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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루 Aug 13. 2022

로망과 현실 사이

로망이냐 현실추구냐 그것이 문제로다.


차 안의 분위기는 어제와 사뭇 달랐다.  아이들은 오늘은 또 어디를 가는 걸까 설렘에 들떠 있었지만 신랑과 나는 '세컨드 하우스 임장'이라는 막중한 임무가 급작스럽게 추가되어 있었기에 거짓말 조금 더 보태 비장미마저 감돌았다. 방문할 여행지 코스, 할인 및 이용 꿀팁들이 적혀있던 나의 핸드폰 메모장은 하단으로 밀렸고, 신랑이 찜해 둔 4개의 집에 대한 궁금증을 적은 메모장이 새롭게 상단을 차지했다. 위치가 뒤바뀐 메모장과 그 안에 적힌 내용들이 내가 지금 세컨드 하우스 임장을 가고 있는 게 실화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속초 여행 와서 난데없이 세컨드 하우스 임장이라니. 이게 꿈이 아니라니. 정말 여러모로 놀랄 일이었다.



<미션> 

신랑이 염두에 둔 집은 총 4곳.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금, 토, 일 총 3일. 

3일 동안 아이들이 기대하는 여행 일정과 세컨드 하우스 임장을 모두 마칠 것.(최대한 낮, 밤, 평일, 주말 모두 한 번씩 가보기)

 




■첫 번째 후보(로망을 그대 품 안에)


희한하게도 신랑이 마음에 둔 4곳은 모두 다  아파트였다. '세컨드 하우스는 당연히 잔디밭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신랑에게 아파트를 선택한 이유를 물어봤다. 신랑은 본인 없이 내가 아이들만 데리고 셋이서 지낼 수도 있고 세컨드 하우스 특성상 비워두는 시간이 많을 테니 보안의 취약함과 관리의 어려움을 이유로 단독주택은 제외했다고 한다. 또 나중에 생각지 못한 일이 생겨서 매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도 아파트가 단독주택보다 쉽게 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만큼 첫 세컨드 하우스로는 아파트가 제격이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자세하게 이유를 설명해줬다. 




신랑이 갑자기 멋져 보였다. 멋짐의 아우라를 뿜어 내고 있던 신랑이 첫 번째 후보지를 처음 보여줬을 때에는 마치 이 세상에서 지금 내 옆에 서 있는 남편이 가장 근사한 남자처럼 느껴졌었다. 






왜냐고? 신랑이 내게 보여 준 세컨드 하우스 첫 번째 후보지는 집 앞에 바로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걸어서 3분 컷! 그것도 항구가 아니라 아이들과 물놀이와 모래놀이가 가능한 해수욕장이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나의 로망을 채워주는 근사한 곳을 보여주다니. 내 마음을 어쩜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건지, 신랑이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여유 있게 브런치를 즐기고 아이들과 집에서 걸어 나와 모래성을 쌓고 조개껍질을 줍고 튜브를 타며 파도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해버렸다. 



해수욕장으로 가려면 4차선 도로 위에 있는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야만 했지만 차가 많이 다니지 않으니 이건 큰 문제가 아니다 싶었다. 아파트 단지도 조용했다. 오늘은 금요일, 세컨드 하우스로 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하더니만, 실거주하는 분들이 적어서인지 단지가 조용하고 주차장도 많이 비어있었다. 평일이라 그럴 수도 있으니 주말인 내일 밤에 다시 와서 체크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신랑은 이 매물이 거실 소파에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오션뷰 아파트라고 했다. 바로 뒤에는 나지막한 뒷동산이 있어 초록빛 나무숲도 감상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시끄럽게만 들리던 매미소리가 이곳에서는 지상 최고의 합창단 노래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어쩌면 좋아. 분위기 좋은 노래를 BGM처럼 틀어놓고 내 집, 내 거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바다를 감상하는 나의 모습을 또 상상해버렸다. 

 





'그래! 이게 세컨하우스지! 맞아! 이런 거 누리려고 세컨드 하우스 구하러 여기까지 온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상상의 상상을 더하고 있던 찰나, 우리 집 1호, 큰딸이 그 흐름을 싹둑 끊어놓았다.




"엄마, 그런데 여기에 마트는 어딨어?" 



그랬다. 해수욕장에서부터 걸어오는 동안 내가 본 상점이라고는 달랑 편의점 한 개, 주유소 한 개, 카페 한 개뿐이었다. 매물의 위치를 지도에서 다시 찾아보니 도심에서 꽤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비글미 넘치는 자매를 키우는 엄마이자 살림을 도맡아서 하고 있는 주부 7단 정도에 이르는 살림꾼의 면모를 선보일 시간이었다. 나는 상상의 나래를 잠시 접고 네이버 지도 어플을 켰다. 대형마트, 재래시장, 소아과, 약국, 공원과 함께 키즈카페, 도서관, 박물관, 체험관 등등 아이들과 갈만한 각종 실내 장소를 서치하여 첫 번째 매물과의 거리를 전부 체크해보았다. 공원, 마트, 시장, 소아과.... 어디를 찍던 가장 가까운 거리가 차로 20분 거리 었다. 



"말도 안 돼.. 이건 아니다... 자기야, 여긴 아닌 거 같아."




조금 전에 그려보았던 1번 후보지에서의 꿈만 같던 세컨드 하우스 라이프의 상상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생각만 해도 끔찍한 다른 일상이 머릿속에 가득 채워졌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어떡하지? 매번 바다에서만 놀 수는 없잖아. 또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거나 미세먼지가 있어서 해수욕장에서 놀 수가 없어지면 뭐 하고 놀지? 이 비글 자매를 데리고 집에만 있을 순 없는데?' 

주변에 놀 곳이 없다는 건 정말 최악이었다. 



퍼즐이 하나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실거주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건 일상적인 평범한 삶을 살기엔 주거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뜻이었고,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의 도로에 차가 별로 없는 것도 인적이 별로 없는 것도 주변 상권이 죽었다는 것을 뜻했다. 만약 이렇게 조용한 곳에 신랑 없이 내가 혼자서 아이들만 데리고 온다면 뭔가 무서울 것 같기도 했다. 공원도 없거니와 너무 인적이 드물어 아이들과 셋이서만 산책을 하는 것도 이곳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좋게 느껴졌던 조용함이 썰렁함으로 바뀌는 순간 첫 번째 후보지는 리스트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오션뷰&마운틴뷰, 도보 3분 컷 해수욕장, 휴식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용함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던 첫 번째 후보지는 "아이들이 없는, 평화로운 휴식을 즐기고자 하는 은퇴한 노부부에게 맞는 곳"이라는 결론을 내린 채 서둘러 두 번째 후보지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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