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어스 #한달자기발견 #30일글쓰기 #메타인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모순(矛盾)'은 창과 방패라는 뜻으로,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유래는 전국시대 초나라에 있던 무기 상인으로부터였다. 그는 시장에서 창과 방패를 팔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이 방패를 보십시오! 아주 견고해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창은 정말 예리합니다. 어떤 방패도 한 번에 뚫어버립니다!" 그러자 구경하던 사람 중 어떤 이가 물었다. "방금 말한 그 창으로 조금 전에 말한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무기 상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피해버렸다. 상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창과 방패 중 하나를 포기하던지, 둘 중 하나가 더 우수하다고 말해야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무기를 성공적으로 팔고 싶다는 욕심에 그만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이 모순의 예를 오늘날로 가져오면 바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일 것이다. 어느 누가 내로남불하는 사람을 좋아할까? 남이 보면 불륜인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잘못된 행동임이 눈에 빤히 보이는데도, 왜 자신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할까? 답답할 노릇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선 이 모순을 잘 파악하지만 스스로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한다. 물론 나 또한 그랬던 적이 있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 일어나는 일
남편과 결혼을 하고 나서 약 1년 동안은 정말 많이 싸웠다. 신혼부부의 주된 싸움 이유인 '치약을 어디서 짜서 쓰는지', '설거지는 언제 하는지'와 같은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 부부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성향이 매우 달랐다는 것이었다. 사실 정치적 입장 차이는 선거철이 아니고서는 크게 부각되진 않는다. 우리도 결혼 전에는 서로의 정치 성향을 알고 있음에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터진 코로나는 이 입장 차이를 수면 위로 드러나게 만들었다.
우리는 사역자(교회에서 일하는 전도사, 목사 등) 부부여서 매주 교회에 출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교회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회발 코로나, 교회에 대한 정부의 방역지침 등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었는데,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달랐다. 남편은 방역지침을 잘 지키는 교회가 있음에도 정부가 모든 교회를 대상으로 강압적으로 제제하고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부분도 있지만 종교시설이기에 더 그 잣대가 엄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듣는 설교는 이 갈등을 부추겼다. 담임 목사님은 꽤 보수적인 분이셨기에 정부의 방역지침을 과도하게 비판했고, 나는 그런 목사님이 불편했다. 목사님과 방역지침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가 아니라 왜 설교 시간에 내가 목사님의 정치적 입장을 듣고 있어야 하냐가 주된 갈등이었다. 주일 사역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우리 부부는 이 주제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감정을 말하는 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토론의 장이 되고 있었다. 남편도 지쳤고, 나도 지쳤다. 우리 부부는 도저히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비판적인 사람을 싫어하는 내가 사실은 비판적인 사람
계속된 갈등에 지쳐가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대뜸 나에게 말했다. "자기는 지나치게 강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을 싫어하지? 하지만 그거 알아? 자기한테도 그런 모습이 있어." 순간 기분이 상해 버렸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안에 강압적이고 비판적인 모습이 있기에, 그런 모습을 가진 사람이 내 눈엔 너무 쉽게 보였던 것이다. 그 사람의 자만심과 오만함이 내 안에도 있었기에 그 내면의 모습까지 내가 속속들이 알고 비판했던 것이다. 그제서야 나에게 이 싸움을 끝낼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방역지침에 대한 정치적 입장 차이'라는 전제 뒤에 숨어 나를 방어하고 변호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 의견에 공감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화를 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평소엔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나를 향한 지지를 멈추지 않는 남편이 유독 이 주제만 나오면 내 의견에 반박을 하니 나도 모르게 공격 본능이 발동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렇게 인정을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남편에게 너무 서운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모순된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만 생각하면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창피하다.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 전, 메타인지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었다. 메타인지는 쉽게 말해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한다. 메타인지 능력이 발달 될수록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계획을 내릴 수 있고, 그 계획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수정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런 장점 탓에 메타인지는 주로 교육 분야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나는 메타인지를 교육 분야뿐만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아야 개선할 수 있고,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이 무엇인지 알아야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고, 내가 잘 알고 잘 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알아야 그 부분을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신혼 초 때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나를 돌아보지 못했다면 우리 부부의 싸움은 지금까지 지속됐을 지도 모른다. (더 심하면 이혼까지 했을지도...) 하지만 갈등의 초절정에서 남편은 나에게 아프지만 도움이 되는 통찰을 주었고 나는 이를 받아들이고 수용했다.
사실 이 부분은 신혼 때뿐만 아니라 내 평생에 걸쳐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지나치게 권위적이거나 비판적인 사람을 극도로 싫어했다. 이유는 그런 사람들로인해 공동체의 연합과 평화가 깨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피하거나 무시하거나 때로는 공격하기도 했는데, 그런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어색해하고 힘들어 하기도 했다.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비판적인 사람을 싫어했는데, 그런 사람을 비판하는 나로 인해 또 다시 공동체의 평화가 깨지다니... 참 이렇게나 나는 나 자신을 모르고 있었다.
갈등이 없으면 평화도 없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칭찬을 해주고 싶은 것은 그런 갈등의 시간, 자책하는 시간을 잘 지나왔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비판적인 사람이 싫다고만 생각하고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면, 주변 사람들은 나에 대해 아무런 피드백도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드러내지 못한 내 마음은 답답함에 시들시들해졌을 것이고, 나중엔 내 마음이 왜 아픈지, 왜 불편한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툴렀던 나는 이를 드러냈고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은 있었지만 잘 성장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여전히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잠언 27:17) 글 처음에 나온 무기상인이 만약 자신의 창과 방패를 자랑하지 않았다면, 지나가던 행인에게 뼈 아픈 쓴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고,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모순'이라는 단어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사람으로 단련되고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등꼴이 오싹해질 정도로 민망한 순간,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정도로 화가 나는 순간, 모든 인연을 끊고 도망가버리고 싶은 자책의 순간을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런 순간들은 우리 삶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