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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책'임 28화

<기울어진 평등>

2025년 5월 둘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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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베리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21세기 자본>을 쓴 피케티가 파리경제대학에서 나눈 대화를 묶어놓은 책이다.


기대가 컸다. 솔직히 말해, 아주 컸다.


하지만 실망스러웠다. 아쉬웠다. 깊지도, 얕지도 않았다. 시간이 아까워서 쓴다.


내가 만약 PD라면(특히 EBS PD 님들 제발 이거 다시 한번만 추진해 주세요. 제가 소문 열심히 낼게요. 조회수 대박 날 겁니다. 제발..), 이 둘의 조합을 나중에라도 한번 더 추진해보고 싶다.


책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자마자 심장이 뛰었다. 바로 교보문고에 달려갔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조합... 이걸 참아?


'토마 피케티'와 '마이클 샌델'의 조합을 참을 수 있는 철학과가 얼마나 있으랴.


마이클 샌델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피케티를 모르는 경우도 많으리라.


피케티가 쓴 책 중 가장 유명한 건 <21세기 자본>이다. 이 책에서 했던 주장은 한마디로 '자본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보다 높다'는 거다. 어렵죠?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돈이 많은 사람은 계속 돈이 많고, 돈이 없는 사람은 계속 돈이 없다는 뜻이다. 21세기는 돈이 돈을 낳는 구조니까. 불평등은 세습된다는 걸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입증했다. 말로만 '금수저 타령'을 논하는 게 아니라 진짜 팩트들로 학계를 두들겨 팬 사람이다.


이런 피케티가 마이클샌델과 만나는 지점은 '불평등'이었다.


마이클 샌델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어본 사람은 쉽게 이해하리라. 안 읽으셨죠? 마이클 샌델은 이 책에서 가장 공정한 '능력주의'를 전복시킨다. "잘난 사람이 더 대접받아야 한다고? 아니? 성공은 너가 잘한 것도 있지만, 운/배경/사회 구조 등 다양한 것들이 결합된 거야. 왜 자만해?"랄까. 우리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능력주의'가 오히려 사회를 더 분열시키고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주장까지 이어진다.


음.. 세상에.. 2개 책은 나중에 따로 다뤄보도록 한다.


<기울어진 평등>은 이 두 학자가 마주 앉아서 '자기 자랑'겸 '상대방 허점 공격'이라는 재미를 잘 보여..줄뻔한 책이다. 배경지식이 있는 채로 보면 흥미롭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마 도중에 집어던질 거다. 그래서 조금은 쉽게 이 책을 통해 피케티와 샌델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불평등


샌델은 피케티와 '불평등'에 관한 대화를 시작한다. 먼저 '불평등'을 말하기 위해 '평등'부터 이야기한다. 평등하기 위해선 경제적/정치적 평등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존중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샌델 : 평등에는 3개 측면이 있는 걸 살펴봤습니다. 경제, 정치, 그리고 존중. 특히 이 세 번째 존중은 존엄성과 지위에 관한 것이죠. 아마 가장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주제일 텐데요.


그렇다면 우리는 존중받고 있는 사회를 살고 있단 말인가? 우리가 존중해야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라는 질문이 저절로 따라붙는다. 샌델이 말한 '능력주의 현대사회'에서 존중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피케티는 샌델의 모순을 지적했다. "야. 너는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현대 사회가 능력주의에 절어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게 잘못됐다고 했잖아. 근데 어떻게 평등을 위해 '존중'을 해야 한다고 뻔뻔하게 말해?"


여기서 핵심 워딩은 '공동선의 부식'이다(마이클 샌델의 핵심 철학이 '공동선'이다). 돌려까기랄까.

피케티 : 저는 당신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의 애독자입니다. 당신의 분석에 따르면,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 혹은 종교라고 불릴만한 것에 대해 다루고 있죠. 신자유주의의 세 가지 기둥(세계화, 금융화, 능력주의) 중 하나가 능력주의죠.

(중략) 능력주의는 공동선을 부식시키죠. 성공한 사람들이 그들의 성공을 그들 자신이 이룬 것으로 보고, 자신의 성공을 너무 깊이 받아들이며 성공에 이르는 길에서 도움을 받은 행운과 요행을 잊어버립니다. 당신이 묘사한 것처럼 그들이 성공할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능력주의는 승자들에게는 오만을, 뒤처진 이들에게는 수치심을 키워주죠.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그들의 실패와 고투가 그들의 잘못이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설득될 겁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이토록 양극화된 이유입니다.


샌델은 실현 가능한 방법을 내세우며 방어한다. "피케티 형, 들어봐봐. 실제로 평등하게 만드는 정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대학 입시를 할 때, 기준점이 100점 만점에 70점인 거야. 그리고 그 점수가 넘는 애들을 다 모아서 뺑뺑이를 돌려서 10%만 입학시키는 거지. 어때, 그럼 평등하지 않아? 능력주의와 평등을 골고루 섞어내는 방식이야!"


잘 보자. 우리 사회는 지금 미국식 '광란의 대입 제도'를 채택하고 있단 게 샌델의 공식적인 워딩이다.

