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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삶 속에서 감지해야 할 신호

간절함이 보내는 신호

아주 가끔씩 꽂히는 드라마를 선별적으로 보는 저에게 tvN '시그널'은 최근 몇 년간 본 드라마 중 단연 최고입니다. 물론 제 기준에서 말입니다. 범죄물이나 스릴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시그널'은 특별합니다.

김원석 감독의 섬세한 연출, 김은희 작가의 탄탄한 대본, 김혜수, 조진웅, 이제훈이라는 뛰어난 배우들의 명연기가 어우러져 매회마다 가슴 먹먹한 감동을 전해줍니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실제 장기미제사건들을 모티브로 에피소드를 구성했기 때문에 매회 가볍게 넘길 사안이 하나도 없습니다. 과거로부터 2015년 현재로 무전이 온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드라마는 시종일관 우리 사회의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치밀하게 다룹니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 권력형 비리, 정경유착 같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시그널'의 부제는 '간절함이 보내온 신호'로 되어 있습니다. 무전으로 연결된 과거의 형사와 현재의 프로파일러가 진실을 밝히고 진범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판타지가 섞인 드라마 성격상 장기미제 사건 중 무전을 통해 주고받는 현재와 과거는 서로 영향을 미칩니다. 과거가 바뀌면 현재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2015년 백골사체로 발견된 주인공 형사의 과거를 바꿈으로써 현재의 그가 살아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현재는 과거로부터 비롯되었고, 과거가 바뀌면 현재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기에 그 누구도 이미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과거를 복기하고 과거로부터 배우면 현재에서 같은 실수나 실패를 줄일 수 있고, 과거를 망각하거나 과거의 상처를 그냥 덮어버리면 현재는 여전히 절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내가 했던 행동, 내가 했던 생각, 내가 했던 말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기에 앞으로의 나의 미래를 바꾸고 싶다면 지금 현재의 나를 바꿔라. 현재는 다가올 미래의 과거다. 그러니 이미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현재를 바꿈으로써 미래는 한번 바꿔보자.' 이것이 제가 드라마 '시그널'이 던진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 외에 개인적으로 수신한 메시지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과거가 보내는 '간절한 신호'를 놓치고 사는지도 모릅니다.'관성의 법칙'을 거스르고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산다는 것은지 않은 일입니다. 습관의 힘은 생각보다 무섭고 강합니다. 날마다 결심하지만 날마다 실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장기미제사건은 과거의 누군가가 포기했기에 장기미제로 남았다'는 드라마 속 주인공의 대사처럼 제 삶에 장기미제로 남아있는 실패한 결심들을 새 봄이 시작되는 3월에 다시 끄짐어내볼까합니다.


막장 드라마와 어설픈 억지 스토리가 판치는 요즘, 오래간만에 멋진 드라마를 만나 몇 주간 열심히 '덕질'을 했습니다. 믿을 만한 드라마 작가를 발견한 기쁨이 있었고, 좋아하는 배우들이 생겼습니다. 개인적으로 삶 속에서 민감하게 깨어있어야 할 '과거로부터의 시그널'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삶 속에서 '간절한 신호'를 감지하는 행복한 봄날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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