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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or review Aug 23. 2024

광기의 시대에 생일을 맞은 불행한 젊은이

2024년 8월 넷째 주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출근하는 길은 짜증으로 그득했습니다. 아침부터 땀을 삐질삐질 흘리게 만드는 8월의 더위는 불쾌지수를 급격히 끌어올리더군요. 게다가 방학을 마친 학생들이 아침 버스와 지하철을 다시 채우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비가 오는 날엔 꿉꿉함마저 더해져 그야말로 '짜증 4종 세트'였죠.


웅덩이가 되.


출처 :  unsplash

짜증을 가라앉힐 수 있는 건 '퇴근'밖에 없었습니다. 퇴근하며 박세랑 작가의 시 <뚱한 펭귄처럼 걸어가다 장대비 맞았어>를 꼭꼭 씹어먹었습니다.


난 웃는 입이 없으니까 조용히 흘러내리지
사람들이 웅덩이를 밟고 지나가

(중략)

터진 수도관을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 난 자꾸 흘러넘치는데 바닥을 닦아낼 손이 안 보이는데
갈 데가 없어 혼자 미끄럼틀을 타면
곁을 지나가던 어깨들이 뭉툭 잘려나가지
떨어진 난, 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흘러내리는 물'에 비유합니다. 자꾸만, 조용히, 흘러내린 '나'는 웅덩이가 됐고, 사람들은 나를 즈려밟고 지나간다고 표현합니다.



My Birthday


출처 :  unsplash

이번 주 월요일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생일을 맞은 저 또한 물처럼 흘러내려있었습니다. 꽉 뭉쳐지지 못했죠.


20살 생일은 MT 중이었습니다. 학생회 MT를 가서 선배들의 축하와 고민상담을 받았죠.


21살 생일은 군대에서 맞았습니다. 군대 선임분들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일을 줄여주시진 않더라고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22살 생일은 대학 동기들과 한강에 있었습니다.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 하하 호호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23살 생일은 울릉도에 있었습니다. 해군 일병 시절에 군함을 타고 울릉도 옆을 지나다니며 '전역하면 꼭 한 번 가봐야지!'라고 다짐했었기 때문이죠. 날씨 운이 좋아 독도까지 다녀왔습니다.


24살 생일은 대학 학보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방학이었지만 너무 중요하고 촉박한 인터뷰여서 도저히 뺄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 나와서 일을 마무리하고 밤늦게 귀가했습니다.


25살 생일은 스타트업에서 일을 했습니다. 이직을 하기 위해 정장을 샀었고, 그 정장을 잃어버릴 뻔했던 것까지 기억납니다. 심지어 8월 KPI(실적)도 좋아서 한창 들떠있었던 것 같아요.


26살 생일은 전남 완도의 작은 섬 '생일도'에 있었습니다. 생일에 생일도를 가면 특별한 혜택(전광판에 이름 띄워주기, 완도산 미역 선물 등)이 꽤 있는데, 이건 나중에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올해. 27살 생일은 연구원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것도 꽤 많은 일이요.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채 10분도 쉬지 못한 채 보고서들을 하나씩 쳐내야 했습니다. 정신 차리고 시계를 본 게 오후 4시였습니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 그 하루를 기억하며 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해서 꽤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어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전적으로 저만 느끼는 만족감이겠지만요.


일을 하든 놀러 다니든 맛있는 걸 먹든, 생일 기록의 과정에서 나의 행위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365개의 하루 중 '8월 19일'만 스카우트해서 어벤저스를 만드는 느낌이라고 이해하시면 편하겠네요.



레버넌트 기억


출처 :  unsplash

물론 생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괜히 유난 떤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저희 아버지가 딱 그런 분이십니다. 마이 파덜의 정확한 워딩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냥 가족끼리 밥이나 한 번 먹고 마는 거지 뭘 그런 걸 가지고.."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대화는 사골처럼 우려 집니다. '너 어렸을 때 어땠는 줄 아냐', '벌써 커서 이렇게 됐다', '널 낳느라 죽을 뻔했다', '어렸을 때 왜 그렇게 울었냐', '유치원(어린이집이 아니라 유치원이라는 것을 강조)에서... 초등학교에서...' 등등의 레퍼토리가 3~4번 정도 돌면 식사가 얼추 마무리됩니다. "아니 어떻게 똑같은 얘기를 30년을 해?"라고 불평하면 그제야 식사가 끝납니다.


