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 분야에서 나를 지속가능하게 한 다섯 가지
요즘 내 주변에는 ‘어떻게 한 직장에서 10년이나 있을 수 있었는지’ 묻는 사람이 없다. 대신 ‘한 직장에 5년 이상 있으면 멋없는 고인물이 되어버린다’고 믿는 젊은 동료들이 더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있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싫어하게 되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좋아하는 이유는 비슷하다니까 말이다. 비정규직 포함 공백 없이 꼬박 10년 차를 맞이했을 때,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돌아보았다.
전문성의 환상에서 자유로워지기
국제개발, 그중에서도 사업 관리 업무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주변 동료들에게 ‘너는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냐’는 질문을 습관처럼 받았었다. 질문의 요지는 ‘요새 어떤 이슈가 네 관심을 끄느냐’의 현재적 소통의 시도가 아닌, ‘앞으로 어떤 구체적인 분야에 더 집중해서 전문성을 기르고 싶냐’는 미래에서 온 경고였다.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반드시 길러야만 한다는, 또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 너도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일종의 당위성을 내포한 질문이었다. 나는 교육, 아동보호, 인도적지원, 환경, 분쟁 등 여러 분야와 취약한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에 촉이 곤두서는데 한 가지만 정해서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강요를 받는다고 느꼈다.
모두가 말하는 게 진실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전문성이란 것에 목말랐을 때는 얼른 대학원에 진학하는 방법도 있었다. 보이지 않는 미래와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돌파구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자격증 따듯 대부분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마당에 학위 그 자체가 전문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커리어와 포지션 설정에 선택권이 다양(또는 분명)해지는 자유로움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석사 과정을 5개나 할 수 없었던 나는 일을 하는 중간에 관심 분야 공부를 공식 학위가 남지 않는 방식으로, 누가 보기엔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독학을 했다. 어떤 주제라도 조금 관심이 있을 때 이력에 ‘남는’ 형식으로 ‘빨리’ 끝낼 수도 있었겠지만 1~2년 안에 마스터 가능한 공부가 어디 있겠는가. 그만큼 스스로 검증하는 시간을 거칠 수 있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전문성이란 선택과 집중에 따른 직무 충실화든 전반적인 직무 확대든,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쌓일 수 있는 것인데 너무 초짜 때부터 성급히 바라본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무언가를 두루 잘 챙길 수 있는 사람보다 한 가지에 특화된 사람이 더 인정받고 자신의 품위를 지키기 쉬울 거라 환상을 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캄보디아 현지 프로젝트 매니저와 교육분야 전문가와 한 팀이 되어 일한 적이 있다. 그 둘은 서로의 처지를 부러워했다. 매니저는 사업의 전반적인 일정 관리, 예산 관리, 성과관리를 모두 담당하는 게 불만이었고, 교육에 대한 본인의 전문성을 펼쳐 보이는 게 앞으로의 꿈이었다. 교육전문가는 자신의 조언이 조언뿐으로 남는 상황을 숱하게 겪으며 다음 직책으로는 결정권이 있는 매니저가 되고 싶어 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어쩌다 한 볼멘소리일 수 있지만, 사실 내가 보기엔 둘 다 알맞은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둘 다 자기 자신을 알면 어디가 더 어울릴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속으로 되뇌었다.
