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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deer Dec 12. 2019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2019-12-11

만화 <허니와 클로버>의 주인공은 12월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크리스마스가 달갑지 않다. "색색으로 깜빡이는 이 전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서. '넌 지금 행복하냐? 네가 있을 자리는 있냐?'고 누군가 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추운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이 나라의 수능시험 역시 국어나 수학 문제만 묻지 않는다. 연말 거리의 반짝거리는 전구들처럼 따지듯이 묻는다, 넌 고교 시절 이것저것 꾹 잘 참았냐? 이 사회에 네가 있을 자리는 있냐? 너는 일 년 동안 뭘 한 거니? p.73.


12월 하고도 열흘이 더 지났네. 이것이 얼마 만에 쓰는 것인가를 따져봐야 기억 안 날 것이 뻔하므로 패스. 반백수로 지낸 지 어느덧 2개월이 다 되어가고, 그 와중에도 여전히 새벽이면 배가 극심하게 고프고, 내일은 뭐 먹을까를 고민하며,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아침에 프렌치토스트를 먹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눈뜨자마자 세수도 하지 않고 편의점으로 달려가 우유를 사 왔다. 레시피랄것도 없지만, 오랜만이고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세상의 모든 달걀 요리>를 괜히 한번 들춰보기까지 했다. 무염버터가 없어서 소금을 넣지 않고 달걀을 풀고 우유를 넣어 식빵을 푹 담가놨다가 노릇노릇하게 굽고, 시럽과 레몬 껍질을 약간 뿌려 마무리. 맛있게 먹었네. 수수가 방해하는 바람에 허겁지겁 먹던 것도 차분해졌다. 책도 펼쳤지만 몇 자 읽지는 못했다. 그리고는 자매님이 들러 커피를 마시고, 엄마 옷 사이즈를 교환하고, 머리를 다듬고, 옥수수 동물병원에 수수보리 예방접종을 위해 타다를 타고 왔다 갔다 하고(그나저나 타다가 없어지면 정말로 곤란한데), 집으로 오자마자 그리니파이에서 온 화분이며 알라딘에서 온 책이며 펫프렌즈에서 온 모래와 간식 택배를 정리한 후, 마포중앙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헥헥. 땀을 뽈뽈 흘리며 후다닥 뛰어가 간신히 시작하기 직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 고른 책의 저자인 김영민 교수님의 강연에. 강연의 제목은 책 제목을 살짝 바꾼 '아침에는 새해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였다.


아이유나 유희열과의 만남, 유시민과 홍준표와의 토크쇼, 광고 출연의 기회(?)까지 싹 다 마다했다는 이야기로 촬영 금지 요청에 대한 이유를 밝히며 시작한 교수님의 강연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물론 수줍음이 많은 교수님의 초상권을 지켜드리기 위해, 혹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촬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사인회 미운영 사전 공지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을 가져갔는데, 역시나 사인을 못 받은 것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그런 것 마저도 너무나 교수님 스타일이라는 생각을 했네. 교수님의 이야기는 잘린 자기 목을 들고 걸어간 순교자 생 드니(Saint Denis)부터 성장 영화 <Stand By Me>, 타투 화무십일홍과 가화만사성, 클로즈업과 익스트림 롱 샷, 전도연 닮은꼴, 마포구 주민, 새 책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의 촉감이 너무 좋다는 것 등으로 이어졌고 나는 훌륭한 마포구 주민답게 중간에 절대 조는 일 없이 내내 흐흐 웃다가 나왔다. 목이 너무 말라서 어지러웠던 것만 제외하면 아주 흡족한 강연이었다. 아, 엘리베이터 앞에서 출판사 어크로스 편집자이자 인스타그램 친구인 분이 먼저 알아보고 인사해주셔서 그것도 반가웠네.


...음, 여기까지 쓰고 보니 밀린 방학 일기라도 쓰는 어린이 같군. 사실 그동안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다 날아가버렸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이도 그렇지만 황용식이 너무나 부러웠던 -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사랑할 수 있어요? - 얘기라든가, 김애란의 산문 <잊기 좋은 이름>을 읽다가 깨달음을 - 나는 작가는 못 될 거야 - 얻은 거라든가, 카라 시민학교에서 고양이들에 대해 배우면서 느꼈던 거라든가, 에디터라는 직업에 대한 고찰이라든가, 이 사람과 저 사람에 대한 '상념'이라든가... 남자와 여자, 실패와 좌절, 고독, 계절, 그리고 시간이라든가. 시간. 그래서 오늘은 이랬네 저랬네 하는 소리나 쓰고 있다. 뭐, 아무거나 쓰자. 메모라도 하자.


메모장이라고 생각하니 더 마음이 편해지는군.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으면서도 다른 많은 책처럼 여러 가지 '가지'를 마치 땔감처럼 주워 모을 수 있었는데, 무작위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스가 아스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소공녀>. 김진태 만화 <보글보글>. 플라톤 <국가>. <런던 리뷰 오브 북스>와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그런데 이 땔감들은 언제 다 태워보나, 그나저나 나는 왜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바쁘고 피곤한가, 왜 일도 사랑도 뭐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숨만 쉬고 있나, 이게 사는 건가, 이러다 죽는 건가, 그러니까 연말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새해란 무엇인가. 하하.


그리하여 나는, 2018년이라는 평행우주에서 야구 선수로 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생각하겠다. 새해에 쏟아져 내리는 눈송이들은, 모래시계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시간의 입자가 아니라, 살고 싶었으나 끝내 살지 못했던 삶을 대신 살아주는 또 다른 내가 때려낸 홈런들이라고 생각하겠다. 평행 우주의 펜스를 넘어온 장외 홈런들이라고 생각하겠다. 이것이 내가 올 한 해를 계획하는 방식이니, 시간이여, 또 한 해치를 쏟아부어라. 그리고 2018년 연말의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올 한 해가 불행하지 않았다고. (2017.12.31) 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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