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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deer Mar 01. 2020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2020-02-29

말하자면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도 열심히 사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 건 안다. 내 삶이 뭘 하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포르쉐의 신형 911 발표회 같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그러면 어때. 내 일을 잘 해냈을 때의 외적 보상과 내적 만족이 있다. 일이 궤도에 올랐을 때 잠깐씩 느껴지는 즐거움도 있다. 더 나아가 직업의 특성상 내 일을 잘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거나 그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도 있다. 이거면 된 거 아닌가. 이 도시의 핫 100에서 내가 몇 위인지는 내게 큰 상관이 없다. p.11.


서랍에는 또 저장해 둔 '책과 아침'이 한가득이다. <이제야 언니에게>와 <사냥꾼들>, 그리고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까지. 특히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은 번역된 책 제목부터 괜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 것 같아 마음이 쿵쾅거렸는데 심지어 원제는 <Don't Save Anything>이라서 혼자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매일 9호선 '지옥철'을 타고 출근해 9 to 6로 일하는 생활을 3주, 그 사이에 '알바'를 - 편의점이나 배달이나 대리 운전 알바는 아니다. 편의점 알바는 나 같이 산수도 못하는 저질 체력의 30대 후반 여자를 써줄 것 같지도 않고, 배달은 도보로 '배민 커넥트' 같은 거 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해봤지만 아직 시도는 못 했고, 대리 운전은 뭐 장롱면허라 이하 생략. - 하느라 살짝 피곤하긴 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잘 적응하고 있었고 적당히 안온한 일상인 듯 보였으나... 코로나 19 때문에 이번 주 월요일부터는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종이로 가득한 비좁은 책상에 회사 노트북과 개인 노트북 두 대를 펼쳐놓고 번갈아 가며 일하는 척하고 그 중간에 꼬박꼬박 밥 챙겨 먹고 하느라 분주했다. 아, 주간 회의를 구글 Hangout Meet로 진행했는데 - 다들 카메라는 끄고 - 생각보다 매끄러워서 깜짝 놀랐다. 옛날에 카메라 달아놓고 화상 채팅하던 거 생각한 거야 뭐야. 하여간 약간의 충격을 받은 후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신여성은 '눈팅'만 하고 있던 생산성 앱을 바로 깔고 결제도 해두었다. 내가 또 돈 쓰는 건 일등이지. 잡동사니로 가득 찬 서랍과 한 손으로 꼽아도 남는 일기에 대한 변명이 이렇게 구질구질하다.


얼마 전부터 저자인(#jojada) 박찬용 에디터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었다. <잡지의 사생활>을 밑줄까지 쳐가며 읽은 후다. 교과서나 참고서 말고는 책에 밑줄을 긋는 일이 잘 없는데, 괜히 그러고 싶은 책이었다. 에디터의 일에 대해 아마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에(그게... 이번 겨울 방학부터였나 보다, 허허) 읽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에디터라는 직업을 설명할 때라든가(생각보다 자주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번에 새로 출근한 회사에서도 그랬다), 에디터로서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남몰래 웃고 울며 곱씹을 때(?)도 좋은 책이다. 매거진 B에서 나온 <잡스-에디터>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이 책을 고를 것이다. 실제로 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할 때 갈등하다가 <잡지의 사생활>만 장바구니에 담았고, 선택에 후회는 없다. 아무튼 또 잡소리가 길었는데, 그런 책의 저자인 그가 새 책을 낸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됐고 나오자마자 주문했다. 오늘 아침에 받자마자 삼분의 일쯤 읽었고, 역시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꼬꼬마 시절, 디자인 잡지 에디터였을 때에 박찬용 에디터와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박찬용 에디터가 여행 잡지사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오래전 일이라 - 찾아보니 2010년, 그러니까 벌써 10년 전 일이네. - 기억 못 하겠지만, 내게는 증거물이 남아있다! 실은 에디터와 일러스트레이터 간의 협업 관계를 다룬 기사 때문에 간단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던 것. 고맙게도 친절하게 답변을 작성해주고, 잡지도 촬영용으로 넉넉하게 보내줬던 기억이 난다. 아, 그러고 보니 그 꼭지에 황민영 뷰티 에디터도 김민정 시인도 참여했었네. 4개 잡지가 들어갔는데, 그중 1개만 남고 모두 폐간됐다. 물론 그때 박찬용 에디터가 보내준 잡지들은 지금 내 책장에 잘 꽂혀 있다. 내 눈에는 지금 봐도 잘 만든 책들이다.


이 책 앞부분에서 나는 또 밑줄을 칠까 말까 고민했다. 무슨 명언이 쏟아져서가 아니라, 심하게 공감한 나머지 그런 마음이 들었다. 특히 '글쓰기를 좋아하세요?'와 '더 나빠지기 전에 헬로라이프', '왜 나는 잡지계로 돌아왔는가'라는 글을 읽으면서는, 하, 정말 '내 얘긴 줄'! 그래도 여러모로 나보다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절대 그의 실력이나 노력을 폄하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인걸. 한편으로 내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나는 고통이 두렵고 실패가 두렵다. 누구도 나를 찾지 않을 먼 미래의 어느 날이 막연하게 두렵다. 언젠가 분명 찾아올 치통과 근육통 같은 건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서 더 두렵다. 밤하늘처럼 내 사방에 깔린 어두움을 잠깐이라도 잊기 위해서 허공 같은 워드프로세서 창에 온갖 글자들을 채워 넣는다. 열정이 아니라 공포와 불안이 이끄는 삶이다. p.45. 나만 그런 건 아니었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제프리(박찬용 에디터가 맨해튼의 벼룩시장에서 만난 전직 에디터)가 잘 지내는지가 중요해진 것처럼, 내게도 박찬용 에디터가 잘 지내는지가 중요해질 것 같다. 게다가 직접 만난 적은 없어서 몰랐는데, 책날개의 소개를 보니 나랑 동갑이었네. 그러고 보니 매거진 B의 손현 에디터도 동갑이었던 것 같은데. 뭐 그렇다고... 꿀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가끔 즐거울 수 있다. 그 즐거움이 삶의 꽤 큰 영양분이 된다. 나는 원고 생산직에 있으며 이 교훈을 배웠다. 원고에 대한 쾌감은 직업으로 원고를 만들지 않았다면 아예 못 느꼈을 것이다. 난 포기가 빠르고 하기 싫은 건 안 하는 성격이니까. 이제 정말 거의 다 했다. 손가락만 까딱거렸는데도 원고를 쓰고 나면 배가 고프다. 밥 먹으러 가야지.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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