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양검명 선생님'까지 소환하지 않아도 요즘 말로 하면 국룰, 폭싹 속았수다식 표현에 의하면 응당 마땅 고도리인 약속들은 어디에나 있다.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섰을 때 그 자리에 앉게 되는 사람은 눈치껏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 혹여 착한 마음씨의 누군가가 어린 아이나 노약자에게 선의로 양보해주는 건 오케이. 이때 누군가 시간차 공격으로 갑자기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밀치고 들어온다거나 가방을 던져 자리에 앉게 되면 엄청난 눈초리를 받게 된다는 것. 같은 것들이다.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임산부 배려석과 노약자 석은 비워 두는 것이 기본적인 사회적 센스이며 시민들이 가져야 하는 의식이라고 배우고 익힌다.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에 파리가 빠져 있다면? 파리만 건져서 다시 주는 것이 아니라, 다시 조리를 해서 갖다 주어야 하는 것, 잘못을 했을 땐 사과하고 미안함을 전하고 피치 못할 상황에서는 양해를 구하는 것.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믿는 "상식"이라는 것들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요즘은 사과하는 사람이 없어"
언제부터인가 사과하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어졌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옛 속담이 무색하게 사과의 행위가 마치 자존심과 자신감에 큰 스크래치를 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건지, 아니면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오히려 날을 세우고 도리어 역정을 내는 일들이 벌어진다. 서로 억울해한다. 사과하세요!라고 말하는 사람과 사과를 하기 싫은 사람 간의 맞기세로 일들은 점점 커진다.
그러다가 애미 애비가 소환되고 경찰을 부르고 의사가 나오고 변호사를 대동한다. 평소에 연락하지도 않는 온갖 사돈의 팔촌까지의 인맥이 동원된다.
애초에 '죄송합니다.' 한마디면 되는 거였는데...
회사에도 학교에도 길거리에도 긴장감을 떨 출수가 없다. 다들 가슴에 시한폭탄 하나씩을 안고 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더욱 외로워지고 고립되어 간다. 남들과의 이런 실랑이 조차 하기 싫은 사람들은 자리를 피하고 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욱 큰 목소리를 낸다.
모든 사람들의 아량의 크기가 같을 수 없고 이해의 범위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는 상황은 순간마다 일어난다. 이런 쉽지 않은 일상에서 어떻게 생존방법은?
결국 인생은 끝없는 자기 자신과의 합리화의 여정이다
내가 받기 원하는 만큼 남에게 해주는 것.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질 것. 내가 나를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고 다독여야 한다. 기꺼이 사과하고 또한 사과를 받아 주는 마음으로 유연해지길.
이 정도의 친절함만으로도 '화'의 총량이 조금은 감소하지 않을까 희망해 보기.
새해에는 화를 조금 덜 내자 를 목표로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제일 먼저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이도 저도 안되면 손바닥으로 마른세수 한 세 번 하고 화장실에서 욕 한번 하는 것까지 옵션에 넣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