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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enwitch Feb 07. 2016

이사

터를 옮긴다는 것

플라스틱수납장은 혼자 살아가는 일인분의 무게 보다 더 무거웠다.


그래서 혼자사는 사람의 짐도 둘이서 들어야 하나 보다.


터를 옮기다



흔히 이사가는 것을 가리켜 '터를 옮긴다'라고 한다. 터라 하면 땅일텐데 왜 터를 옮긴다고 할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사람의 짐을 옮긴다고 해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만큼 힘들다고 해서 '자리'..공간을 옮긴다고 한게 아닐까.


나무를 옮겨심는 일도 쉽진않다. 산성토양인지 알칼리토양인지도 봐야 하고 배수는 잘 되는지 빛은 잘 받을 수 있는지 세심하게  신경써야 한다.


나도 내 발뿌리를 묻을 땅을 찾느라 고심했다.  월세로 사는 원룸이라서 '땅'보다는 차리리 '화분'이란 표현이 나으리라.


원래 살던 집하고는 약 100미터도 안 된는 거리에 떨어진 신축이었다.


이삿집 센터를 이용하기 어정쩡한 상황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것이 여행가방으로 짐을 나르는 방법이었다.


살림을 하나 하나 옮기면서 물건이라고 생각했던 내 말없는 식솔들의 쓸쓸함을 보았다.


2년동안 나와 같이 나이를 먹은 흔적이 있는 녀석들..책,  밥솥, 수납장 그리고 프라이팬.



나는 태양과 바람과도 닮았다



나만 나이를 먹는게 아니라 내 식솔들도 나이를 먹었다.  같이 살면서 나이먹는 것도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도 닮는다.


프라이팬은 끊임없이 제 속을 게워내고 또 비워내며 날 먹였다. 난 어미새에게 먹이를 보채는 새끼새 처럼 부단히도 숟가락으로 바닥을 쪼아댔다.


내 물건 중 어떤 것은 칠이 벗겨지고 어떤것은 빛이 바랬다.  또 어떤것은 윤기를 잃어 탁해졌다.


두 해 동안 내가 물건들을 풍화시킨만큼 이 물건들도 날 풍화시켰을까? 그러고 보면 난 태양처럼 빛나지도 않고 바람처럼 가볍지는 않지만 풍화시킨 다는 점에서 태양과 바람을 닮은 듯하다.



혼자 사는 삶의 역학



2~3주 동안 난 여행용 가방에 내 살림을 부지런히 날랐다. 문제는 플라스틱 수납장 - 서랍을 다 비워도 혼자들고 옮기기엔 무리였다.


혼자쓰지만 혼자옮길 수 없는 무게였다. 혼자사는 삶의 무게와 혼자감당할 수 있는 일의 무게는 가끔씩 이렇게 어긋난다. 내가 만들지 않은 무게가 2년 동안의 이자같이 들볶는다.


그러던 와중 친구가 물어본다. 퇴근 시간 맞춰 와서 돕겠다고...


뜻밖의 감사함은 뭐라할지..

사람의 불완전함은 사람이 채운다.


쇼핑센터에서 늦게 저녁을 먹고 수납장을 옮겼다.  곰돌이가 그려진 녀석은 처음엔 정말 곰처럼 둔하게 움직였다.


문제의 수납장


두 사람이 옮기자 가뿐해지는 수납장이 기특하다 못해 신기하기 까지 했던 5분.

단순한 물리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흥과 감사한 마음이 수납장을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졸지에 두 집을 번갈아 가며 초대받은 친구는 따뜻한 차에 고마워 했다. 그 친구도 혼자 사는 삶의 무게를 지렛대 삼아 내가 가진 무게를 들었으리라.


차는 식었지만 밤은 그리 춥지 않았다.




1. Feb.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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