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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25년 7월 둘째 주

by all or review
문학동네


"오늘 한국문학이 마침내 도달한 가장 높은 끓는점"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말인가.


내가 수상자라면 이 문장 하나로 '행복 치사량'이 만땅이었으리라.


우리 부장이 이 책을 고르지 않은 이유는 그저 여러 핑곗거리들 때문이었으리라.

세상에나.. 이 책 보도자료를 안 쓴다? 진짜 말도 안 된다.


내가 꾸준히 따르는 몇 가지 중 하나가 바로 이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유재하음악경연대회와 함께 매년 꾸준히 챙긴다.


표지 디자인부터 내용까지.. 그야말로 버릴 게 없다.


물론 매년 내용에 대한 평가는 울퉁불퉁하다. 어느 해는 정말 좋았지만, 어느 해는 아쉬움이 밀려올 때도 있었다. 매번 좋을 순 없으니까.


그러나 최저선을 뚫고 내려가지 않는 훌륭한 작품들이 매년 쏟아진다.

말 그대로, 쏟아진다.


그리니까, (개인적인 신념이지만) 나는 최저선이 높은 게 진짜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굴곡이 있고, 저점과 고점을 정신없이 오간다. 하지만 그 저점의 순간을 박차고 오르는 실력, 저점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바로 그 실력이 진짜라고 판단한다.


그런 측면에서 젊은작가상은 매우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작품이 즐비하다고 생각한다.


올해 베스트 장면이다.

"..... 그 말을 들으니 나는 길가에 버려진 장갑 한 짝이 된 기분이야."

"....."

"실은 나 아까 속으로 선배 질투했어. 선배한테 아이가 있는 줄 알고.... 차 뒤에 붙은 스티커를 봤거든."

은희가 와이퍼 속도를 올리며 답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저 창문의 눈송이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기분이야."

정림이 목소리를 한 톤 높였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봉지가 된 기분이야."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추위에 굳어버린 길고양이가 된 기분이야."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눈발 속에서 길을 잃은 발자국이 된 기분이야."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영원히 멈춰버린 분수대가 된 기분이야."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아무도 없는 골목에 켜진 가로등이 된 기분이야."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물속에 가라앉은 못생긴 가오리가 된 기분이야."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선배랑 가오리찜에 소주 한잔하고 싶지 말입니다?"

그게 뭐야. 두 사람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쏟아냈다.


김영하 작가가 그랬던가, 문학이란 단순하게 뭉뚱그리는 표현을 다채롭게 하는 거라고. 정확히 콕 짚어 어떤 단어 하나로 그 '기분'이 표현되지 않더라도, 대략 유추해 낼 수 있는 그 기분을 느꼈다.


한 대목을 더 보자.


이 역시 어떤 감정일지 생각해 보면서.

그랬구나.
그리하여.
.... 이렇게 되었구나.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분명 기이한 이야기, 누가 듣고 역겹다는 반응을 보여도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K는 그것이 분명 아름답다고 생각했다.(중략)

"사는 게 괴롭고 외로울 때요. 나는 내가 지구라는 몸에 잘못 실린 혼이라고 생각했어요."
K는 다음 근무자를 위해 카운터를 정리하며 말했다.

"이 세상은 내 터전이 아니다. 이 신체는 내 실체가 아니다. 이번 판은 연습이다. 이렇게 구차한 시간들이 진짜로 내 인생은 아닐 거다...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한 거죠. 그런데 방금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이제는 진짜 내가 다른 어딘가에 있을 것 같지도 않아요. 다만 참 궁금하네. 지금 여기 있는 이것은 무엇일까. 내가 아닌 것만은 확실한데요."

부랑자는 대답이 없었고 동생도 그랬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 이와 같은 설명이 나온다. 콤플렉스로 인해 스스로의 삶을 부정하는 미지. 미지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는 그 순간부터, 그녀의 진짜 인생이 시작됐다(스포일러로 인해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한다).


'진짜 내 인생은 어디 있냐'는 이른바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라는 터널을 거쳐야 비로소 터져 나오는 감정.


애써 외면하려던 감정들을 직면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해 내는 심리학 기법. 주로 참전군인들에게 사용했다는 노출치료 기법과 유사하게 세밀하게 억지로 감정을 읽어내도록 강요하는 문장들이다.

