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

2025-03-04

by a little deer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플로렌스가 행복해했으면, 그녀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알았으면. 프레디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고인을 어릴 때부터 봐온 랍비가 플로렌스의 카리스마와 용기를 칭송했다. 플로렌스의 제일 친한 친구가 졸업 앨범에 적은 심금을 울리는 글을 낭독했다. "인생이 때론 힘들어 보이지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듯 정말 단순하다. 분노로 가슴을 찢어 젖히고 겸손함으로 자존심을 부수라. 운명이 정해준 사람이 되지 말고, 당신이 바라는 사람이 돼라. 감정에 충실하라. 당신은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다. 그 사랑을 받으라."p.193.


첫 문장을 읽을 때부터 썩 잘 고른 책은 아니라고 인정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점심 약속에 한 시간 넘게 늦는 상대방을 기다리면서 읽기에는 충분했다. 점심 약속 덕분에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휘날리는 날씨에도 침대 밖으로 기어 나올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대로 늦는 상대방이 하나도 밉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차분하게 책을 읽으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생겨 좋았다.


사실 굉장히 매력적인 제목(everything I know about love)에 비해 내용이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잔뜩 지나온 청춘의 일기라 그런가. 몇 년만 어렸더라도 달랐으려나! 어제 딸기와 아침부터 만나 오스카 시상식 중계를 보면서 - 이제는 일종의 우리만의 명절 같은 리추얼이 되었다 - 데미 무어가 여우주연상을 받지 못한 것에 실망했는데, 그리고 또 이제 3월이니 진짜 올해 마지막 시작(아주 이상한 표현이지마는)이고, 그러다 보니 나이 얘기도 하고, 우리가 몇 살인지 정확히 따져보다가, 순간 당황스러웠고,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이제 정.말.로 청춘 따위는 지나가버린 것이다. 뭐 그런 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있었다. 어찌어찌 밥벌이를 해가며 근근이 살아가는 동시대 여자 사람으로서 희미한 공통점 같은 것을 찾아 공감하기도 했다. 다 떠나서 너무나 솔직하게 써둔 그녀의 수다가 부러웠다. 이렇게까지 쓸 수 있는 건데, 이런 것도 쓸 수 있는 건데. 온갖 핑계로 기록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뭐든 써야지 하면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약간의 본보기가 되기도. 참, 내가 다니는 테니스 아카데미 회원 중 한 명이 바로 <그 해 우리는>, <멜로무비> 이나은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주에 또 혼자 동굴을 파고 땅밑으로 들어가던 날 <멜로무비>를 정주행 했다. 귀여우면서도 묵직하고 꽤 좋았더랬다. 그리고 부러웠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생각만 하면서 벌써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어버렸네. 진짜, 제발, 쫌!


그런 얘기를 했더니 이실장이 꿈을 잃지 말라, 고 해줬다. 그 말이 아니더라도 오늘 점심 약속은 나름대로 의미 있었다. 새로운 제안을 받았고,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생겼다.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백수의 나날이지만, 자꾸만 눕고 싶어지는 나이지만, 통장 잔고가 심히 걱정되는 시기지만,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처럼 '전체는 되는대로 느슨하게 하루하루는 충실하게' 보내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하루에 100%를 쏟아붓는 것은 아니다. 또 어디서 주워들은 것처럼 '너무 애쓰다 방전되지 않기' 위해서. 다그치는 나와 다독이는 내가 힘겨루기 하는 상황. 우습지만 나름 매일 진지하게 열심히 싸운다.


그러니까, 되도록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려고 하고, 잘 씻고 바르고 입으려고 하고, 골고루 먹으려고 하고, 헬스장에 가고, 러닝도 하고(발표 아니 별표 : 5월에 10km 뛰어야 한다), 테니스도 치고, 이런저런 하고 싶은 일들도 그때그때 해보려 기웃거리고. 특히 하루 한 번 운동과 스픽 앱으로 영어 스피킹 하는 것은(56일째 불꽃을 유지하고 있다!) 나름의 루틴이 되었다. 좋아, 잘하고 있어. 지루하고 건강한 삶. 아니 '건강하고 긴 삶'.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노래가 갑자기 생각났다.


<건강하고 긴 삶>

저수지엔 개들이 있구요
달에는 사람이 있어요
밥솥엔 콩밥이 있구요
맘에는 노래가 있어요

밤에는 그리움이 있구요
나에겐 아직 시간이 많아요
내 시계는 방수가 안되구요
내 기타는 rock n roll

저수지엔 개들이 있구요
달에는 사람이 있어요
밤에는 그리움이 있구요
나에겐 아직 시간이 많아요


참고로 요즘 맘에 있는 노래는 나얼의 <바람기억>.


난 커서 뭐가 될까 아직도 궁금하다. 아직도 아무것도 되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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