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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 kwangsu Oct 04. 2018

언제나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할 것  

그 역시도 나와 동등한 인격체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수단이기 쉽다. 수단은 인격의 건너편에 있다. 수단은 정해진 목적, 본래의 쓰임에 충실하면 그만이지만 인격은 언제나 여분의 공간, 해석의 여지를 지니고 있다. 나는 규격화되어있는 사회에 의해 이미 사용법이 정해진 인간으로 살면서도 끝내 인격적인 관계에 대한 미련을 저버리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한 인격과 인격이 대면하는 자리에는 적절한 예의와 배려가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상대가 나보다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상대를 동등한 값어치를 지닌 한 인격체로 대우하려 힘쓰는 까닭은 그것이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마땅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보다 높은 직급이라는 이유로, 관계에서의 주도권을 지녔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인격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는 부당함을 정당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것은 직급 간의 위아래가 있고 경력에서 오는 경험치를 존중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는 직급과 경력을 마치 정당하고 대단한 권력처럼 착각하는 순전함에서 비롯된다. 내가 상대방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거나 더 많은 경력을 쌓았다고 해서 그것이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지위에 있든 간에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에는 무조건적이며 인격적인 태도가 우선이라는 진실은 너무도 쉽게 무시된다.



이런 순전한 착각이 당연시되는 것은 아마도 이미 사회 곳곳에 만연한 비인격적 관계 때문일 것이다. 내가 신입일 때는 그보다  심한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았다든지 내가 어떻게 해보려 해도 직장 상사들이 죄다  모양이니 어쩔  없다는 식의 변명은 아예  하는 것만도 못할 만큼 구차할 뿐이다. 문제가 생기고 사고가 터지면 쉽게 경험할  있는 장면들이 있었다. 분을 참지 못해 벌게진 얼굴로 쏟아내는 상사의 욕설과 폭언에서는 상대방이 자신과 동등한 인격이라는 존중을 찾아볼  없다. 그럴  그들은 나를 정해진 용도를 벗어나 오작동한 기계쯤으로, 그들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배설하는 창구쯤으로 여겼으리라. 그러나 내가 받은 비인격적인 대우들이 내가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을 비인격적으로 대할  있는 근거가  수는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화가 났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큰 소리를 치고 버럭 화를 냈던 적이 있었다. 그랬던 것이 벌써 일 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도 잊히지 않을뿐더러 어쩌다 그 일을 다시 떠올리는 날이면 그 사람의 풀이 죽은 표정까지 생생하게 떠올라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유달리 민감하게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아마 그 사람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그때 왜 그랬을까' 싶은 후회만 남는다. 그 일이 있고 난 직후에 찾아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그런다고 내가 인격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 친구에게 상급자이기 이전에 인격적인 존재이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그것은 마음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 어떤 실수를 하고 사고를 내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인격적인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힘쓴다. 사람인 이상 잘못이나 실수는 언제든 가능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언제든 있어선 안될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내 삶의 현장에서 그 믿음을 실현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나의 인격으로서 존중받길 원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흠이나 실수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함을 보인다. 사람이니까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니까 언제든 그럴 수 있다며 자기 자신을 껴안는다. 그러면서도 정작 타인을 자신과 같은 인격적인 존재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나는 인격이 수단이 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비극을 알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를 우리는 종종 잊는다. 누군가를 내 계획, 내 욕망, 내 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 그를 얼마나 비참한 존재로 전락시킬 수 있는지를 결코 잊어선 안된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비인격적인 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너무도 많다. 만약 상대를 나와 동등한 인격으로 인식한다면 같은 상황이라도 충분히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역시도 나와 다름없는 인격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이 나와 다를 바 없는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 그 사실을 인지할 때 비로소 나뿐 아니라 상대에 대해서도 언제든 그럴 수 있다는 너그러운 포용의 공간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정말로 인간적인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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