전문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 외피와 같은가 하면, 내가 속한 공동체 껍질 바깥과 안에서 나를 평가할 때 전문성에 대한 잣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국제개발협력 NGO 활동가로서 한 분야의 전문가지만 구성원 간 상대적인 면을 고려하면 전문성이 없다고 평가할 수도 있었다. 전문성을 추구할 때 결국 그 이면엔 ‘자율성과 안정성’을 바라는 게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전문성을 경력과 학위로 바로 치환시키기보다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다면적인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조금 더 폭넓게 정의한다면 어떨까. 다각도가 필요한 이유는 단일한 시간에 일어난 한 번의 사건은 ‘라떼’에 불과하니까. 최근에는 ‘어떤 일이든 책임감 있는 태도’로 대하는 게 전문가의 필수 요소라 생각했다. 두꺼운 얼굴과 큰 머리를 가지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조직과 사람에 미치는 어두운 영향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식과 경험뿐 아니라, 철학과 그에 따른 태도가 수반되는 것은 한 차원 더 높은 경지겠다. 전문성이 향하는 방향도 짚어보고 싶다. 전문성이 현장의 사람들과 더 잘 연결되기 위한 것이기보다 단순히 내 생각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거나 비교우위를 통한 나만의 생존, 또는 입신양명을 위한 도구라면, 우리가 하려는 일의 목적에 닿기에는 조금 시시한 개인의 욕망에 그치지 않는가. 모든 욕망을 부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원초적 본능이 자기만을 위해 비출 때와 다른 사람을 위해 비출 때 발하는 빛깔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 덧, 자기 확장을 위한 학문적 경지 추구와 달리, 일정 수준 이상의 학위를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국내외 업계와 그로 인해 맹목적으로 학위를 추구하게 되는 현상을 바라보았다.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담담히 마주할 때야 자신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업무Task와 임무Mission, 나만의 언어로 정의하기
코디네이터 역할에 대한 소진이 온 것은 3년 차 때였다. 담당 국가 지원전략 수립, 수십 억에 달하는 정부사업 관리, 대내외 이해관계자 응대, 모금마케팅 콘텐츠 발굴까지. 다 감당하기 벅찼다. 늘 무언가를 위해 바쁘게 달렸지만 모든 것이 끝난 뒤에는 허탈함이 남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 무렵 업무Task와 임무Mission를 구별해 보는 어떤 글을 만났다.
업무는 ‘조직에서 부여받은 일’ 그 자체로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나의 업무는 크게 사업 관리, 후원자 응대, 대내외 이해관계자 네트워킹으로 나누어 정의될 수 있었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게 임무는 ‘일정한 수준으로 수행되는 일에 고유한 성질이 담긴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즉, 업무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주어질 수 있는 일 그 자체What이되, 임무는 나만의 개별성How이 들어간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사업 관리라고 했을 때, 업무 매뉴얼에 따라 일정 기준의 절차를 수행하는 것이 업무라면, 현지에서 유용하게 여길 양질의 피드백과 환류가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지워주고 싶은 자율적인 임무였다.
업무와 임무를 구별하는 것이 어떻게 지속가능성과 연계될 수 있을까. 임무는 기한이나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목적을 달성해 가는 과정이기에 내 존재와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들게 해 준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때로 많은 기관에서 담당자 개개인의 업무가 조직의 목표에 연결되는 점을 설명해주지 못하거나, 더욱 심하게는 피상적인 목표 자체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의 목적을 조직에서 분명하게 제시해주지 못하는 점은 분명 많은 주니어 직원들을 실망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공동의 목표를 세워가도록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자신만의 임무를 세워 실험해 보는 것은 스스로의 역량과 조직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게 만든다.
운이 좋아 조직 내 명확한 비전과 미션이 있어 각 팀과 TF라는 팔다리를 통해 이루어간다 하더라도, 그것을 나노 단위 업무에서 어떻게 만들어갈지는 결국 개인의 속성과 태도에 크게 좌지우지된다. 자율성이 중요한 이유다. 비영리기관에서 일하는 이상 그 어떤 보상 보다 본인의 가치 수호에 큰 비중을 두는 사람들로서는 ‘눈앞의 업무’와 ‘나의 가치’ 간 연결감이 너무도 중요하다. 아무리 전문직으로서의 우대와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해도 근원적 동기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수년 전의 나는 나의 코디네이션이 조금 더 사려 깊고, 전문적이며, 상호 배움이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누구와도 구별되는 ‘◯◯◯만의 코디네이션’이라는 일종의 브랜드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거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남아있기 위해서였고, 그것이 아직 나를 지속 가능하게 했다.
― 덧, 임무 찾기란 아직 돌파구를 찾고 싶은 의지가 남아있는 너무 지치지는 않은 때라야 가능할 것 같지만.
