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아저씨와 고도를 기다리며

여덟 살이 기다리던 고도는 무엇이었을까

by 꼬마거인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고도를 기다리고 있지.
참 그렇지.

_고도를 기다리며



기다림의 끝이 허무라도

기다리는 행위 자체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도서관은 내게 마치 외가댁에 놀러 간 것처럼 어딘가 의기양양해지고 안정감이 드는 장소였다.


키보다 높은 책장과 책장 사이의 비좁은 공간에 콕 박혀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옷장 속 커다랗고 두툼한 이불에 폭 싸인 듯 세상 무엇에게서도 안전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기다림의 공간이기도 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도서관에서 엄마가 퇴근하기를 기다리는 게 내 하루 일과였다.


가끔, 아니 종종 엄마는 6시를 넘겨서 도서관에 도착했다. 도서관 벽에 걸린 동그란 유한양행 시계가 5시 50분을 향해 갈 때부터 나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보통 그쯤이면 앉아서 책을 읽던 사람들도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곤 했다.


사서 아주머니는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곧 운영시간이 끝난다고 얘기하고는 도서관 문을 닫을 준비를 했다. 그러면 나는 도서관 밖으로 나와서 주차장을 서성거리며 엄마 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도서관에 출근도장을 찍던 어느 날,

사서 아주머니가 있던 자리에 웬 낯선 어른이 나타났다. 나이 든 어른들 사이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어린 아저씨였다.


사서 아주머니는 종일 책을 읽던 나에게 다가와 곧잘 말을 붙이곤 했는데, 새로 등장한 사서 아저씨는 그러는 법이 없었다.

낯을 가렸던 나는 그게 좋았다.


한적한 평일, 시골의 작은 마을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과 만화들을 아무런 방해 없이 실컷 탐독할 수 있었다.

도서관 내부는 ㄱ 자로 생겼었는데, 한쪽 벽은 그림책부터 아동, 청소년 문학이 꽂혀 있었고 나머지 한쪽 벽은 어른들의 책과 지역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쯤 막 만화책과 소설들을 섭렵했던 참이었기에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어른들의 코너로 향했다.


넘으면 안 될 곳을 간 것 같은 기분에 엉거주춤 구석에 쪼그려 앉은 내 눈에 들어온 건 민음사의 세계문학고전 시리즈였다.


줄지어 꽂혀있는 표지 중 권을 골라들고 일어났다.


고전은 왜 이름부터 어려운 걸까

제목으론 짐작할 수 없는 내용일 거라 여기며 책을 폈는데 그런 예상이 무색하게도 책 제목이 내용의 전부였다..


어딘가에서 온 두 명의 남자가 길 위에서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린다.

마지막까지도 그들은 고도를 만나지 못한다.

고도가 누구이길래 이렇게나 찾는 건지 궁금했던 나는 끝내 그 궁금증을 풀지 못한 채 책을 덮어야 했다.


내 키에는 꽤 높았던 나무의자에 앉아 다리를 대롱거리며 책을 읽다가 한 번씩 고개를 들면 사서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는 책 정리를 하거나 컴퓨터 작업을 했고 가끔은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어느 날, 늘 그래왔듯 5시 50분이 되자 나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아저씨는 불쑥 안에서 더 기다려도 된다고 얘기했다.


아저씨는 내가 누굴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렇게 며칠, 몇 주, 몇 달 동안 나는 여섯 시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6시가 넘어서도 기다렸다.

사서 아저씨도 나와 같이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를 기다리는데 아저씨는 무얼 기다리는 걸까


작은 시골마을에 어른들 얼굴은 대부분 알고 있던 내게, 서 아저씨는 극명한 이방인의 얼굴이었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두 남자처럼 이곳에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듯 보였다.


아저씨는 혹시 고도를 기다리는 게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부당한 이유를 가지고라도 설명할 수 있는 세계는 친근한 세계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환상과 이성의 빛을 빼앗긴 우주 속에서 인간은 이방인으로 느낀다.
이 망명지에는 구원이 없다….
인간과 그의 삶, 배우와 그의 무대 사이의 단절, 이것이 바로 부조리의 감정이다.

_알베르 카뮈


나는 멍하니 내가 기다리는 게 고도인지 엄마인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지 생각하며 몇 달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더 이상 도서관에서 저녁시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을 때쯤, 엄마랑 같이 도서관에 간 적이 있다.


여섯 시가 가까워질 무렵 사서 아저씨는 일어나서 사람들을 향해, 곧 마감하니 나갈 준비를 해달라고 얘기했다.


그때 알았다.

아저씨는 한 번도 혼자 있던 내게 나가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는 걸.


여섯 시가 되어서도,

아니 여섯 시를 훌쩍 넘겼을 때에도.


어느 날부턴가 사서 아저씨가 머물던 자리에는 다시 사서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다.


내가 알던 사서 아저씨가 실은

대체근무를 하던 공익근무요원이었음은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그때의 사서 아저씨보다 훌쩍 나이를 더 먹은 지금의 내가 되어서야

어릴 적 나와 고도를 기다려 준 그분께 죄송함과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건 지루하고 긴 시간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기다림을 함께 한다면 그 자체로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 되기도 한다.

여덟 살의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매번 말을 걸고 간식을 나눠 주시던 사서 아주머니, 조용히 호의를 베푼 사서 아저씨.

수줍음 많던 내 어린 시절에는 도서관의 책장만큼이나 커다랗고 옷장 속 이불만큼이나 따뜻한 어른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도서관을 떠올릴 때마다 안정된 기분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이방인이었던 아저씨는 자기가 속한 곳으로 잘 돌아갔을까

이방인을 자처했던 나는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책 속에서 고도를 기다리던 두 이방인은 결국 고도를 만났을까

아니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함께 있는 그 순간이 즐거움이자 위안이었을 테니.

그들이 기다리던 구원자는 멀리 있지 않았다.


여덟 살의 내가 기다렸던 고도는 엄마였다.

스물여섯의 내가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일까

나는 고도를 만날 수 있을까


나 역시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다.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지금의 나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더불어 언젠가 고도를 기다리는 어린 누군가에게
나도 그의 사서 아저씨가 되어주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인간이야말로 인간 자신의 목적이다.
하나밖에 없는 목적이다.
그가 무엇인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삶 속에서 이리라.

_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