샌델 :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소득 계층을 더 많이 섞을 수 있게 하자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소득계층은 섞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고, 저소득 계층 출신 학생들을 돕기 위한 적극적인 차별 시정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들의 시험 점수가 다른 학생들과 똑같지 않더라도 말이죠. 다만 우리는 대학 입학의 의미를 달리 생각하고 승리와 패배에 대해 지금과 같은 광란의 대입 제도가 부추기는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추첨제는 입학이 승인된 이들에게 어쨌든 현재의 시스템에서 자신의 입학에 많은 행운이 따랐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겁니다. 떨어진 이들에게도 마찬가지겠죠. 이는 승자의 오만에 도전장을 내밀거나 그 기를 꺾기 시작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한발 더 들어가지 못했다. 둘 다 깊이 있는 논의는 '일부러'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신, 피케티는 한번 더 물어본다. "아 됐고. 그럼 추첨제 같은 소리 말고. 다른 해결책은 없어?" 그리고 샌델은 언제나 그렇듯 '정치'문제를 꺼낸다.

피케티 : 저도 능력주의 문제에서 다뤄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존엄성이라고 봅니다. 전 세계적으로(특히 미국에서) 대학 시스템이 젊은이들을 선별하거나 서열화하는 기계가 돼 버렸습니다. 이 시스템은 많은 고통을 자아냅니다. 우리는 이걸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까요? 추첨제 말고요.

샌델 : 정치담론의 초점을 옮겨야 합니다. 우리는 능력주의 경쟁을 위해 어떻게 무장시킬지가 아니라, 어떻게 전체 경제와 공동선에 공헌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지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피케티는 이러한 정치의 문제를 현실의 문제로 조금 더 가깝게 이어붙인다. 공동체의 영역을 확장시키면 존중을, 존중이 평등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해결책을 내세운다. 개인적으로는 꽤나 동의하는 문장들이다.

피케티 : 우리는 공유하는 삶을 위한 시민적 인프라스트럭처를 건설해야 합니다. 건강 클리닉, 대중교통, 공원이나 휴양장소, 지역자치 시설이나 공공도서관, 스포츠 경기장에서라도 사람들이 우연히 서로 마주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계층이 무심코 어우러지게 하면 우리에게 공유성을 되새기게 하는 습관과 태도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엔 이런 일이 반드시 포함돼야 합니다. 누진세가 필요하다는 당신의 주장, 그 이전에 이런 일이 선행돼야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모으고 상호책임감과 소속감을 배양할 공공장소와 공동의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로만 쭉 이어지는 건 아니다. 정치적인 이야기도 이어진다. 길게 얘기하고 싶진 않다(국내외 정치적인 환경은 할 말이 너무 많거니와, 서로 깊게 들어가지도 않아서 재미도 없었다).

샌델 : 끝나기 전에 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좌파의 미래가 그것입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애국심과 공동체 의식, 소속감과 같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정서들을 우파가 독점하도록 허용했습니다. 애국심을 우파 정당들에게 넘겨준 건 일종의 실수죠.


철학과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논의들도 상당하다.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주제로 대화하는 마지막 내용이 딱 그렇다.


(지루하지만 일단 들어보자) 루소는 원래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태어났다고 봤다. 서로 비교하거나 경쟁할 필요가 없었단 거다. 그러니까 당연히 불평등도 없었겠지.


문제는 한 사람이 쌓아두는 재산이 생길 때부터다. 사람들이 점차 모여 살면서 서로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본성상 질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재능으로 벌어들인 개인 재산(사유재산)을 쌓아놓기 시작하면서 불평등이 시작되었다고, 루소는 주장했다.


이걸 길게 설명한 이유는 바로 이 역사적 불평등을 설명하는 지점에서 이 둘의 철학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원시상태부터 이어진 능력주의를 지적한 샌델, 그리고 자본의 권력화를 경계한 피케티. 이 둘의 사상적 결합이 루소를 통해 이뤄졌다.


샌델 : 루소는 인간의 원시 상태를 상상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던 때. 그 이후 사람들은 큰 나무 주위로 모여들어 노래하고 춤추기 시작했죠. 그리고 모두가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고, 살펴봐주기를 바라는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모두가 존경심(올려다 봐주는)을 지니게 된 시대.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사람, 가장 잘생긴 사람, 가장 튼튼한 사람,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 등이 큰 존경을 받게 됐죠. 루소는 명예와 인정을 위한 이 경쟁의 '불평등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고 말했죠.

피케티 : 잠시만요. 루소가 아주 명백하게 밝힌 지점 중 하나는 '재산의 한도 없는 축적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제가 발전시키려는 견해이기도 합니다. 루소의 글에서도 분명히 드러나죠. 문제는 집이나 차를 소유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재산이 소수의 손에 믿기 어려울 만큼 집중되고, 이는 권력의 집중과 더불어 생긴 것이라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권력을 쥐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통제권도 갖지 못하죠. 그러니까, 부와 재산의 소유권은 단지 돈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쓰고 보니, 오늘은 좀 어렵게 쓴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든다. 아니 근데 이 책을 설명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어요..




제목 : <기울어진 평등>

저자 : 토마 피케티, 마이클 샌델

번역 : 장경덕

출판 : 와이즈베리

발행 : 2025.05.02.

랭킹 : 인문 부문 41위[교보문고]

가격 : 16,0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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