사심 한 스푼
앞서 말한 임무라는 건 미션 임파서블의 특수요원쯤 되어야 할 듯 비장하게 들릴 수 있다. 결국엔 내가 좋아야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야 한다’는 의무와 ‘할 수 있다’라는 능력에 의존해 시작한 그 어떤 일도 ‘하고 싶다’는 사심의 영역을 반영할 자리가 없다면 흥미가 떨어지고 의욕이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나의 호기심이 어떤 주제를 만나 점점 더 깊이 알아가게 되는 그 자체는 일터에서 소소한 장난감이 되어주었다. 국제개발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이슈를 다뤄 호기심이 마를 새 없었다. 학교 밖 아동과 아동 노동 이슈가 심각하지만 별다른 개입이 없는 사실이 마음에 걸려 해당 주제로 사업을 기획해 보거나, 통합교육 사업을 담당하다가 권리기반교육을 주제로 한 워크숍에 참석한 이후 특수교육 분야를 공부해보기도 했다. 분쟁지역 아동을 이해하고자 아동발달과 아동임상심리에 발 담가보기도 하고, 두 차례에 걸친 정부 사업을 진행하면서 문해력 이슈와 교육평가 영역에 대해 탐색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담당했던 국가별 수많은 맥락은 나에게 지적 놀이터이자 배움의 터전이 되었다. 일과 놀이가 분리되지 않는 경험은 분명 소중하다. 이오덕 선생이 ‘놀이, 일, 공부가 하나가 되는 것이 참교육이자 건강한 성장을 이룬다’고 한 말은 어린이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만 같은 것들의 부재’를 채우기 위한 사부작거림이 숨통을 틔워주기도 했다. 일말의 신념으로 길다면 긴 5개년 통합개발 프로젝트를 개발해 보고, 통일된 기준이 없던 사업 모니터링 방식에 나름의 체계적인 틀을 도입해 보거나, 아동 참여적 모니터링 방식과 질적 데이터 분석 방법을 적용하고, 사업 개발을 위한 젠더/장애분석을 진행해보기도 했다. 사업 관리로 바쁜 와중에 수십 장의 중간평가 보고서를 영문으로 작성하는 것도 나름의 고집이었다. 소소하지만 전에 없던 시도들이었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이었다. 저절로 발산되는 자신만의 취향이 이곳저곳 묻어날 때, 일차적으로나 자신에게 재미를 주어서 좋고 결과적으로는 속해있는 기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재미가 뭐길래? 이 분야에서 오래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 반드시 재미가 있어서만은 아니겠지만, 이 길을 떠난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더 이상 별 재미 볼 일이 없었던 건 확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필요조건은 맞는 듯하다.
― 덧, 사심으로 정말 사심‘만’ 챙기는 사람들은 결국 더 치열하게 자신을 던져보지 못했음을 후회하며 한 발짝 물러서거나 환경만을 탓하며 영영 떠나가고 말지도.
나를 감내해 준, 내가 감내해 간
흔히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면 인류의 번영을 위해 헌신하는 천사들의 유토피아를 상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에게 진부하게 지옥은 언제나 디테일에 있고 악마는 바로 자신 옆에 있다. NGO에서도 아주 빈번하게 일어난다. 옆 사람이 매일 같이 야근해도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관심 없이 온종일 수다 떨다 퇴근하는 일상형 무관심에서부터, 자신의 옳음을 타인에게 확증시키기 위해 날카롭게 간 칼에 미사여구를 살짝 코팅해 토해내는 무차별한 공격과, 본인의 정의로움으로 타인을 단죄하여 관계를 차단하는 정서적 폭력, 그리고 일방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빙자한 나쁜 손까지. 사람이 모인 곳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행태가 동일하게 나타난다. 돌아보면 모두가 자의식으로 무장해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진 영혼들이었다.
