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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Nov 01. 2024

누구나 '변신'할 수 있는 세상

프란츠 카프카 『변신』


어린 시절, 나는 변신 로봇 만화에 열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 일본 애니메이션이었지만, 그 당시 우리 집 삼 남매는 국적 따위는 상관없었다. '마징가제트' '그랜다이저' '메칸더V' 에 환호를 보냈다. 위기 때마다 강력한 로봇으로 변신해 악당들을 무찌르는 모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후에는 히어로물의 영화 시리즈가 우리의 변신 열망을 자극했다. '원더우먼' '슈퍼맨' '배트맨'처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를 꿈꾸게 했다. 보자기를 둘러쓰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 일쑤였다. '변신'이라 하면 가장 먼저 '히어로'가 떠오르는 이유이다. 그런데 문학작품을 읽다 보면 전혀 다른 형태의 '변신'도 등장한다. Upgrade가 아닌 Downgrade로의 변신, 극한의 바닥까지 떨어지는 '변신'을 만나면 당혹스럽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191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변신』의 첫 문장이다. 이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도 첫 문장은 들어봤음직하다. 사람이 벌레로 변했다니, 꿈속에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왕자가 거지가 되기도 하고, 사람이 용이나 강아지로 바뀔 수도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가뿐하게 날아다닐 수도 있고, 외계인과의 접속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 잠에서 깨어나면 현실로 돌아온다. 그런데 카프카는 상식적이지 않은 전혀 다른 설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침에 불안한 잠에서 깨어나 보니 주인공이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버렸다. 사실주의 문학이 대세를 이루던 20세기 초반, 카프카의  『변신』은 문학계의 지형을 뒤흔든 일대 충격이었을 것이다. 카프카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길래, 이토록 초현실적인 작품을 구상했을까, 그의 배경이 궁금해진다.


"희망은 충분히, 무한히 많아. 다만 우리를 위한 희망이 아닐 뿐이야. "

카프카는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독일어가 모국어였지만 유대인이었고, 유대인이었지만 유대교 신앙은 없었다. 그는 인종적, 언어적, 종교적으로 그 어디에도 완벽하게 속할 수 없었다. 가부장적 폭력을 행사하는 권위적인 아버지와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 사이에서 늘 억압과 불안에 시달렸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그의 시선은 항상 문학에 가 있었다고 한다. 학위를 따고 난 뒤 들어간 첫 직장에서는 고된 회사 업무로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었다. 이후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 재해보험 공사’로 1908년에 이직한 후부터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 14년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었다.


노동자 재해보험 공사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무수히 많은 산재 피해자들을 목격한다. 산업사회의 부품처럼 혹사당하다가 폐기 처분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도했다. 인간 소외와 불안으로 점철된 세상의 부조리함을 일찌감치 간파할 수 있었다. 절친이었던 막스 브로트가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카프카는  “희망은 충분히, 무한히 많아. 다만 우리를 위한 희망이 아닐 뿐이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40세 이른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기 전에 브로트에게 자신의 원고를 모두 불태워달라고 부탁했지만, 카프카의 작품을 아끼고 사랑한 그 친구 덕분에 여러 작품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자의 죽음"

『변신』은 집안의 든든한 가장이자 기둥이었던 한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경제적 기능을 상실한 뒤, 가족들로부터 소외되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지난 5년간 하루도 어김없이 새벽 4시 30분이면 일어나  5시 첫 기차를 타고 거래처로 나갔던 영업사원 그레고르 잠자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시계가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황한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려고 하지만 달라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가 제시간에 기차를 타지 않자 득달같이 사무실에서 매니저가 찾아온다. 아무리 불러도 그레고르가 방에서 나오질 않고 이상한 소리만 들려오자, 매니저는 근무태도가 이렇게 태만하면 그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고 가족들에게 은근히 협박한다. 가족들은 안절부절못한다. 마침내 방문이 열리고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자 모두가 경악한다. 매니저는 놀라서 도망치듯 집을 떠난다.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 처음에는 가족들도 그를 불쌍히 여기고 여동생은 그의 방을 청소해 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태도가 바뀐다. 그의 변신으로 인해 가족이 불행해졌다고 여기고 그가 차라리 빨리 죽어버리거나 집을 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된다. 지금까지 잠자 덕분에 온 가족이 편안한 생활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가 자신들의 삶을 방해하는 존재라고 성가셔한다. 가족들의 마음을 알아차린 그는 절망한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던진 사과가 등껍질에 박힌 채 곪아가고 그레고르는 서서히 곡기를 끊은 채 죽어간다.


그레고르가 죽었다는 소식을 잠자 씨 부부와 딸은 가정부로부터 전해 듣는다. 아버지 잠자 씨는 “이제 우리는 신에게 감사할 수 있겠”다며 성호를 그었고, 세 여자도 따라 한다. 잠자 부부와 딸은 모처럼 외출을 하며 장래의 전망에 대해 논의한다. 그리고 그들이 관망해 보니 “장래가 암담하지만은 않다"라고 느낀다. 부부는 이제 그레고르를 대신해 딸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좋은 계획의 확증처럼 비쳤다 “라고 느낀다.


"변신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벌레가 된 상황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독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실직, 사업 실패, 질병, 사고, 노화 등으로 누구나 자신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끼는 순간이 올 수 있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생의 의지가 꺾이는 순간과 맞닥뜨릴 수 있다. 그럴때 달라지는 주위의 시선, 냉대, 고독 등을 그레고르 처럼 느낄 수 있다. 가족들의 비정한 모습을 보면서 과연 누가 나와 내 가족은 다르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히어로물을 보며 파워 변신을 꿈꾸었다면, 이제는 닥쳐 올 그 어떤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지혜로운 변신을 꿈꾸게 되었다. 예측 불허의 험한 세상에서 삶의 존엄을 지키는 일은 점점 더 중요한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그레고르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변신』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 소외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고. 어떤 극한 상황에서라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을 수 있느냐고.100년도 더 지난 소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여전히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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