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야심 차게 보여준 세 번째 매물을 본 나의 첫마디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실망, 당혹, 걱정, 의아함 등등...'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너무도 낡은 아파트.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리가 세컨드 하우스의 상징처럼 여기던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산도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페인트가 벗겨져 세월을 가늠케 한 아파트의 외관과 좁디좁은 지상주차장뿐. 절로 박수를 불러일으키던 신랑의 탁월한 안목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나의 로망은 눈곱만큼도 반영되지 않은 볼품없는 아파트를 가져온 이 남자에게 대놓고 따져 묻고 싶었다.
'정말 이게 세컨드 하우스로 좋다 생각해서 내게 보여준 거란 말인야?! 이곳을 둘러보는데 우리의 이 소중한 시간을 쓸 만큼!?'
하지만 매물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신랑의 두 눈을 보니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신랑의 노고를 생각하여 꾹 참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내 자신이 기특한 순간이었다.
"음.... 네 번째 매물은 여기서 멀어? 이동해야 하지 않아?"
"여기서 차로 2분 거리. 걸어서 가도 10분밖에 안 걸려. 시간 여유 있으니까 여기 한번 둘러보고 동네 구경할 겸 걸어서 가보자"
'세 번째 매물에 관심도 없고 더 볼 것도 없다'라는 나의 속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신랑은이 매물의 입지가 정말 완벽하다며잠시 후에 보여줄 네 번째 매물도 끝내준다면서 눈치도 없이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런데 참 희안하게 신랑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동네를 걸으며 매물 주변을 살펴볼수록 어쩌면 우리 생애 첫 번째 세컨드 하우스가 이 두 매물 중에서 나올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스세권, 맥세권, 공세권, 호세권.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전부 준비했어.'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이 동네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세 번째, 네 번째 매물 모두 스타벅스, 맥도널드, 키즈카페, 병원, 영화관 등 다양한 메인상권을 도보로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미세먼지가 불어와도 집콕 대신할 수 있는 무언가가 많다는 것은 비글미 넘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우리 부부에게 참으로 달콤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다양한 여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엑스포 잔디광장과 청초호 주변으로 호수공원, 유원지, 놀이터, 산책로를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점은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벗하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우리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한 여름 저녁, 집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한 후 아이들과 한가롭게 자전거를 타고 나와 노을이 스멀스멀 지고 있는 호수공원을 감상하고, 잔디광장에서 뛰어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흐뭇하게 미소 짓는 우리 부부.이런, 또 상상해버렸다.하지만 이곳에서라면 나의 상상은 곧 현실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신랑과 나는 바다를 미련 없이 놓아주기로 했다.
인프라와 자연. 편리함과 여유.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상반되는 두 개의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이곳을, 이 기회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딩동댕. 척척박사님'
선택지는 두 개만 남았고 우리는 이젠 양손에 쥔 두 개의 떡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있었다. 최종선택에서는 예산, 자산가치와 같은 보다 현실적이고 디테일한 기준들이 적용됐다.
■ 세 번째 후보지 (탐나지만 가질 수 없는 너)
세 번째 매물은 일명 "구축 중의 대장"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구축 아파트 중에서 단지가 가장 크고, 메인상권에 가장 가까우며 초등학교가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학원도 많아 조양동 주민들이 무척 선호하는 아파트라고 했다. 수요가 많은 만큼 추후 매도하거나 전월세로 전환 시 훨씬 수월할 수 있다는 이점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다만, 우리가 마음에 들었던 매물은 로열층에 인테리어 상태도 양호한 편으로 취득세, 중개수수료 등의 부가적인 비용까지 모두 합산했을 때 우리의 예산을 조금 넘어섰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고, 조금 더 좋은 매물을 매수할 수도 있지만 "아반떼를 사러 가서 조금 더, 조금 더 좋은 거를 외치다 결국 벤츠 계약하고 나온다"는 우스갯소리처럼 그렇게 따지면 한도 끝도 없기에 예산 안에 들어오는 매물이 나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가 고민하는 동안 좋은 매물이 추가로 나온다면 행운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우리의 복이 여기 까지구나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 네 번째 후보지 (가장 현실적인 선택)
네 번째 매물은 구축 중의 대장이라 불린다는 세 번째 후보지에서 무척이나 가까웠다. 다양한 조건을 따져보면 네 번째 후보지는 대장 옆에 있는 소장 격쯤 된다고나 할까?
단지가 작은 편이고 현재 나온 매물은 저층이고 반드시 전체 수리를 해야 할 만큼 내부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매수 가격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알아보니 거주 중인 집주인이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인지라 급매로 내놓은 물건이라고 했다. 네고 또한 가능했기에 세금, 중개수수료, 수리비용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예산 안에 들어오고도 남았다.
부동산 거래 정보를 찾아보니 전월세 거래가 단지 규모에 비해 꾸준히 이뤄지고 있었다. 단지가 작아 공급량은 적은데 이곳 또한 초등학교에서 가깝고 메인상권에 인접해있는 만큼 수요가 많아서 그런 듯 싶었다. 이곳 또한 우리가 세컨드 하우스로 사용하지 못할 시 전월세 전환을 하기에용이하겠다 판단됐다. 100% 마음에 쏙 든 매물은 아니지만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임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