관계가 가장 어려운 때가 있었다. 좋은 사람에 기대어 시작한 일이지만 사람을 깊이 알아갈수록 관계가 덫같이 나를 옥죄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나를 자유롭게 해주지는 않았다. 다만 의식적으로 나와 상대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연민과 긍휼의 마음을 기르는 잠복기를 가졌을 뿐. 자기를 높이고 감싸는 상자에서 벗어나, 누군가를 깎아내리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는 것만이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마치 현장에 있는 주민, 직원들과 관계를 맺듯이, 여러 번 속고 여러 번 찔림 당해도 잘잘못을 가려 피해자 가해자로 나누고 두 사람 모두 상처의 감옥에 집어넣기보다,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맥락과 환경을 먼저 이해하기로. 푯대를 향한 실천은 유일한 해답이 아니어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거의 필수적인 몸부림이었다. 다소 정신 승리에 불과하게 들릴지라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말한 것처럼 ‘천국은 머리 위뿐만 아니라 발밑에도’ 있는 듯이 잘 먹고, 잘 놀고, 쉬는 것도 충분히 했다. 반려 식물을 돌보거나, 힘을 주는 사람과 근교에 바람을 쐬러 가거나, 책을 통해 다른 세상을 여행하거나, 다른 건강하고 충만한 관계들로 채워갔다. 긴 터널을 지나며 끝날 것 같지 않던 울음과 떠날 것 같지 않던 어두운 영혼이 낯설게 느껴지는 때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관계로 인한 절망에서 벗어나기가 오롯이 개인의 노력으로 이겨내야 하는 과제라기엔 현실의 무대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아픔이 후에 누군가가 다시 겪을 모두의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를 돌보는 것을 넘어 상황을 바꾸려는 담대한 시도를 했을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말을 같지만 다르게 ‘여유에서 애정 난다’로 바꾸어 새긴다. 목적과 성과 대신 과정과 관계를 돌아보면서, 자신은 비우고 상대를 위한 자리 한쪽 어딘가 늘 마련해 둘 수 있는 사람이기를 오늘도 연습한다.
― 덧, 좋은 일은 따로 없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모든 일이 좋은 일이다. 결국, 좋은 사람이야말로 좋은 일을 하게 되는 것 아닐까. 글쎄, 누군가는 여전히 나쁜 사람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을 것 같다. 나도 그 생각에 반대할 수 없다. 정말이지,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 ― What legacy will you leave behind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것을 멈추어가던 때, 우리가 일하는 현지도 마찬가지였다. 다중모임이 금지되어 활동 진행이 무기한 연장되고 건축자재나 인력 수급이 어려워지는 표면적인 것은 고사하고, 국경이 봉쇄되면서 당장 실직한 이주노동자들까지 넘쳐났다. 그야말로 빈곤의 쓰나미에 휩쓸려 눈앞에 당도한 재난을 목격하고 있었다.
마냥 손을 놓을 수는 없어 긴급구호 활동으로 전환했지만, 유례없는 상황에서 그 이상 무엇도 더 할 수 없어 막막했다. 기존에 열심히 결실을 맺어가던 사업을 더는 진행하지 못하게 되어 애 닳는 마음도 감추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각종 국제기구에서는 코로나19가 아동보호와 아동권리에 미친 영향을 앞다투어 조사해 발표해 냈다. 문서들을 보고 있자니 뇌에 과부하가 걸려 사고가 정지되는 듯했다. 너무 많은 곳에서 너무 많은 이슈가 득실거려 온 세상이 난국인 듯, 지금까지 일하며 마주한 한계와는 다른 차원의 큰 산이 무더기로 눈앞에 놓여있는 느낌이었다.
동료에게 이런 감정을 나누며 물었다. 여전히 물방울 하나 보탠다 생각하고 계속해야 하느냐고. 동료는 흔들려도 믿음이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떤 메시지를 우연히 마주했다.
‘당신의 선물이 가난과 재난 속 아동들의 생명을 살리는데 얼마나 결정적인지 아시나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모금 마케팅 문구인데 그 순간만큼은 잠재 후원자의 마음보다 내 마음에 더 가깝게 다가왔다. ‘아, 적어도 우리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행했던 일련의 움직임, 그 과정 자체가 후에 남길 수 있는 유산일 수 있겠다.’
『천로역정』이라는 고전에는 ‘정욕’과 ‘인내’라는 두 아이가 나온다. 그리고 그 두 아이에 대해 해석자는 이렇게 설명을 덧붙인다.
“쉽게 말해서 세상에 사로잡혀 사는 친구들은 바라는 일들이 당장 바로 여기서 이뤄지길 바라고 다음 세상에서 누릴 몫으로 남겨둘 줄 모르는 걸세.”
이야기의 끝에서 주인공이 ‘신실’, ‘소망’과 여정을 이어가다 결국 ‘신실’ 홀로 순교하도록 그려진 것은, 어쩌면 우리의 열심과 성실은 유한하고 오직 인간에게 소망만이 영원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죽음과 사그라짐을 떠올릴 때야 비로소, 지금 어떻게 존재할 지에 대한 자신만의 확신과 직감이 살며시 얼굴을 내미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