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넷째 주
난 웃는 입이 없으니까 조용히 흘러내리지
사람들이 웅덩이를 밟고 지나가
(중략)
터진 수도관을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 난 자꾸 흘러넘치는데 바닥을 닦아낼 손이 안 보이는데
갈 데가 없어 혼자 미끄럼틀을 타면
곁을 지나가던 어깨들이 뭉툭 잘려나가지
떨어진 난, 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겠지만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경은 콜리의 질문을 받자마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콜리는 이가 나간 컵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쳐다보며 보경의 말을 기다렸다.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보경은 콜리가 아닌 주방에 난 창을 쳐다보며 말했다.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중략)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보경의 눈동자가 노을빛처럼 반짝거렸다. 반짝거리는 건 아름답다는 건데, 콜리 눈에 그 반짝거림은 슬픔에 가까워 보였다.
“행복이 만병통치약이거든.”
“….”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대한민국은 성공 신화를 추구해 왔다.
그래서 우리 또한 자녀들이 신동이었으면 하고 몰래 기도하지 않는가. 나에게는 흔적조차 없는 재능을 자녀들은 우연히라도 타고났으면 하고 빌면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각종 과외와 학원으로 내모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은 불과 스무 살이 되기 전, 성인으로서의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된 것처럼 착각하곤 한다.
이들에 대한 유감은 없다. 사회가 이들에게 개인으로서 특별대우를 받고 더 큰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뛰어난 1명이 뒤처진 99명을 ‘먹여 살린다’는 믿음, 금메달을 따면, 서울대를 가면, 아이돌이 되면, 의대를 가면, ‘일반인들’과는 다른 룰이 적용된다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를 우리 기성세대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가 되어야만 세상에 대해 비판하고 요구할 자격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99명은 그냥 침묵하고 희생해야 하는가. 안 선수가 은메달에 머무르거나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가만히 있어야만 했는가.
우리 모두가 불행하다. 어릴 때 이미 걸러진 ‘될성부른’ 프로디지(신동)들은 끊임없이 다시 걸러지고 탈락할 것이며, 한 번 탈락은 영원한 인생의 패배로 이해되는 것 같다. 그 거대한 피라미드에는 ‘금메달급’이 되지 못한 신동들의 슬픔이 있고, 스스로 존재 자체가 불효인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되지 못할 아이는 애초에 낳으려고도 하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특히 어른들이 이 99명 젊은이의 절망을 돌아보고 말 걸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너무나 젊고 아름답고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나이라고. 그래서 당신의 재능이 뒤늦게 꽃피길 우리가 천천히 기다리고 있다고.
시스템 개선을 바라는 문제 제기는 신선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문제를 개인 불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하며 '안세영의 눈높이가 손흥민과 김연아 수준'이라는 인신공격성 발언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그가 제기한 구조적 문제는 그동안 스포츠계 전반에 걸쳐 오랫동안 묵인되어 오던 것들이다. 안 선수는 기자회견과 SNS 등에 여러 번 '시스템'이라는 표현을 쓰며 개인 문제가 아닌 '시스템'을 문제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정확한 관점이다. 이렇게 진행된다면 희생양을 만드는 데만 초점이 맞춰지고, 시스템 개선까지 나아가지 못한 채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 용산참사 등 대형참사의 처리과정에서도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 시스템 구축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해 왔던 게 우리 현실이다.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집단적 광기가 발휘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최후의 관심은 '시스템이 어떻게 개선되었나'에 집중돼야 한다.
당신이 태어났을 땐 당신만이 울었고 당신 주위의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엔 당신 혼자 미소 짓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