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량대표아적심 by 등려군
벌써 오래전 일이 되어버린 군대 훈련소 숙영 하던 때가 떠올랐다. 지끈 거리는 발들을 통통 감싼 군화들이 몇 시간이 흐른지도 모르고 산행을 강행 중이었던 그때. 정말이지 칠흑 같은 이란 표현은 여기서 쓰려고 만들어둔 단어인가 싶었다. 인조의 불 빛은 단 하나도 없었고 첩첩의 나무와 나무들인지 병풍들인지 분간도 가지 않던 그림자들의 밤이었다. 그래도 희미한 그림자라도 만들어 준 달빛만이 발걸음에 방향을 안내해주었다.
가끔 의도치 않게 새로운 느낌을 예상치 못한 시간에 엉뚱한 장소에서 발견할 때가 있는데,
그 날은, 달 빛으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음을 생전 처음 깨달은 날이었다.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달빛에도 걸을 수 있음을 몰랐다니. 물론 보고 들은 적은 있었다. 어떤 역사에서는 달이 뜨지 않은 밤 야습을 실행에 옮긴다고 했다. 어떤 에세이집의 제목은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직접 체험해야 내 것으로 와 닿는 것임을 다시 확인했다.
달빛이 밝혀주는 밤. 오랜 행군 뒤, 휴식이라는 소리에 벌러덩 누웠다. 까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다 문득 아련해졌다. 내 소중한 사람들이 은근한 달빛에 아른아른거렸다. 장소의 특수함이었을까 달빛에 홀린 것이었을까. 마음이 달빛을 따라 넘실거렸다. 그리움을 툭 건드렸다. 삭막한 도시를 벗어난 달빛은 순수한 어떤 사랑하는 이의 마음과 같았다. 그날 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하고 꾸준한 마음의 사람들이 뇌리를 자꾸 스쳤다.
달빛과 같은 마음은 밤의 두려움과 불안함이 사라져 버릴 그 끝까지 꾸준하게 비춰준다. 반면, 마치 '내가 널 사랑해, 그러니 나만 봐!'라고 외치는 듯한 도시의 인조적 휘황 찬란 등불과 네온사인들은 대부분 목적이 있다. 이 빛들에겐 꾸준함도 없다. 멋대로다. 비추고 싶을 때만 비춰주고 때로는 예고 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아마 누구도 이로 하여금 아련한 사랑을 느끼지는 못 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달빛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 화려한 인조 불빛의 유혹에 빠져있다. 가짜 빛, 가짜 사랑들에게만 둘러싸인게 아닐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은은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달빛 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마음. 추운 밤 꼭 껴안은 연인들의 마음. 나 자신보다 이웃을 위해 애쓰는 마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불길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드는 마음. 우리 곁에 이런 은근하고 따뜻한 마음들이 넘실거린다. 우리는 여전히 달빛이 말해주는 아련한 사랑, 그 그리움에 가까이 있다. 눈부신 인조 빛에 가려 있을 뿐이다.
달빛은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진실된 사랑을 대신 이야기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