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셋째 주
지난 이재명 대통령 취임식을 보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떠올랐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문장들이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감각적으로 '카피킬러 본능'이 되살아났달까. 이 글을 통실 연설비서관이 본다면.. 실제로 이 대목은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올 한 해 동안 물가는 오르고, 실업은 늘어날 것입니다. 소득은 떨어지고, 기업의 도산은 속출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지친 국민의 삶을 구하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복구하는 일, 성장을 회복하고 무너진 국격을 바로 세우는 일에는 짐작조차 힘들 땀과 눈물, 인내가 필요할 것입니다.
DJ는 이 지점에서 잠시 말을 멈췄다. 감정이 복받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뇌리에 강하게 박힌 이 장면은 당시 IMF를 맞은 대통령의 무력감과 무게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대통령의 언어>에선 김대중과 이재명을 절반씩 다룬다. 하지만 최소한 이번 독후감에선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그 이유를 길게 얘기하려면 끝이 없지만, 짧게 말하자면 개관사정(죽은 뒤에야 그 사람에 대한 참다운 평가가 가능하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은 김/이비어천가에 가깝다. 저자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쓰다 보니 김대중, 이재명의 좋은 점만을 기록한 '김이어천가'가 된 듯도 하다. 그러나 김대중, 이재명은, 내가 굳게 믿기로는 대한민국 현대 역사가 빚어낸 '위대한 지도자'임에 분명하다. 그들의 단점이나 흠결은 내가 언급할 몫이 아니다.
나쁘게 말하면 비겁하고, 좋게 말하자면 위험을 회피하는 태도다. 그리 달갑게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DJ에 대한 설명만큼은 인정한다. 민주적 정권교체를 이룬 최초의 대통령이 우리나라 정치를 이끌어나가기 시작한 것은 고작 2000년 이후다. 정확히 말하자면, 21세기가 되어서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치의 영역에서 실현되기 시작했다. 그 포문을 연 대통령이 김대중이었고, 김대중은 자신의 역사적 소명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김대중의 정치 철학은 언제나 '세상의 변화'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세상의 흐름을 보는 사람이었다. 세상의 밑바닥을 보고, 가난한 이들의 삶을 보고, 분단된 조국의 현실과 미래를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국민에게 어떻게 보일지 의식했다. 동시에 국민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이 설명이 납득이 되는 이유는 DJ 자서전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늘 길 위에 있었기에 고단했지만 내 자신과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고 게으름 경계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눈물을 제대로 닦아주지 못했다.
고도원은 이 말을 이렇게 올려친다.
그가 몇 번이나 강조했던 말이다. 그의 눈은 눈물의 눈이었다. 그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목포의 젊은 사업가로, 감옥의 수인으로, 망명자의 몸으로 살아낸 고난의 세월은 그에게 관찰자나 구경꾼의 눈이 아닌 창조자의 눈을 안겨주었다.
DJ를 설명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글쓰기'다. DJ는 스스로 글쓰기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쓰지 않으면 무너졌을 것입니다
고도원의 설명은 이렇다.
1980년 내란음모 협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을 때도 김대중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희호 여사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쓰기였다. 훗날 <옥중서신>(1983년)으로 묶인 이 책은 김대중의 삶의 진면목을 가장 잘 응축해 놓은 기록이다. 내가 연설비서관 이전부터 외우다시피 읽은 김대중의 <옥중서신>은 어마어마한 철학적 정치적 사상서다. 절대고독과 침묵 속에서 분수처럼 솟구쳐 나온 사상의 진수다.
김대중에게 글은 고난과 고독과 침묵을 견디는 수행이었다. 그가 기록으로 남긴 생각과 사상은 오늘도 불멸의 어록으로 살아 있다. 김대중은 '말의 사람'인 동시에 '글의 사람'이었다.
그는 구금과 망명, 침묵의 시기마다 글을 썼다. 그의 글은 단지 사유의 흔적이 아니라, 정치의 지도(map)였다. 옥중에서 그토록 엄격한 감시를 받으면서도 그는 틈을 내서 펜을 들었다.
위대한 문장은 고난이라는 직접 경험과 독서라는 간접 경험이 한 사람의 내면에서 사유되고 발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 평생 글쟁이로 살아온 나의 굳은 믿음이다. 고난이 지독하고 깊을수록, 외로운 독서량이 방대할수록 그만큼 좋은 문장이 튕겨 나온다. 그는 아내 이희호 여사에게 눈물의 편지를 쓰면서 감옥을 '인간학의 학교'로 바꾸었다. 자신의 신념을 점검하고 내면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위대한 문장'을 남겼다.
설명이야 길고 휘황찬란하지만, 핵심은 '글이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한강 작가를 인터뷰했던 김유태 기자가 수습기자 교육때 내게 했던 말도 똑같았다. 사초를 쓰는 심정으로 역사가가 되는 기자의 숙명(거창하게 말하면)이랄까. <쓰기의 미래>에서 말하듯, 쓰기는 곧 '왜 쓰는가'와 '무엇을 써야 하는가'로 이어진다.
물론 글과 말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말과 글이 합일하는 이른바 '언행일치'할 때, 우리는 그 진심을 꿰뚫어낼 수 있다.
김대중의 '절름거리는 발, 이재명의 '굽은 팔'과 '목의 상흔'. 거기에는 수많은 언어가 담겨 있다. 그들의 몸은 그 자체가 삶이고 메시지다. 김대중은 누구보다 몸으로 말했던 지도자다. '몸으로 말한다'는 것은 말이 아닌 침묵과 눈물, 몸짓을 뜻한다. 정치의 또 다른 언어는 몸'이다.
그들은 몸으로 말했다. 단식했고, 침묵했고, 울었고, 무릎을 꿇었고, 병원으로 실러 갔다. 그 몸의 언어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남겼다. 몸이 먼저 진심을 말했다.
말은 허끌의 칼이다. 잘 쓰면 사람을 살리고 잘못 쓰면 사람을 죽인다. 말은 다리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있는 다리. 상처 입은 마음을 건너가는 다리, 사람을 살리는 다리다.
글은 삶이다. 땀, 눈물, 꿈, 기쁨과 슬픔 속에서 태어난다. 땀 흘리고 눈물 쏟고 꿈을 꾸고 기쁨과 슬픔에 흔들리면서 글은 기록된다. 한 번 기록된 글은 역사가 된다. 미래를 준비하는 또 하나의 자궁이다.
글로 먹고사는(현재는/ 혹은 아마도 앞으로는) 사람이 가져야 할 덕목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언행일치가 아닐까. 읽고 쓰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살면서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읽고 쓰는 '언행일치 선순환'을 시도해 보고자 다짐한다.
제목 : <대통령의 언어:김대중·이재명의 눈·말·글·몸>
저자 : 고도원
출판 : 메디치미디어
발행 :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