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어스 #한달자기발견 #30일글쓰기
나는 지금 퇴사를 앞두고, '나만의 콘텐츠'를 찾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보진 못했다. 이유는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동기보다 더 큰 동기들을 내 삶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상처받지 않겠다
할머니는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날 밤 내가 할머니와 함께 빚쟁이들과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무서운 아저씨들은 어김없이 늦은 밤에 우리 집에 찾아왔다. 할머니는 모르는 척 자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우리 집의 실질적인 가장으로 그들에게 맞섰다. 사실 맞섰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할머니는 울고 불고 난리를 칠 뿐이었다. "우리 집 꼴을 보이소.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애들도 있는데 제발 가주이소." 나는 밤새 무서움에 오들오들 떨었다. 새벽까지 빚쟁이들과 씨름한 할머니는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날 선 말을 나에게 쏟아부었다. "니는 할머니가 밖에서 아저씨들이랑 싸우고 있는데 나와보지도 않나? 니는 진짜 이기적이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을 뿐이었는데... 할머니는 어린 내가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주길 바랐던 것일까? 나라도 할머니 곁을 지켜주길 바랐던 것일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고모들이 나를 불렀다. 나는 '그동안 힘들었지? 수고했다'라는 말을 기대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화들이 오갔다.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실업계 고등학교로 가서 하루빨리 취업을 하라는 것. 이유는 본인들은 더 이상 나와 내 동생을 도울 수 없으니 대학 등록금만큼은 너희들이 책임지라는 것. 그분들은 내가 신데렐라나 콩쥐처럼 형제를 위해 희생하는 착한 조카가 되어주길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삶도 이미 바닥이었기에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헌신을 강요하는 이들에게 더 반발심이 생길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진심을 담아 또박또박 편지를 써서 보냈다. 나를 믿어달라고, 내 인생을 믿어달라고, 나를 포기하지 말고 도와주면 꼭 성공하겠다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모들은 그런 나에게 실망했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인 줄 몰랐다나?
나의 21살 이전의 기억은 온통 이 마음으로 똘똘 뭉쳐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더 이상 희생하고 싶지 않아' 이 마음은 나를 굉장히 예민하고 공격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고 밖을 주시했다. 혹여나 나를 공격하거나 오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시 돋친 말로 반격했다. "나에게 상처 주지 마!!" 나는 나를 지키고 변호하는 것에 온 에너지를 쏟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향해 계속해서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테니까. 피해의식에 사로 잡힌 나는 여전히 상처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사랑받고 싶어
21살,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엄마에게 받지 못했던 무한 사랑과 신뢰를 원했지만 엄마는 함께 살기 무섭게 나에게 이런저런 당부를 쏟아냈다. '조심히 행동해야 된다. 말조심, 행동 조심.' 엄마는 혹여나 내가 이혼가정, 조손가정에서 자란 티가 날까 봐, 그래서 편견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내 모습도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리고 과도하게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엄마에게도 화가 났다. 사실 내가 이렇게 된 건 7살밖에 되지 않은 나를 버리고 떠난 엄마의 탓도 있었으니까.
엄마는 그날도 나에게 '이렇게 하지 마라, 저렇게 하지 마라'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날따라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엄마에게 참다 참다 화를 냈다. "엄마 눈에는 내가 문제아처럼 보이지? 잘못한 거밖에 안 보이지?! 그냥 나 좀 믿어달라고!" 엄마는 말대꾸를 하며 반항적인 나에게 더 크게 화를 냈다. 나는 점점 이성을 잃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엄마가 뭔데! 나 버리고 떠난 주제에 왜 이제 와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데!" 그동안 내 속에 곪고 있던 상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안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았던 엄마는 더 큰 소리로 화를 내며 꺼억꺼억 울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 일을 지금 와서 꺼내는 이유가 뭐냐며, 옛날 일을 핑계 삼아 왜 자신을 공격하냐며. 엄마 또한 여전히 상처에 허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그리워했던 엄마도, 내가 그렇게 원망했던 엄마도 사실은 나와 같이 똑같이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팠던 사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지금도 여전히 아픔 가운데 있는 사람은 누구도 위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에 나를 책임지려 노력했다. 함께 살지 못한 지난날에 대한 죄책감으로 없는 살림에도 최대한 나를 위해 헌신했다. 자신의 마음은 구멍이 난 채로 오래 방치되어 있음에도 딸의 인생만큼은 자신처럼 망가지면 안 된다는 강한 의지로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서툴렀던 엄마의 사랑이 느껴졌다. 너무나 크고 깊어 내가 감히 느낄 수조차 없던 사랑. 나는 엄마를 꼭 껴안아 주었고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은 어느새 ‘나는 이미 사랑받고 있어’로 바뀌어있었다.
나답게 살고 싶어
폭풍과도 같았던 나의 청춘은 결혼과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남편은,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해주었다. 나는 언제나 경계 태세였는데 남편은 언제나 평온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처음엔 ‘아무리 그런 사람일지라도 내가 잘못하면 나를 떠날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하지만 남편은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좁은 강물이 아니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넓은 바다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남편의 품에서 어린아이 마냥 웃고 울고 또 웃으며 점점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상처와 애정에 목마를 때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나, 창의적이고 호기심이 많으며 경험한 것은 나만의 것으로 흡수하는 적응력이 좋은 나. 그런 나를 알게 되니 나는 지금 처한 현실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겪었던 일들을 그저 과거로 끝내지 않고, 그 경험을 살려 누군가를 위한 콘텐츠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과감히 퇴사를 결정했다. 나만의 것을 찾고 싶고 발전시키고 싶은데 이런 마음을 품고 회사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만약에 어릴 때의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왔다면 나는 결코 안정된 루트를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 루트에서 도태될까 불안해하며 나를 더 채찍질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상처에 허덕이지 않는다. 또 누군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나를 포장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되었다. 나로서 살기 위해 나답지 않은 것은 버릴 줄 아는 제법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이 모두가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인 것을
아픔도 슬픔도 결핍도 상처도 그냥 그대로 두면 나를 찌르는 장애물이 되지만, 오히려 그것이 동기가 되어 나를 더 성장시키면 그 장애물은 장미의 꽃잎을 더 돋보이게 하는 가시(장식품)가 된다. 내가 만약 이 여정들을 지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개성 없는 무색무취의 조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내 인생을 값지게 만들어 주었고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모두 사랑하게 되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사랑받고 싶어!
나답게 살고 싶어!
이 모두는 다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