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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루 Oct 01. 2022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갖고 있지. 처맞기 전까지는..

산 넘어 산이로구나

■ 뜻대로 되는 게 하나 없네.


부재중 전화 한 통. 발신자는 속초 인테리어 시공업체 사장님.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느끼는"싸~한 느낌"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NN년동안 당신이 살아온 인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쌓아온 빅데이터라는 것.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정확한 말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부재중 전화 목록을 보고 느꼈던 나의 싸함 역시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약 마무리를 짓고 공인중개사무소를 나서면서 인테리어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아까 전화 못 받아서 죄송해요. 지금 계약 마무리 짓고 가고 있는 길입니다. 5분 뒤쯤 도착할 거예요."

"그러시군요. 아니 뭐 심각한 문제는 아닙니다. 곧 도착하신다니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간단한 거면 지금 말씀 주셔도 괜찮아요. 운전하는 게 아니고 걸어가고 있는 중이라 통화 가능합니다."

"아~ 전화로 지금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같이 보면서 설명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이따 뵙고 말씀드릴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에 뵐게요"





'누수, 배관공사, 보일러 교체 등등'


우리는 인테리어 시공에서 맞이할 수 있는 괴로운 상황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말을 하다 마는 것인데 그냥 전화로 미리 말씀 주시지....

우리가 예상했던 비용을 초과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으니 어쩌면 고마워해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야속할 뿐이었다. 지척에 있는 세컨드 하우스가 이날 따라 무척이나 멀게만 느껴졌다.




짐이 빠지고 난 우리의 세컨드 하우스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가구와 가전 등의 세간살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곰팡이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도 허름해 거짓말을 조금 더 보태서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집을 둘러보는 우리에게 사장님께서 조심스레 다가오셨다.




"음... 여기 한번 보시겠어요? 예전에 위층에서 심하게 누수가 있었던 거 같은데 연세가 많으셔서 귀찮아서 그러셨던 건지 뭔지... 할머니께서 대충 도배만 다시 하시고 다른 곳은 전혀 손을 안 대신 것 같아요. 위에서 물이 많이 새면 벽을 타고 아래로도 내려와서 바닥까지 젖을 수 있거든요. 보시는 것처럼 장판을 걷으니 난리도 아닙니다."



오.마.이.갓.

'하... 할머니... 어찌 이런 곳에서 사셨습니까?'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상황은 끔찍했다.


장판을 걷어보니 바닥 가장자리에 까맣게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테리어 사장님께서 보셨을 때 이 곰팡이가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라 남아있던 습기로 인해 피어난 것으로, 누수를 잡고 난 이후의 더 이상의 누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곰팡이 또한 충분히 제거 가능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주셔서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자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을 볼 때 누수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고 물어볼 생각조차도 하지 못한 점을 반성했다. 집주인이 흔쾌히 큰 금액을 네고해줬을 때 집에 뭔가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한번 의심을 해봤어야 했는데.... 속상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또 하나 더 배웠다 좋게 생각하는 게 경험 상 여러모로 정신건강에 좋기에 서둘러 털어내려고 애썼다.



"진짜 문제는 바닥이 아니라 여기 문이에요. 원래 저희가 문을 페인트칠만 다시 하기로 했잖아요. 세컨드 하우스 용도이니까 가급적 살릴 수 있는 것들은 두고 공사를 하려고 했는데 누수 때문에 안방 문틀이 썩고 뒤틀렸어요. 화장실 문틀 위에도 곰팡이가 피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화장실 문 안쪽도 습기를 많이 먹어서 살 리가 어려울 것 같아요. 작은방의 문틀은 그래도 상태가 양호해서 거기 한 곳만 페인트칠하는 방식으로 하고 문틀 2개는 전부 교체해야 할 것 같은데... 이게 참..."



사장님께서 길게 설명해주셨지만, 한마디로 줄이자면 '자금을 준비하시오~'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안방과 화장실 문틀 모두 곰팡이가 폈고 썩어서 갈라지고 뒤틀려 있었다. 비전문가인 우리가 봐도 꽤나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급히 먹은 떡이 체하듯, 급하게 매수하면 이런 사단이 날 수 있음을 비싼 돈을 지불하고 배운 시간이었다. 네고를 많이 한 덕에 조금 여유가 있었던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문틀 교체에 동의했고 작은방 문도 하는 김에 같이 바꾸기로 결정했다. 예상치 못했던 추가 비용이 발생해 아쉽긴 했으나 배관공사나 보일러 교체와 같은 큰 공사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긍정의 회로를 마구마구 돌렸다. 이렇게 산을 하나 넘은 듯했으나, 또 다른 산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술술 풀린다 했다. 



산 넘어 산. 지금 우리 처지가 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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