신오는 군대에서 구제역 살처분에 동원된 적이 있었다. 이미 가스 살포로 숨이 끊어졌다고 했지만, 분명 움직이는 것들이 있었다. 꿈틀거리는 것들, 옴짝달싹 못하는 와중에도 숨을 내쉬고, 그르릉 울고,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고 발에 힘을 주며 몸부림치던 것들. 신오는 땅만 보려고 했다. 그 세세한 움직임을, 몸부림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 어쩌면 신오는 알아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자기도 살기 위해 언젠가 몸을 비틀고 악을 쓰고 그러다 끝내 깊은 구멍에 묻히게 되리란 것을.


하지만 그 치료 기법을 모두 경험하고 마침내 이겨낸다면, 한결 깨끗해졌으리라.


또 하나. 작가가 던진 질문을 그대로 따라가 보는 경험도 하게 된다.

"아름다운 것과 살아있는 것을 어떻게 구분하지?"

누군가 자기 골반에 돋아난 자그만 정강이를 쓰다듬으며 물었습니다.

"난 구분 못 해."

손가락 끝에서 자라난 동그란 가슴과 배에 입을 맞추며 다른 누군가 답했습니다.

"난 안 해."


'살아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명제가 거꾸로 뒤집힌, '아름다운 것은 모두 살아있다'는 말.


생각해 보면 맞는 말 아닌가.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름다우며, 아름다운 모든 것은 살아있지 않나.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알아차리느냐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이 역시 더 이상 말하지 않도록 한다. 예술 철학할 시간이었나. '그... 어떤... 파리의 날갯짓.. 같은... 미묘한.... 것에도.. 그러나.. 마음에... 스크래치... 일종의 생채기를 내는....' 것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하셨는데. 도저히 알아쳐 먹을 수가 없어서 포기한 그 메커니즘.)


억지로 기억과 추억을 구분하듯, 아름다움과 살아있음을 구분해 내는 것이 무의미한 짓임을 깨닫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아.. 물론, 작가가 '우리는 이래야만 한다'는 명령문을 써놓기도 한다. 그 문장도 함께 소화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다.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사건을 어떻게 사실이라 단정 짓는지, 왜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모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게 더 가혹한 일 아니냐고 나는 말했다. 그 여자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힘주어 덧붙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믿어야죠. 우리는 그래야 되는 거 아녜요?

나와 마주 보고 있던 그 여자가 눈길을 거두고는 중얼거렸다.
그래도.......


우리는 최소한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물음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디 가서 눈 좀 붙였어야 했을까.

귀에 익은 슈베르트의 현악곡이 흘러나왔다. 지긋지긋한 클래식. 채널을 돌리던 그녀의 손이 여성 디제이의 나긋한 목소리에 멈춰 섰다. 파란색 사물로 사랑을 표현하는 새가 있다는 거 아세요? 은화는 운전대를 잡은 손을 풀었다가 다시 쥐었다. 오랜만에 하는 운전이라 그런지 감각이 어색했다. 호주 동부에 사는 수컷 새틴 바우어 새가 그 주인공인데요. 꽃잎이나 열매, 심지어 플라스틱 병뚜껑까지, 땅에 떨어진 모든 사물 중 파란 것만을 모아 둥지를 꾸미고 암컷을 초대하는 독특한 구애 방식 때문에 '정원사 새'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해요. 새틴 바우어. 이름도 참 예쁘지 않나요? 은화는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톡톡 두드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새였다. 그래, 병원 대기실 책장에 꽂혀 있던 정사각형 판형의 아동용 그림책. 그 책의 맨 첫 번째 장에 새틴 바우어가 있었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자신의 깃털 색과 비슷한 파란 물건을 강박적으로 수집하는.... 저기요, 술 드신 거 아니죠? 뒤따라오던 여성 운전자가 은화의 차를 추월하며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다. 위험하니까 졸리면 어디 가서 눈 좀 붙이세요!



제목 :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25)>

저자: 백온유,강보라,서장원,성해나,성혜령,이희주,현호정

출판 : 문학동네

발행 : 2025.04.02

랭킹 : 소설 부문 24위[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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