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첫째 주
나는 어렸을 때 책을 기피했다. 부모님이 책 한 권 읽고 독후감 쓸 때마다 5천 원씩 준다고 해도 안 읽었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앉아서 몇 시간씩 그거 들여다보고 있을 바엔 밖에 나가 노는 게 훨씬 낫다고 봤다.
변하게 된 계기는 크게 두 번이었다.
첫번째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중학교 3학년 2학기 때 오른쪽 발목이 심하게 부러졌다. 의사가 뼈가 으스러졌다고 했을 정도다. 시험(중간고사)을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이 경우, 중학교 학칙상 직전 시험 성적의 80%가 반영된다. 자연스레 성적은 떨어졌고, 그렇게 전국 단위 자율형 사립고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병원에 입원해서 하는 일은 크게 2개였다. 걷는 연습, 멍 때리기. 와이파이도 안 되고 핸드폰도 없던 나에겐 곤욕 그 자체였다. 앉아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보러 올 때마다 책을 한 두 권씩 빌려 오셨다. 성북구립도서관에 있는 모든 청소년 권장도서를 몇 달 만에 다 읽었다.
두 번째는 철학과. 철학과는 책을 읽지 않고서는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는 곳이다. 여느 대학이 그렇겠지만, 철학과라면 더더욱 책에 몰입해야 한다. 도대체 '영혼 삼분설'이 뭔지 책을 봐야 뭐라도 쓸 것 아닌가!
철학과 교수님 한 분이 '책은 닥치는 대로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편식하지 말고 싹 다 읽으라고 했다. 좋은 책, 나쁜 책 가리지 말라고도 했다. 그래서 인문 사회 고전 과학 등 가리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했다.
몇 번의 계기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언론사 내에서 꽤 높은 직급에 계신 두 분 모두 내게 공통적으로 한 말이 '책을 많이 읽어라'였다. 정말 이상하리만큼 똑같은 얘기를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면이 아닌 외면을 파고든다
흔히, 도서관의 핵심은 책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반대다. 별마당 도서관을 떠올려보자. 방대한 물량과 희귀한 도서가 있어서 도서관에 가지는 않는다. 우리가 떠올리는 별마당 도서관은 '예쁜' 도서관이다.
그렇다. 그게 사람이다. 형식은 부정할 수 없는 요소다. <그래서 우리는 도서관에 간다>는 책은 도서관 안에 있는 책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책을 감싸고 있는 도서관을 이야기한다.
도서관 덕후들의 이야기는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아 물론 가끔 딴 얘기도 많이 하시는데, 그 내용이 모두 다 들어가 있어서 편집자가 적절히 걷어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용훈 : 도서관을 이루는 3요소로 흔히 건물 장서, 사람(사서)을 듭니다. 요즘은 여기에 '이용자'를 더해 도서관 4요소라고도 해요. 3요소든, 4요소든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에요. 시설이나 자료는 어떻게든 대체할 수 있는데, 사람은 그러기가 힘들거든요. 특히 사서의 역할이 중요하죠. '도서관은 사실 사서다', 이렇게까지 얘기할 수도 있어요. 사서의 능력이 곧 도서관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죠.
이정모 : 도서관에서 사서의 역할이 결정적인 건 맞아요. 본대학교 화학과 도서관 사서가 생화학 박사인 이유가 분명히 있어요.
도서관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사서가 대출/반납을 도와야 하고, 사람들이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만약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면 시민들의 지식수준이 올라갈 거다. 평생교육자들의 학습 의욕도 늘어날 수 있다. 그 외에도.. 더 말하자니 입이 아프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이야기면 소개할 필요도 없었겠다 싶다.
내가 흥미롭게 여긴 이야기는 '공공대출보상권' 문제다. 일단 내용부터 보자.
이정모 : 사실 도서관은 이용자들에게만 좋은 곳이에요. 서점이나 출판사에서는 볼멘소리를 내기도 하죠. 어쨌거나 책을 팔아야 하는데, 도서관에서는 책을 사지 않아도 볼 수 있으니까요.
이용훈 : 이정모 선생 말씀을 들으니 이쯤에서 저자나 출판사 그리고 도서관계가 부딪치고 있는 '공공대출보상권' 문제를 얘기해 봐야겠네요. 공공대출보상제는 도서관에서 책 대출로 인해 저작자가 자신의 책을 판매할 기회를 잃어 손실이 발생했으리라 추정해 일부 손실을 보상해 주는 제도라고 생각하면 되겠죠? 이미 30여 개 나라가 시행하고 있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이 논의되면서 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도서관의 쓸모를 작가나 출판사 관점에서도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죠.
결국 '좋은 도서관 만들기'는 말뿐인 레토릭이 아니라는, 정곡을 찌른 셈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과 국제도서전으로 겨우내 활기를 띠기 시작한 출판업계가 도서관을 못마땅해한다는 것은 일견 타당한 논리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역시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좋은 도서관'은 때때로 누군가에겐 밥줄이 걸린 문제로 치환된다.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대목이 있어서 굳이 한 문단을 더 옮긴다.
이정모 : 저는 ‘시끄러워야 한다’보다는 ‘시끄러워도 된다’ 쪽이에요. 비슷해 보여도 미묘하게 의미가 다르죠.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 그건 아니라고 봐요. 그렇다고 도서관이 시끄러울 필요까진 없죠. 눈치 보며 살살 걸어야 하고 말하면 안 되고 배경음악을 틀면 안 된다는 식이 아니라, 편안한 음악을 틀어두거나 조용히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정도는 허용하자는 말이에요.
도서관을 설명하는 수식어로 '삭막하고 고요한'이라는 말 대신 '재미있고 토론할 수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역시 누군가의 밥그릇을 뺏는 생각일까.
[여름휴가철로 인해 다음 주는 쉬어가려고 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제목 : <그래서 우리는 도서관에 간다>(읽고 쓰는 사람을 길러내는 아주 특별한 세계에 관하여)
저자 : 이용훈, 이권우, 이명현, 이정모
출판 : 어크로스
발행 :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