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그이름. 세컨드하우스
"세컨드하우스. 세컨드하우스라고. 우리 속초에 세컨드하우스 사두자고"
"웁!! 컥컥! 미쳤어?.. 큭... 제정신이야?! 흠! 큭!! 아니~ 켁.. 도대체 왜?! "
마시던 맥주를 코로 뿜을 뻔했다. 다행이다. 리조트 소파에 맥주를 뱉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를 뻔했지만 간신히 삼켜서 사레들리는 정도에서 끝낼 수 있었다.
세. 컨. 드. 하. 우. 스.
신랑의 입에서 나온 저 단어는 사실은 정말이지 참으로 근사했다. 낭만적이지 않은가? 딱 저 한 단어만을 들었을 뿐인데 머릿속에는 넘실대는 바다가 그러지고 귀에는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들리고 까끌거리는 모래의 감촉이 발가락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어디 이 뿐인가? 말 그대로 "두 번째 집"이라는 뜻처럼 뭔가 성공한 사람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웅장함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갖고 싶었다. "나 세컨드 하우스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순간 놓아버릴 뻔한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부여잡고 신랑에게 다시 물었다.
"세컨드하우스 좋지. 좋아~ 그런데 돈을 어떻게 마련하려고?"
"우리 개인연금 만기 된 거 있잖아. 그거 그냥 해지하자. 가지고 있던 여윳돈 더하고, 부족한 거는 일부 대출받으면 돼. 내가 대략 계산해봤어. 충분해. 지금 속초 매매가가 작년보다 많이 내렸어. 지금 매수자 우위 시장이야. 그리고 투자적으로 봤을 때도 앞으로 속초 땅값이 오를 거야. 양양고속도로 뚫리고 춘천 속초 동서고속철도가 착공 예정이야. 투자적으로 봤을 때도 괜찮은 거 같아."
"아니~ 이보세요~~ 뭐가 이렇게 또 확신에 찼어? 그리고 투자를 할 거면 서울에 해야지 왜 속초에다 해? 투자를 하자는 거야, 우리가 별장처럼 살 집을 구하자는 거야? 컨셉이 뭐야~ 헷갈리게~"
"둘 다! 우리 예산으로는 서울에 투자 택도 없어. 그리고 속초 여행 올 때마다 숙박비 쓰는 비용이 얼마나 드는 줄 알아? 예약하는 것도 일이고, 최저가 찾는 것도 일이야. 체크아웃, 체크인 시간에 맞춰서 왔다 갔다 하느라 매번 차 막히고, 시간 안 맞으면 또 카페나 식당에서 기다리며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시간 때워야 하고. 이런데 쓰는 우리들 시간도 다 비용이야. 이것저것 합해서 따지고 보면 대출이자가 훨씬 싸. 숙박비는 버려지는 돈이지만 우리가 속초에 집을 갖고 있다가 집값이 오르면 그건 또 우리한테 이득이고. 나중에 은퇴하고 속초에서 유유자적 살고 싶다면서? 전생에 강원도 도민이었던 것처럼 강원도가 편하다며~ 저번에 자기가 그렇게 말했잖아. 그리고 솔직히 우리 은퇴하고 돈이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돈 있을 때 미리 사두면 좋지 않겠어?"
여행 와서 기분 좋아 맥주 마시면서 꼬부랑 거리는 발음으로 흘리듯 뱉은 말들은 그렇게 잘 기억하면서 내가 콕 집어서 사진까지 보여주며 이쁘다고 했던 샤넬백과 디올 백은 왜 기억을 못 하는 건지. 갑자기 괘씸한 생각이 들면서 취득세, 대출금리인상 시 방안, 속초에 세컨드 하우스 매수로 묶여버린 돈. 그로 인한 기회비용 등등등. 갑자기 반박할 내용들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한 말은 내 생각과 달랐다.
"........ 그래서.... 봐 둔 매물이 있다는 거야?"
"어. 4개. 말 나온 김에 내일 가서 볼래?"
"뭐?! 아까 바닷가에서부터 핸드폰 열심히 보던 게 그럼 매물 보고 있던 거였어?
"실은 나 오늘 속초여행 오기 한참 전부터 생각했었어. 온 김에 집 보고 싶어서 매물 몇 개 추렸던 거고, 이번 여행 와서 상의해보려고 했어. 애들이 너무 잘 놀고 자기도 엄청 좋아하는 거 보니까 세컨드 하우스 사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 일단 내일 한번 집 같이 봐보자. 응?"
"하.... 미쳤어 정말.... 이번 여행의 목적이 있었던 거고만.... 아이고 머리야.... 에효~ 모르겠다~ 그래. 왔으니 한번 보기라도 해보자"
그렇게 별안간에 우리의 속초살이를 위한 첫 단추. 세컨드 하우스 구하기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