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노릇의 핵심 성과지표
"엄마, 나 합격했대~~" "우리 딸 축하해. 엄마는 그럴 줄 알았어. 엄마는 네가 합격한 것도 기쁘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더 예뻐. 네가 좋아하는 말린 가자미 요리해 먹자~" "오늘도 엄마의 요리는 신바람이 납니다. 식품건조기ㅇㅇ"
합격 소식을 전하며 흥분하는 딸과 그 소식에 감격하는 엄마의 대화가 담긴 광고가 지난 몇 달 동안 라디오에서 수시로 들려왔습니다. 하도 자주 나와서 멘트를 대충 외울 지경인 이 억지스러운 광고가 차 안과 집 오디오에서 나올 때마다 우리 가족은 식품건조기를 사야겠다는 굳은 결심보다는 주파수를 돌리거나 아예 라디오를 꺼버립니다. 그러면서 살짝 궁금해집니다. '혹시 아이가 합격한 집 사람들은 저 광고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대다수 대학의 정시 추가합격자 발표가 끝났습니다. 이로써 작년 11월에 수능시험을 본 63만여 명의 신분이 이제 딱 3 부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대학생, 재수생(혹은 N수생) 그리고 사회초년생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대학생이 된 신입생 중 약 6만 명에서 7만 명은 1학기만 다닌 후 다시 수능을 보는 반수생이 된다고 합니다. 고교 졸업생 중 71%가 대학을 진학하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대학 졸업장이 성공적 인생의 중요 변수로 강조되는 사회입니다. 그로부터 자유롭기란 부모도, 아이도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직장생활을 많이 하신 분들은 KPI를 잘 아실 것입니다. 핵심 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s, KPI)로서 조직이나 조직원들의 목표 달성 정도를 계량하는 지표로 사용됩니다. 연초에 세운 사업계획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했는지 평가할 때 판단기준이 되죠.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부모들, 특히 엄마들의 '자녀교육 KPI'는 대학입시 결과로 평가받는 듯합니다.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면 엄마 노릇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자녀가 입시에 실패하면 그것이 마치 엄마의 인사고과인 듯 침울해하고 속상해합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려니 아이들도, 부모들도 참 힘든 일입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간 무사히 잘 자라 준 아이에 대한 평가가 대학입시 결과 앞에 왜곡되거나 퇴색되어 버립니다. 얼마 전 남편의 대학동창이 자신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으로 아들의 서울대 합격증을 올려놓아 페친들과 지인들의 축하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친구들 사이에 과묵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는데, 아들의 서울대 합격은 대문사진으로 내걸 만큼 공개적으로 자랑하고 싶은 '가문의 영광'이었던 셈이죠. 한편, 아들을 재수까지 시켰는데도 올해 입시에서 원하는 대학 입학에 실패한 제 주변의 한 엄마는 지인들과의 연락을 끊고 현재 칩거 중입니다. '
응팔'의 정봉이처럼 3수를 넘어 N 수에 돌입한 집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자녀 대학 문제에 관한 한 섣불리 조언하기가 어렵습니다. 먼저 말하기 전에 대학 합격했냐고 물어보는 것도 '금기'에 가깝습니다. 아이가 대학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할 경우 부모의 고민이 깊어집니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만연된 학력차별과 인맥 중심사회의 현실을 조목조목 설명해주어야 할지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학벌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람이 되라고 격려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신이 부모에게 아이를 맡기신 뜻이 무엇일까요? 그들을 명문대 입학시키라고, 좋은 직장에 취직시키라고 맡기신 걸까요? 그것이 핵심 성과지표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행복한 아이, 자존감 있는 아이, 자기효능감이 충만한 아이'로 키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성장시키라는 미션이 더 클 것입니다. 문제는 그 KPI가 너무 '정성적'이라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측정하기가 애매합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가 일단 명문대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자기효능감도 높고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라 믿고 그때까지만 견디라고 말합니다. 한창 뛰어놀고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시기에 '나중'에 행복하기 위해 '지금'을 견디라고 말합니다. 남들 다 견디는데 너 혼자 즐기다가 나중에 땅을 친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합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일까요?
자고로 KPI가 정확하지 않으면 성과를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부모역할에 대한 정확한 KPI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마치 합격한 사람만 '말린 가자미 요리'를 해 먹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광고가 몇 달째 계속되는 우리 사회에서 부모들은 이제 새로운 요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개발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