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지원-개발-평화(HDP)를 잇는 움직임
갈등과 발전의 상관관계
아담한 공항에 착륙하기 전, 창문 사이로 푸른 언덕이 펼쳐졌다. 시내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도 한없이 평온해 보이는 초록빛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어쩐지 스산함도 품고 있었다. 역사가 담고 있는 진실과 그날의 비명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공기에 저며 있는 듯했다. 한 겹으로 덮인 평화 아래 두터운 불신과 불안이 원초적으로 감지됐다면, 삶의 터전 삼아 오래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례인 근거 없는 심상일 수 있다. 진주알 같은 아이의 얼굴이 심연의 출렁임을 일으켰던 곳, 르완다였다.
스리랑카 북부 끝 자락, 이제는 숨어있는 반군이 없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안에 아이들이 아무 의심 없이 웃으며 누비고 다녔을 학교 터에 발을 들였다. 포탄을 맞고 으스러진 학교 외벽을 만져보았다. 그제야 살에 감각이 맞닿는다. 내전이 끝난 지 한참이지만 기초 교육 사업을 하는데 아이들과 부모에게 까지 심리적 지원이 필요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트라우마는 부모에게서 아이들에게 대물림되어 여전히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애써 보려 하지 않으면 상흔을 찾기 어려운 건 캄보디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히 맡은 일을 해내던 코잘은 크메르 루즈 때 부모님을 잃고 난민 캠프에서 자랐다고 했다. 누구보다 영어에 능통했던 다라는 고아원에서 어린 동생 셋을 키우다시피 했다. 두 사람이 킬링필드에 대해 기억하는 것 또는 기억하고 싶은 것은 거의 없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부단히 열심으로 살아왔다.
르완다, 에티오피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미얀마, 그리고 캄보디아. 출장과 파견을 통해 들여본 나라들은 분쟁 또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을 겪었거나 현재진행형으로 겪는 중이었다. 90년대 들어 전 세계에 큰 트라우마를 남긴 굵직한 사건들도 있었고, 민족 또는 민족에 종교가 얽힌 지난한 다툼이 아직 이어져 오고 있기도 하다.
갈등은 일상적이고 모든 갈등이 늘 부정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갈등이 적절히 해소(또는 전환)되지 않고 심화되어 폭력과 분쟁이 난무한 곳에서는 발전도 더디게 된다. 갈등이 초래하는 참혹한 결과를 복구하는 데도 수많은 비용이 들지만, 다툼 그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자원과 비용을 요구한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군사비는 약 2조 7,180억 달러(한화 약 3,700조 원)에 달했고, 정부 지출 총액의 평균 7.1%를 차지했다(SIPRI, 2025). 지난 10년간 37% 증가했는데, 해마다 증가하는 군사비 지출은 교육과 보건 등 공공 분야에 투입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잠식시킨다.
안정적인 정치·사회 상태가 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전제조건이자, 열매인 결과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수많은 역사가 증명해 왔다. 정부 부패 수준이 낮고, 교육과 소득 수준이 높아질 때 평화로운 국가에 가까워지는 상관관계는 세계평화지수(Global Peace Index)에서도 가늠해 볼 수 있다.
국제개발에서 평화를 이해하는 방법
2016년 5월 세계 인도주의 정상회의 이후 인도적지원과 개발, 그리고 평화를 연계하는 접근(Humanitarian- Development-Peace Nexus 또는 Triple Nexus, 이하 HDP 넥서스)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기존 인도적지원과 개발분야가 공동 협력하여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달성하고, 지원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해 온 ‘듀얼 넥서스’에서 확장된 전개였다.
2019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의 HDP 넥서스 이행을 위한 권고안이 채택되면서, 우리나라 정부 부처나 개발 기관에서도 이에 발맞춘 연구나 적용방안을 검토해 왔다. 다만 아직까지 정부의 역할로 공적 원조와 군사적 무력을 통한 국가 안보 차원의 계획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는 차원이다. 인도적지원, 개발, 평화를 도모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초기부터 머리를 맞대고 방향을 고민했다면 더 온전한 그림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인도적지원, 개발, 평화. 세 분야는 성격이 다른 세 사람이 모였을 때만큼 입장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인도주의 원칙을 따르는 국제적십자위원회 같은 기관들은 인도적지원 고유의 가치와 영역이 침해받지 않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둔다. 인명 구조(Life saving)를 목적으로 적시에 필요한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평화의 관점에서는 근본적인 폭력의 예방과 갈등 전환을 위한 고유의 영역이 있는 동시에, 인도적지원과 개발이 평화와 전혀 다른 일이 아닌, 이미 평화 운동의 큰 궤도 안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총알이 쏟아지는 무력 분쟁 상황이나 천지가 흔들리는 자연 재난에 긴급하게 직접 투입하기를 넘어, 인도적지원과 개발을 동시에 지원하는 한국 NGO는 소수다. 이들은 HDP 넥서스를 어떻게 정의하고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는 각 분야 간 공동 목표를 설정하고 유연한 자원 조달이 이루어지도록 협력 구조를 조정하는 일이 필요하겠지만, 더 미시적인 사업수행 차원에서는 기후변화를 포함한 만성재난영역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내 모든 맥락에서 초래될 수 있는 인도적 위기와 갈등 상황의 인지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내용 면에서는 재난회복력이든, 갈등민감성이든, 현지화든, 지역사회 보호체계든, 조직마다 추구하는 미션과 핵심영역에 연계해서 적용해 볼 수 있다.
평화의 구체적인 얼굴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것
평화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평화와 폭력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며 평화를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와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로 구분했다.
소극적 평화: 전쟁, 테러, 폭행과 같이 눈이 보이는 물리적 폭력이 부재하는 상태
적극적 평화: 가난, 소외, 불공정한 자원분배와 결정권 등 보이지 않는 구조적·문화적 폭력이 부재하는 상태
따라서 적극적 평화를 이루는 관점에서는 인도적 상황뿐만 아니라 평상시 개발사업을 진행할 때도 지역 내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나 폭력의 결과물을 사전에 인지하고 분석하고 고려하는 게 가능하다.
적극적 의미의 갈등 감수성을 키워간다면, 우리가 추진하는 개발이 지역사회 내부의 긴장을 키우거나 힘과 권력이 더 기울어지는 방향으로 작동하지는 않는지 살필 수 있다.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는 여전히 우리를 깊은 곳으로 잠기게 하는 아픔이다. 평화라는 말이 관념적인 이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구체적인 면면으로 이해하고 회복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2021년의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 2022년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이스라엘을 둘러싼 전쟁. 국경 너머에서 신경을 곤두세운다. 무력에 의한 통제를 막기 위해 우리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는지 되짚어본다. 주민주도 발전에 헌신하며 그 나라 주민을 조직하는 데 힘써 왔던 풀뿌리 단체는 여전히 그곳 사람들과 연결되어 변화를 만들어 가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한 발자국 더 내딛는, 꾸준하고 부지런한 용기가 필요하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에서
(이재원 옮김, 이후,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