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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주 Sep 18. 2022

드라마 프로듀서 실패담

PD,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2019년 겨울부터 2021년 봄까지 드라마 제작 프로듀서로 일했다. 그리고 그 세계를 떠났다. 꿈을 버리고 떠난 지 1년이 조금 지나서야, 나는 그 시절의 기억을 얼마간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이 생겼다. 아직도 눈에 선한 촬영장과 제작 현장의 나날들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려 한다.


이 글은 실패담이다. 드라마 제작 프로듀서로 보낸 시간 동안 내가 겪은 일들-나를 웃기고, 울리던 그 수많은 일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돌아본 에필로그다. 어떤 직업이든 그것을 선망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막 직업을 갖고 마구 흔들리고 있는 누구에게도. 반짝이던 꿈을 손에 넣었다가 그만 놓아버린 이야기인지라 마냥 유쾌하진 않겠지만.


꿈을 꿨다. 드라마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다. 나는 드라마를 사랑했다. 드라마를 보고, 만들고, 고민하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밤을 기억한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길을 혼자 걷고 있었는데,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 듯했다. 촬영 현장이 힘들다더라, TO가 적어서 되기 어렵다더라, 하는 말에 귀를 닫으며 프로듀서 지망생 시절을 보냈다. 내 꿈은 5년이 넘도록 현실로 다가오지 못했고,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불합격 문자가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만 포기해야 할까 싶었던 순간, 문이 열렸다.


사실 문은 열려있었다.

제작 프로듀서로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감격했다. 드디어 오랜 준비 끝에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했다. 순진한 판단이었다. 그때 “나는 1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왜 이런 기회가 생겼을까” 고민해봤어야 했다. '드라마 프로듀서'라는 문턱이 낮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1. 드라마가 많아졌다

한국에서는 매년 점점 더 많은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다. 2015년 방영된 드라마는 60여 편 수준이다. 2020년에는 140여 편이었고, 올해는 160여 편이 제작 및 방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 3사와 tvN, JTBC 등 채널에 편성되는 작품에 더해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에서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가 증가하면서다. 드라마 제작 편수가 늘어나는 만큼, 드라마 제작현장에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2. 프로듀서는 연출자가 아니다

드라마 업계에서 PD라는 단어는 대중적으로 쓰이는 의미와 다소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PD는 Producer 프로듀서와 Director 연출을 모두 의미한다. 하지만 드라마 업계에서 PD는 Producer 프로듀서, 주로 "제작 프로듀서"를 말한다. (Director 연출은 촬영 현장과 편집 등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감독"을 뜻한다)


드라마 PD를 지망하는 대부분은 "연출"을 꿈꾼다. 연출 감독은 방송사(주로 지상파 3사, tvN 등)에서 공채로 채용하며, 1년에 방송사마다 2~3명 수준으로 뽑는다. 신입 연출 TO는 드라마 제작 편수에 따라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 현장에서 감독 역할을 할 수 있는 연출자는 채용 뒤에도 5~7년 이상의 조연출 기간을 거쳐야 만들어지며, 업계에서는 이름 있는 소수 감독에게 작품이 몰리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드라마 PD를 꿈꾸는 지망생들은 방송사 채용에 도전하여 뽑히거나, 몇 년간 고배를 마신 끝에 제작 프로듀서로 눈을 돌린다.


나는 드라마 제작 편수가 폭증한 시기에 연출자가 아닌 제작 프로듀서로 눈을 낮췄기 때문에 드라마 프로듀서가 될 수 있었다. <오징어 게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드라마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주요 OTT 기업들이 한국 드라마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당분간 드라마 제작 편수는 더욱 증가할 것이고, 그에 따라 드라마 제작 프로듀서가 되는 문은 활짝 열려있다. '드라마'라는 꿈을 꾸는 당신에게도 문은 활짝 열려있다는 뜻이다.


내가 밟은 길을 잘 봐 둬.
언젠가는 너의 옆에 걷지 못할 거야.
여기 발자국을 남겨둬, 보고 피해.
나처럼 되지만 않으면 돼.

에픽하이의 노래 <개화(開花)> 가사의 일부다. 이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드라마를 꿈꾸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온 밤이 밝게 빛나던 그 길에서 20대 초반의 나를 만나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드라마가 당신의 현실이 되었을 때 참고할 만한 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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