그 시절을 계속 뜯어먹는 거죠. 매년 회생되는 기억이랄까요.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이라는 소설에 보면 그리움을 '기억 포기'라고 규정합니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경은 콜리의 질문을 받자마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콜리는 이가 나간 컵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쳐다보며 보경의 말을 기다렸다.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보경은 콜리가 아닌 주방에 난 창을 쳐다보며 말했다.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중략)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보경의 눈동자가 노을빛처럼 반짝거렸다. 반짝거리는 건 아름답다는 건데, 콜리 눈에 그 반짝거림은 슬픔에 가까워 보였다.

“행복이 만병통치약이거든.”

“….”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결국 '그리움에 가득 찬 부모님'을 구원해 드리는 방법은 성인이 된 제가 '행복'을 드리는 것밖엔 없겠더군요.



행복할 순 없는 젊은이


출처 :  unsplash

가끔씩만 행복한 제가 어떻게 부모님께 행복을 드릴 수 있을까요.


이번 주 박원호 교수님 칼럼 <20240820 동아일보發 [동아광장/박원호]금메달 따야 입 열 엄두 나는 ‘신동 콤플렉스’ 사회>엔 '불행한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불행한 젊은이들의 절망'과 '그 절망을 돌봐주지 않는 어른들'이 나옵니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성공 신화를 추구해 왔다.

그래서 우리 또한 자녀들이 신동이었으면 하고 몰래 기도하지 않는가. 나에게는 흔적조차 없는 재능을 자녀들은 우연히라도 타고났으면 하고 빌면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각종 과외와 학원으로 내모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은 불과 스무 살이 되기 전, 성인으로서의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된 것처럼 착각하곤 한다.

이들에 대한 유감은 없다. 사회가 이들에게 개인으로서 특별대우를 받고 더 큰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뛰어난 1명이 뒤처진 99명을 ‘먹여 살린다’는 믿음, 금메달을 따면, 서울대를 가면, 아이돌이 되면, 의대를 가면, ‘일반인들’과는 다른 룰이 적용된다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를 우리 기성세대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가 되어야만 세상에 대해 비판하고 요구할 자격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99명은 그냥 침묵하고 희생해야 하는가. 안 선수가 은메달에 머무르거나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가만히 있어야만 했는가.

우리 모두가 불행하다. 어릴 때 이미 걸러진 ‘될성부른’ 프로디지(신동)들은 끊임없이 다시 걸러지고 탈락할 것이며, 한 번 탈락은 영원한 인생의 패배로 이해되는 것 같다. 그 거대한 피라미드에는 ‘금메달급’이 되지 못한 신동들의 슬픔이 있고, 스스로 존재 자체가 불효인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되지 못할 아이는 애초에 낳으려고도 하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특히 어른들이 이 99명 젊은이의 절망을 돌아보고 말 걸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너무나 젊고 아름답고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나이라고. 그래서 당신의 재능이 뒤늦게 꽃피길 우리가 천천히 기다리고 있다고.


반드시 무엇인가가 되어야 하는 한국 사회. 그리고 그 '쓸모를 입증'해 내야만 하는 절박함이 불행한 젊은이를 무한 생산해냅니다. '무엇'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므로 굳이 챙겨주지도 않는 것이겠죠.


김후곤 변호사는 이러한 현상을 '집단적 광기'(20240821 한국일보發 <안세영이 바꾸고 싶은 것은?>)라고 표현했는데요.


시스템 개선을 바라는 문제 제기는 신선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문제를 개인 불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하며 '안세영의 눈높이가 손흥민과 김연아 수준'이라는 인신공격성 발언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그가 제기한 구조적 문제는 그동안 스포츠계 전반에 걸쳐 오랫동안 묵인되어 오던 것들이다. 안 선수는 기자회견과 SNS 등에 여러 번 '시스템'이라는 표현을 쓰며 개인 문제가 아닌 '시스템'을 문제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정확한 관점이다. 이렇게 진행된다면 희생양을 만드는 데만 초점이 맞춰지고, 시스템 개선까지 나아가지 못한 채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 용산참사 등 대형참사의 처리과정에서도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 시스템 구축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해 왔던 게 우리 현실이다.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집단적 광기가 발휘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최후의 관심은 '시스템이 어떻게 개선되었나'에 집중돼야 한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시스템은 뒷전이 된 채 '멸망으로 폭주하는 저출생 사회'에 희망은 없는 것일까요. 이번 주는 모든 게 참 개운치 못했습니다.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사람들의 물음에 김 추기경께선 이렇게 답하셨다고 합니다.

당신이 태어났을 땐 당신만이 울었고 당신 주위의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엔 당신 혼자 미소 짓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십시오.

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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