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2018-06-03

by a little deer
날마다 작은 기쁨들을 될 수 있으면 많이 경험하고, 좀 더 거창하고 노력이 들어가는 즐거움은 아껴두었다가 휴가 때나 좋은 날 나눠서 맛보라. 시간이 부족하고 재미가 없어서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것을 권하고 싶다. 일상적으로 구원을 받고 짐을 벗고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 아니라 작은 기쁨이 필요하다. p.74.


덥다. 자매님과 제부가 아침에 잠깐 들러 가져다준 덕분에 올여름 첫 수박을 먹었다. 수수와 보리와 나눠 먹었는데, 수수가 특히 좋아한다. 어제는 멍하게 하루를 낭비했으니 오늘은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해야지. 긴 샤워까지 마친 후, 저녁 약속이 생겨서 나갔다 왔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걸어오면서 연남동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동생은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마침 근처에 그런 집이 있어 얼마 전부터 눈여겨봐 두었는데 우연히 공시지가를 보고 깜짝 놀라 웃어버렸다고 한다. 10억. 그래, 너나 나나 지금은 그냥 웃을 수밖에 없지 뭐. 하지만 사실은 나도, 아무도 몰래 혼자서 꿈꿔보곤 한다. 코딱지만큼 작아도 좋으니 마당과 정원이 있는 집. 그 꿈에서는 수수와 보리가 - 운이 좋으면 멍멍이도 - 바깥공기를 쐬러 나가고, 그 뒤를 아이가 졸졸 따라다니고, 그걸 보며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보거나 할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있고, 다정한 남편도 있지. - 아무도 비웃지 마시라, 그리고 아무런 말도 보태지 마시라, 이건 내 꿈이니까! - 알고 보면 무척 오래된 꿈.


물론 내 조그만 방구석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도 나쁘지는 않다.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여길 일이 더 많지. 내일은, 내년에는 또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 점점 기쁨보다는 슬픔이 많아진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지나가 버리고 결국 우주의 먼지일 뿐이라도. '인생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 슬픈 일들이 있다. 그래도 때때로 꿈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충족되는 가운데 찾아오는 행복이 있다. 그 행복이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해도 그런대로 괜찮을 것이다. p.142.' 오늘은 부드러운 밤이라서 낙천적인 사람이 되었나 보다.


나는 등의자에 앉아 있다. 사지도 다 피곤하고 눈도 피곤하다. 그러나 싫증이 나거나 기분이 내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감수성으로 가득 채워진 휴식을 내게 선사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햇볕이 따스하게 비치는 정원 테라스 위에는 몇 송이의 꽃들이 마지막 저녁 빛의 소매를 붙잡고 피어 있다. 희미하게 빛나는 잎사귀들이 서서히 졸음에 젖어 낮에게 작별을 고한다. p.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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