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넷째 주
"넌 어떤 기사 쓰고 싶어? 여름 지나기 전에 하나 써서 줘"
부장이 '한 번 풀어주겠다'고 했다. 뭐 사자 호랑이를 키우는 것도 아닌데 풀어주긴 뭘 풀어준다는 건지.
기획기사로 인한 스트레스가 한도치를 넘나들 때, 부장이 위로랍시고 던지는 말이었다.
여하튼 그 말을 오래 담아두고 있진 않았다. 그냥 하는 말이니까 오래 담아둘 필요도 없었고.
하루하루 쳐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처리하다'가 아니라 '쳐낸다'는 표현이 아무래도 맞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적절한 표현을, 나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기자협회에서 온 설문조사 문자를 받았다. 본인의 언론사를 제외하고 가장 신뢰하는/불신하는 매체를 하나씩 적어야 하는 문항이 있었다.
별 건 아닌데, 최근 이렇게 오래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제야 메타 인지가 됐다. 나 이제 진짜 기자일지도..??
입사 4달 차에 타사를 생각하다니... 꽤나 배가 불렀을지도?
이번 주엔 짧은 책 <청와대 사람들>을 들고 왔다. <언론사 사람들>로 바꿔도 무리가 없을 문장에 밑줄을 쫙 그어놨다.
매일 같은 길을 걸었다. 사무실 가는 길, 익숙한 본관, 벤치 옆 그늘. 같은 경로, 같은 동선으로. 어느 날, 혼자 계신 할머님 한 분이 퇴근길에 서 있던 나를 보고 말했다.
"이렇게 좋은 데서 일해서 좋겠어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자주 보던 건물, 늘 앉는 벤치, 매일 지나치던 길. 누군가에겐 처음이고, 누군가에겐 꿈일 수 있겠구나. 그날 이후로 청와대 풍경을 한번 쯤은 처음인 듯 보려 했다.
누군가에겐 생애 처음 보는 청와대고, 누군가에겐 마지막일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일하는 이 공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누군가에겐 꿈이고, 누군가에겐 처음이며, 누군가에겐 마지막일 수 있는 공간. 여기(언론사)나 저기(청와대)나 모든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기 위해 촉수를 극도로 치켜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야 민감하게,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매일 스트레스 지수를 경신하고 있다.
"어디 가세요?" "그냥요.. 식물 좀 보려고요." "아, 저도요!" 둘 다 말은 안 했지만 '좀 쉬고 싶어서'라는 말을 식물 뒤에 숨기는 방법이었다. 나에게는 점심시간 온실에서 머무는 5분이 갖아 정직한 회복의 시간이었다. 온실은 청와대에서 가장 정치적이지 않은 장소였다. 가장 무해하고 가장 조용한 방. 그저 자라는 것과 돌보는 것만 있었다.
청와대가 대단히 정치적인 장소이듯, 언론사도 매우 정치적인 공간이다(라고 생각한다). 피난처를 찾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다만 청와대와 언론사의 차이점은 속도감이지 않을까 싶었다. 청와대 업무폰 사용 경험은 대단히 흥미롭다.
업무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긴 신호음이 가는 동안, 나는 휴대폰을 이리저리 만지며 말했다.
"이거 정말 느리죠?"
상대가 대답했다.
"느린 게 좋기도 해요. 말을 아끼게 되잖아요. 정확하게 말해야 하니까."
그 말을 곱씹었다.
'말을 아낀다.'는 건,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조심히 숫자판을 꾹꾹 눌러야 도달하는 말들. 이 전화기는 실수로 말이 새는 일이 없었다.
여전히 꾹꾹 눌러야 하는 업무폰(비화폰 말고)은 앤틱 감성으로 쓰는 게 아니었다. 철저한 이성으로 집어들 수밖에 없는 느릿느릿한 구형 핸드폰의 맛이란.
정확도와 속도감을 사이에 둔 전쟁 같은 공간 '청와대'에서 긴장감은 필수다.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곳, 문장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말 한마디, 물 한 모금 모두 살금살금 이어야 하는 공간이다.
'지금 말할까, 참을까?' '이 의견을 꺼낼까, 가만히 있을까?'
청와대에서 일하는 건 매일 '이럴까, 말까'를 되풀이하는 게임 같았다.
고민 중에는 심지어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서 물을 마실까, 그냥 참을까?'도 있었다.
그렇지만 청와대는 그만큼 철저히 계산된 공간이기도 하다.
눈의 피로도까지 고려한 공간설계와 밝기 조정은 그래서 대단히 필수적이다. 동시에 참여자는 말하기 전까지는 알아차리기조차 힘든 육감의 영역이기도 하다.
"조도가요, 사람 눈엔 잘 안 보여도 오래 앉아 있으면 압니다.
그림은 정 가운데 있으면 안 예뻐요. 공간이 흐르는 방향이 있어요.
이 회의장에선 오래 앉아 있어야 하거든요. 눈이 피로하지 않은 그림이 필요해요. 미술사 책엔 안 나와요. 그림이 사람한테 어떻게 말 거는지 알아야 해요."
말이 많은 공간엔 말이 적은 그림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꼭 사람에 대한 얘기 같았다.
육감의 영역이 비로소 현실의 영역을 비집고 들어올 때, 저자 강승지는 느꼈다. 마침내 그 스스로가 청와대에 동화되었다는 것을.
그러나 강승지는 동화된 스스로를 억지로 다시 꺼낸다. 싹둑싹둑 베어낸다. 감히 말하건대, 대단히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조심스레 내가 말을 꺼냈다.
"사람들은 좋다고들 해요. 이제 (청와대가) 열렸다고. 근데 저한테 그 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웠어요. 실감이 안 날 정도로요.
아직 전 똑같이 남아 근무하고 있는데 단 하루 만에 동료들도, 조직도 다 사라졌어요. 아마 사람들 눈엔 그냥 공간 하나가 바뀐 걸로 보일 거예요.
근데 저한텐... 몇 년간 일하면서 쌓아온 한 시절 전체가 없어진 느낌이에요. 청와대가 바뀌면서 제 인생이 휘청이는 것 같아요."
입 밖으로 인생이란 얘길 꺼내는 순간, 스스로 그 말이 너무 크게 들려서 어색했다.
잠시 침묵.
상담사가 침묵을 자르듯,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청와대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짜 기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BBC는 매 계절마다 사소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스미스 씨 차고 옆에 딸린 새 둥지에서 알이 부화했다느니, 캐서린이 키우는 강아지가 좋아하는 계절 '겨울'이 돌아왔다느니 하는 영상들. 시청률도 잘 나온다고 한다.
뭐... 그냥... 그렇다고.
제목 : <청와대 사람들(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와대를 받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저자 : 강승지
출판 : 페이지2북스
발행 : 2025.07.09.
랭킹 : 시/에세이 부문 127위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