 난 저 예쁜 생명체를 책임진 엄마다.'를 되내웠다. 

그렇게 텍사스에서 삶을 시작되었고, 6개월 넘게 적응만 겨우겨우 꾸역꾸역 해가면 지냈다. 남편은 유학 온 신입생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나 또한 진심 의지할 곳도 없었고 영어나 육아 등의 극도의 스트레스로 부부싸움은 다반사였다. 나 혼자 한국으로 와서 강의를 하면서 혼자 아들을 키우려면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했을 정도로 정말 최악의 관계와 상황 속에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옷장 안에 들어가 소리 내어 많이도 울었다. 나도 일을 하고 싶었고, 무언가 하고 싶었지만 영어만 봐도 울렁거려 구글링조차 하지 않았다. 마트에서조차 무시당하고, 3~4시간 아이가 데이케어(어린이집)에 다니게 됐을 때도 아이 선생님과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해 혼자 끙끙 앓았다. 


자유자재로 영어를 할 수 없으니, 일상생활이 불편했다. 휴스턴에 한국 대사관에서 여권을 연장하러 갔을 때조차 나는 찌그러진 양파 자루 마냥 잔뜩 기가 죽었다. 1년 넘게 영어로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없고 상호작용을 자신 있게 할 수 없으니 난 그렇게 자신감과 때론 똘끼 충만했던 젊은이에서 낯선 땅에서 풀 죽은 아줌마로 변해갔다. 남편과의 관계도 엉망이었던 터라 더더욱 나는 자존감마저 나락으로 떨어졌고, 우울감이 밀려왔다.


다행히 돌이켜보면 우울증은 아니었던 듯하다. 겉으로는 멀쩡한 일상생활과 죽고 싶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내 옆에 비슷한 처지의 좋은 그녀들(유학생 와이프이자 타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국의 엄마들)이 있었기에,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하다.


나의 영어 실력은 한국에서 학교에서 영어 수업 중. 고. 재수 포함 영어 8년과 대학에서 놀면서 몇 달 깔짝대며 본 토익 공부 3달 정도가 전부였다. 아침에 눈 뜨는 것도, 잠드는 것도 싫었던 그 시기의 나는 좋아하는 백지연 아니운서가 쓴 '크리티컬 매스'라는 책을 읽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 자정 나는 몇 년 만에 정지되었다. 나의 우울감과 비참함과 내가 피해자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나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백지연 아니운서는 내 인생의 두 가지 전환점을 주었다. 20살 때 뭣도 모르고 입학한 공대에 부적응으로 힘들던 시기에 재수라는 도전을 해 볼 수 있는 용기와 34살의 내게는 내 인생을 주인답게 굴며 살아가라는 개척 정신을 주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다 생각하기 나름이거든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른 겁니다.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백지연 <크리티컬 매스> 중 퀸시 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의 삶은 내가 원하지 않았기에 언제나 툴툴댔다. 내 선택이 아닌 길에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숨만 탁탁 막혔었다. 영어 한 마디 못해 먹고 싶은 메뉴도 주문 못하겠고, 아이 담임에게 부탁하고 싶은 내용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믿었었다.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하고.

그때 난 그럴 수밖에 없어서 감사하다 돌이켜보면

근데, 퀸시 존스의 말처럼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기 나름 달라진다. 나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땅의 삶이라는 기회를 얻었다. 의사소통은 원래 외국인이니까 완벽할 수 없다. 나는 나다. 나 박소현이야. 원래 너 유학하고 싶어 했잖아. 예전에. 그러니까 여기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나, 네가 좋아하는 수학을 새롭게 배워보는 거야. 


원래 꿈이 있었다. 영어권 나라에서 수학 교육 과정을 접해보고, 나중에 내가 응용해보는 것 말이다. 맞다. 나 결혼 전에 그리고 대학 졸업 때 미국, 캐나다 또는 호주에서 1년 정도 살거나 공부하고 싶었잖아. 내 주변의 불편한 상황들에 휩싸여 무너져 바보같이 잃어버렸다. 내 꿈을. 그리고 원래 밝고 씩씩하고 유머 감각 가득한 똘끼 충만한 나를... 그런 본래의 나를 찾을 거다. 그리고 강력한 믿음이 생겼다. 나의 소신 같은 믿음. 바로, 내 인생이라는 배의 노를 내가 저어가겠다고. 인생이라 내 맘대로 안 된다 지만, 적어도 내 꿈을 향해 매일 가보는 삶을 사는 게 내 삶의 소명이라고.  


그날 밤이 시작이었다. 내가 공부를 하게 된... 내 인생에서 가장 후졌던 나날들 중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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